선생님 목소리 방해 뒷자리 쟁탈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0-18 오전 10:50:00
수업이 내 수능 공부에 방해가 되잖아요. 고3 교실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죠.” 서울 ㅅ고 3년 김희재군(가명)의 말이다. 이 학교 3학년 5반 교실에서는 아침마다 ‘그들만의 전
쟁’이 벌어진다. 뒷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학생 간 치열한 경쟁이다.

잠자기나 소설책 보기 등 ‘딴 짓’ 하려는 게 아니다. 수업과 다른 과목의 ‘자기 공부’를 하기 위해
서다. 코 앞으로 다가온 수능 준비다. 앞자리에 앉으면 아무래도 공부에 방해가 된다. 우선 선생님 보기
가 민망하다. 강의 목소리 때문에 공부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앞자리에는 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앉는다.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은 몇 안 된다. 교사 가
운데 일부는 일부러 강의 목소리를 낮춘다. 자기 공부하는 제자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간혹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적하는 교사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주의를 주는 정도에서 그치
거나 서운함을 표시하는 정도다. 자기 강의에 집중할 것을 강제하는 교사들은 많지 않다. 수업을 안 들
어도 좋으니 떠들지만 말라고 주문하는 교사도 있다.

고3교실의 이런 진풍경은 ㅅ고만의 일이 아니다. 다양한 처지의 고3생이 한 교실에서 생활하는 데서 비
롯된다. 공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른 수시합격생, 진학포기생, 4년제 대학 지망생, 명문대 지망생, 취
업지망생이 한데 뒤섞이니 한 과목 수업은 애초 불가능하다. 또 수능 공부도 학생 각자가 원하는 게 다
르다.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게 급하다고 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잘 하는 과목을 더 다지려는 학생
도 있다.


ㅅ고 수업시간에 책상마다 다양한 과목의 참고서, 만화책과 잡지, 신문 등이 놓이는 이유다. 책상위 내
용물만 봐선 무슨 과목 수업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철학 등 수능 과목이 아닌 수업은 폐강하기도 한
다. 인터넷 강의실로 옮겨 교육방송(EBS) 강의 동영상을 보며 수능 공부를 시킨다. 교장과 교감은 “철
학 시간에 딴 공부한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누누이 당부한다.


이런 상황이니 자기 강의를 들으라고 강요하는 교사들은 원망의 대상이다. ‘비효율적이고 꽉 막힌 선생
님’이다. 허익재군(가명)은 고3 2학기에는 학교 수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능이 다가올
수록 학생들 개인의 공부 스케줄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학교 교육과정대로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
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김호영군(가명)은 “학교 수업은 학원 숙제를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중2 때부터 익숙해진 습관이라
서 어색할 것도, 선생님에게 미안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고3 2학기 수업은 대부분 문제풀이로 이뤄져
들을 필요가 더더욱 없다. 학원에서 하는 문제풀이로 이미 충분하고 그걸 학교에서 복습하는 게 보다 효
과적이라고 한다.

박찬식군(가명)은 수업하는 선생님들보다 시끄럽게 떠드는 친구들을 놔두는 선생님들이 더 원망스럽다.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최소한 공부할 분위기조차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교사의 강의를 듣지 않는 학생, 학생이 듣지 않는데도 꼬박꼬박 수업을 하는 교사.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각본 없는 ‘부조리극’이 한국의 고3 교실에서는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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