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맺힌 혼혈인 어머니들 “워드 성공 그건 미국 얘기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2-13 오후 12:02:00
恨맺힌 혼혈인 어머니들 “워드 성공 그건 미국 얘기죠”
입력: 2006년 02월 13일 08:12:48 : 8 : 0

“나도 차라리 미국에서 딸을 키웠다면… 그 애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흑인계 혼혈인 딸을
둔 ㄱ씨(70·여)는 12일 미식축구 스타 아들 하인스 워드를 키운 어머니 김영희씨의 감동적 스토리를 보
면서 자신의 회한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런 일은 미국이었기에 가능했으며, 한국에선 어림도 없다”
는 것이다. 이 땅에서 혼혈아를 기른 어머니들은 대체로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혼혈인 딸을 운동선수로 키운 ㄱ씨가 취재에 응하고 있다. ㄱ씨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거부했다.

ㄱ씨는 경기 동두천시의 미군기지 인근에서 작은 주점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다. 미국인과 결혼한 딸
(44)이 한국을 떠난 지 20여년이 지났다.

정식 결혼으로 얻은 딸이 아니었고, 군인이었던 아버지 얼굴 한번 못보고 자랐지만, ㄱ씨는 온갖 정성으
로 딸을 키웠다.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에 소질을 보인 딸을 훌륭한 선수로 키워내겠다며 연습과 시합을 꼼꼼히 챙겼다.
허드렛일을 해가면서도 딸 교육만큼은 최우선이었다. 딸을 혼혈아라고 비하하는 사람, 얼굴색을 이유로
딸을 선수 선발에서 탈락시킨 협회 관계자들과 멱살잡이를 한 일도 부지기수다.

어머니의 열성 덕에 딸은 20여년 전 고교졸업 후 국내 실업팀에 진출했다. 하지만 입단 후 3년이 됐을
때 딸은 15년간 해온 운동을 스스로 접었다.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접한 차별의 충격에 좌절하고 말
았다. 딸은 “이젠 지쳤다”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고, ㄱ씨는 그런 딸을 부둥켜 안고 함께 울었다.

ㄱ씨는 “딸이 딱히 이유를 밝히지도 않고 운동을 포기했지만 오죽했으면 이러겠나 싶었다”며 “엄마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뜻이었는지 이전까지 딸애는 놀림당했다는 투정 한번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는 딸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꿈을 품었던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에서 비슷한
사람들 속에 살고 있으니 딸애 마음 고생이 덜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ㅊ씨(54·여)도 흑인계 혼혈인 아들(24)과 함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미군 병사였던 아이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ㅊ씨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아들을 번듯한 한국인으로 키워내고 싶었다. ‘검둥이’ ‘튀기’라는 놀
림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들에게 ㅊ씨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놀림받지 않는다”고 수
없이 달랬지만 결국 아들은 초등학교를 그만뒀다.

공부에 미련이 남은 아들은 검정고시를 통해 중졸 학력을 얻고 다시 고교 진학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들은 학교 생활에서 또래 친구들로부터 피부색을 이유로 한 차별과 수모를 견디지
못한 채 또 다시 학교를 자퇴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 ㅊ씨는 당시 ‘차라리 애를 해외입양 보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8년 전부터 심한 요통을 앓고 있는 ㅊ씨 대신 아들이 벌이에 나섰지만, 혼혈인 데다 고교졸업장도 없는
그에게 안정된 직장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 가족은 아들이 주유소,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ㅊ씨는 노동능력 있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도 되지 못했
다.

기지촌 여성 지원 시민단체 ‘두레방’ 관계자는 “ㅊ씨는 아들에 대해 ‘부모 잘못 만나 교육도 제대
로 못받은 불쌍한 애’라며 측은해했다”고 전했다.

두레방의 상담지원 사례집에 따르면 1980년 흑인 병사와 결혼해 낳은 딸을 진학 전 이혼한 미국의 남편
에게 보낸 ㅍ씨(59·여), 89년 낳은 백인계 혼혈아를 6살때 해외입양 보내야 했던 ㅇ씨(43·여) 등 대다
수 기지촌 여성들이 이 땅에서의 자녀 교육을 포기했다.

예능계로 진출해 성공한 극히 일부의 몇명을 제외하면 대다수 혼혈아와 어머니들은 마땅한 생계수단도
없이 사글셋집을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레방 관계자는 “혼혈인을 낳았다는 이유로 그 어머니 대부분은 수십년째 사회의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다”며 “혈통주의와 인종차별적인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혼혈인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
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한국판 하인스 워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두천|장관순·이고은기자 quanso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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