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헝그리 도시락’… 지금은 실속형
웰빙족…과일·야채 다이어트 식단 커플들…"아~ 한입" 닭살 데이트
고시생…점심시간 아끼고 돈 절약 알뜰족…밥값줄여 해외여행비 마련 [조선일보 박란희기자, 인턴기자, 인턴기자]
캠퍼스에 도시락이 돌아왔다. 20일 오후 1시 한양대 학생식당. 차진욱(23·경영학과 3년)씨는 플라스틱
락앤락 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꺼냈다. 이날 점심메뉴는 닭가슴살과 방울토마토. 깨끗이 비워도 한 끼에
500㎉를 넘지 않는 다이어트 식단이다. “오전 9시부터 온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몸이 무거
워졌어요. 식이요법을 위해 ‘웰빙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죠.” 벌써 두 달째. 175㎝에 75㎏이던 몸
무게가 5㎏ 줄었다. 닭가슴살, 호박죽, 과일, 양배추, 곤약, 우유 등 까다로운 메뉴가 번갈아 도시락통
에 오른다. “남의 눈요?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오히려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대학생이 도시락을 싸다닌다고?’ 깜짝 놀라는 이가 있다면, 이미 구세대다. 3월 학기가 시작된 캠퍼
스 곳곳에는 도시락족(族)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학생들의 점심이란 으레 2000∼3000원 안팎의 학생식
당 메뉴나, 학교 주변 식당에서 자장면 등을 배달시키는 경우가 대부분. 이런 캠퍼스 점심의 풍경이 웰
빙 문화 확산과 식재료 파동 등으로 바뀌고 있다. 도시락의 복귀다.
이효경(23·선문대 환경공학과 4년)씨는 매일 잔디밭에서 남자 친구와 함께 도시락 데이트를 즐긴다.
“남자 친구가 자취를 하기 때문에 제가 도시락을 두 개씩 싸와요. 예쁘게 모양을 낸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얹기도 해요. 솜씨는 별로 안 좋지만, 그래도 정성이니까….” 장소는 공대 앞 잔디밭이나 빈 강의
실. 둘이서 몰래 점심식사를 할 때면, ‘자~ 한 입!’ 하고 서로 먹여주기도 한다. 과 커플인 남자 친
구 김종운(25)씨는 “친구들한테 들키면 때로 눈꼴 사납다며 야유를 보내기도 하지만, 여자 친구와 먹으
면 밥이 꿀맛”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에 바쁜 고시반이나 대학졸업반의 경우 도시락 마니아들이 많다. 숙명여대 명신관 623호. 고시
를 준비하는 여대생 대여섯 명이 점심 때마다 모여 도시락을 까먹는다. 김지희(22·문헌정보학과 4년)씨
는 “하루에 두 끼를 학교에서 해결하는데, 시켜먹는 메뉴도 질려서 ‘집밥’을 먹고 싶었다”며 “하루
에 1만원씩만 따져도 한 달에 무려 30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23·행정학과 4년)씨
는 “도시락을 이용하면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마셔도 30분 넘게 시간이 절약된다”고 말했다.
물론 도시락족은 돈을 아끼려는 알뜰파가 많지만, 예전 대학생의 ‘헝그리 도시락’처럼 절박하지는 않
다. 작년 4월부터 일본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락을 먹어온 김미은(23·원광대 신문방송학과 4
년)씨는 “일주일에 세 번 도시락을 먹었더니 20만원이 절약됐다”며 “올겨울에는 진짜 일본여행을 갈
것”이라고 했다.
작년 9월부터 ‘도시락족’이 된 권혁상(24·국민대 경영학부 4년)씨는 “도시락은 싸는 재미, 같이 나
눠먹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한영실 교수는 “외국의 대학교에 가보면 전자레인지만 쫙 놓여 있는 곳이 있어
서 동전만 넣으면 도시락을 데워 먹을 수 있다”며 “위생적이고, 조미료가 적게 들어가서 건강하고, 시
간도 절약할 수 있는 도시락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문화가 우리도 정착되었으면 싶다”고 말했다.
(박란희기자 [ rhpark.chosun.com])
(손혜린 인턴기자=국민대 경영학과 4년)
(한현임 인턴기자=원광대 신문방송학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