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승객에게 광고 안볼 권리를 허하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0-18 오전 10:47:00
오늘도 만원 지하철로 출근하는 김씨. 오전 8시 출근전쟁을 시작하려고 지하철역으로 들어선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린 "고객만족"이라는 커다란 문구. 어느 기업의 대형광고다.

광고판 여러 개를 지나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는데 개찰구에 신용카드 광고가 보인다. 애써 외면하며
승강장으로 들어서니 기둥과 승강장 맞은 편에 최신 휴대전화 광고와 대기업 이미지 광고가 붙어있다.

시선을 15도 위로 올리니 70인치 프로젝션 텔레비전에서는 예쁜 여배우가 "같이 소주 한잔 하자"며 유혹
한다.

출퇴근길 광고의 유혹? 짜증?

그 뿐 아니다. 승강장에 새로 설치된 스크린도어는 "집나간 전화를 찾는다"는 내용의 이동통신사 광고
가 도배하고 있다. 따르르르릉~ 열차가 들어온다. 전동차 외부도 "무보증, 무담보, 즉시대출"이라는 문
구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전동차에 들어서면 또 다른 광고 세상이 펼쳐진다. 객차 안을 둘러보니 사방이
광고다. 출입문 양쪽 벽에 속옷광고, 지하철 노선안내도 양쪽으로 홈쇼핑 광고, 통로쪽 머리 위엔 구강
청정제 광고, 하다못해 출입문 유리에도 보쌈 체인점 스티커가 붙어있다.

김씨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이번엔 안내방송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강남역 ○번 출구 XX어학원…. 취업의 모든 것 @@@@, 그곳엔 내일이 있다~"

참다 못한 김씨의 외마디 외침. "광고 홍수 속에 승객을 빠뜨리느니 차라리 요금을 올려라!"


광고, 지하철을 도배하다

지하철 역사·에스컬레이터·승강장·안내도·전동차 안팎·대합실·도착 안내판…. 지하철 전체가 광고
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 때 벽면을 도배하는 현란한 래핑광고가 지하철역 벽과 천장·기둥
·전동차 외부할 것 없이 뒤덮기도 했다.

만성 적자를 메운다는 이유로 지하철 공간을 야금야금 먹어들어온 지하철 광고는 이제 포화상태에 이르
렀다.

이처럼 시각적인 광고는 양이 늘수록 광고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승객들도 이젠 웬만한 시각매체에
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출근길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곳곳에 광고가 너무 많
아서인지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최근에는 시각과 청각을 함께 자극하는 새로운 형태의 광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하철역
승강장의 대형 엘시디 동영상 광고나 안내방송 음성광고 등이 그것.

시설 기부체납 조건으로 광고권 넘겨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올해초 지하철2호선 전동차 안내방송 장비를 튜브컴에서 기부
체납받았다. 음성광고 운영권을 5년간 튜브컴에 위임하는 조건이다. 승강장 추락사고 방지를 위한 스크
린도어도 유진메트로컴에서 설치하고 있고, 최근 교체 중인 승강장 행선안내게시기도 역시 기부체납이
다.

결과적으로 지하철역 구내나 전동차 안에 새 장비를 설치할 때마다 새로운 광고매체가 등장하고 있는 셈
이다.

서울메트로 광고과 관계자는 "서울시나 국가의 예산 지원 부족으로 재정여건이 열악해 소규모 시설투자
는 기부체납 형태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광고물은 승객들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난 4월 시작한 전동차 안내방송 음성광고는
현재 지하철 2호선만 시행하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애초 7월부터 1·3·4호선까지 확대하려 했지만 승객
들의 소음 민원 때문에 보류하고 2호선 광고 횟수도 애초 계약의 25%선까지 줄였다.

서울메트로 운전팀 정일봉 과장은 "음성광고는 낡은 차내 방송시설 개선 차원에서 기부체납 방식으로 도
입했다"면서 "시끄러운 음악이나 효과음을 줄이고 안내방송과 음색을 맞추는 등 개선작업을 진행해 10
월 말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나친 상업성도 고민거리. 지하철 2호선 음성광고사업자인 튜브컴 신정헌 대표는 "앞으로 대선·총선
전에는 선거참여를 독려한다든지, 미아찾기 캠페인이나 유사시 대피방송이 나오게 하는 등 공익적인 기
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수익 비중 10% 안돼...'광고 안 볼 권리' 배려해야

몇해 전부터 지하철 광고 수입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이에 서울메트로는 올해부터 전동차 광
고 판매, 전략 수립을 위해 대행사업자(미디어렙)를 선정하고 수익성 없는 광고물을 없애는 등 대폭 정
비에 나섰다.

하지만 승객들이 보기엔 지하철역과 전동차 안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오히려 시청각을 넘나드는 다양한
광고물의 홍수에 승객들의 눈과 귀는 시달리고 있다.

하루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광고주들에겐 매력적인 광고 수단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 광
고로 도배를 해도 지하철 전체 매출(2005년 서울메트로 기준 약 8392억원) 중에 광고 수익은 10%도 되
지 않고 나머지는 운수사업수익이다.

만성적인 적자 해소도 좋고 시설 확보도 중요하지만 승객들이 전체 매출의 80~90%를 부담하는 상황이라
면 광고를 보지않을 권리도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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