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감각 없다고요? 배워서 익히면 되죠”
입력: 2006년 01월 06일 경향신문



올해의 문화 키워드는 ‘유머’다. 2005년 시작된 ‘웃음 바람’이 올해는 더욱 거세게 불 전망이다. 지
난해 유머와 관련된 서적은 300여종이나 쏟아져 나왔고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도 유머 서비스를 발
빠르게 제공하고 있다. ‘근엄’이라는 얼굴을 벗어던진 CEO들은 리더십, 세일즈, 마케팅, 광고 등에
‘펀(fun)’을 도입하느라 분주하다.

이런 유머 세태의 한 중간에 서 있는 웃기는 남자가 있다. 3년전 이미 ‘품위유머 닷컴
(www.opinity.co.kr)’을 구상한 이상준 사장(39·사진). 그는 세칭 ‘품위유머’라는 다소 생경스런 트
렌드를 개발하고 개척한 주인공이다.

이 사이트는 9개월간의 담금질 끝에 2003년 6월 무료 시범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듬해 4월 CEO를 대상으
로 유료화의 문을 열었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생=행복=웃음’의 공식이 성립되는 ‘웰빙(well－being)’
바람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파동 등 암울한 사건에서 비롯된 집단 우울증이 맞물리며 ‘유머’로 생
활의 활력을 찾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죠.”

품위유머 닷컴은 매일 2~3개의 유머를 새롭게 업데이트한다. 6일 현재 품위유머 닷컴의 고객은 1,200여
명. 공짜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1년에 회비 15만원씩을 내며 사회 트렌드가 반영된 유머를 구입해야 한
다.

가입자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회 저명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건설업계의 ‘만담꾼’ 이창배 사장(롯데건설)에서부터 황영기(우리은행장), 김신배(SKT 사장), 오세훈
(변호사), 김진표(교육부총리), 신창재(교보생명 회장), 최일구(MBC 기자), 공선섭(주리비아 한국대사)
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이사장의 주요 고객이다.

이사장은 “연설을 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등 지도력을 발휘할 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유머 능력
이 필수적이라 느끼는 거겠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유머를 구입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는 유머감각은 이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고 덧
붙였다.

“극단적으로 말해 사회생활에서 능력이 없어도 유머감각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어요. 고압적인 사람보
다는 함께 있으면 재미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법이잖아요.”

그 일례로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들었다. 다소 급진적이고 위험한 정치가라는 이미지를 의외의 유머
러스한 모습을 TV토론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를 극복해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에 반해 딱딱한 분
위기의 ‘대쪽’ 이회창 후보는 결국 웃음을 보이지 않아 울음을 삼켜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처럼 웃
음은 이제 ‘대통령도 만들어낸다’는 게 그의 우스개 반 진담 반 분석이다.

그는 처음부터 웃음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웃기기보다는 웃는 쪽이었다. 웃음을 찾기 시작
한 것은 그가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부터. “직원들과의 교감이 절실했는데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유머가 필요했죠. 그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CEO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유머산업.

6일 현재 그의 사이트에 축적된 유머는 1,300개. 모두 이사장의 작품이다. 각종 자료를 통해 사회 모순
과 트렌드를 읽어내고, 수십만개에 달하는 영문 유머사이트를 기초로 영감을 얻는다.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이트가 다룬 ‘웃음이론’도 뒤적거리고 방송 3사의 코미디 프로, 수백권의 유머관련 서적을 독파했
다. 수십명의 평가위원단을 구성해 유머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인터넷에서 떠도는 ‘역대 대통령이 좋아한 김치’ 유머도 그의 작품. 전두환－깍두기(조폭수준의
철권정치), 김대중－나박김치(최초의 전라도 정권).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답 ‘겉절이’. 이렇게
겉도는 정권은 처음이라는 의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입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얼마전엔 모 대
기업 임원이 ‘품위유머’를 통해 유머감각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소문이 재계에 퍼졌다고 이사장
이 귀띔했다.

그럼 웃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는 ‘우월감’과 ‘해방감’이라고 말했다. 개그맨의 개그폭소는 자신
의 우월감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음담패설은 ‘성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는 최근 발간한 두번째 저서 ‘웃음과 유머, 그 비밀의 문을 열다’(opinity 발간)에서 이같은 독창적
인 웃음이론을 선보였다.

“웃음이 사라진 세상은 너무 각박하지 않느냐”는 그는 자신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는다며 휴
대폰 사진첩에 담긴 아이들을 보고 파안대소한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라도 웃을 수 있는 자세, 남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머는 이제 단지 삶의 윤활유가 아니라 경제적 능력”
이라는 게 그의 철학인 듯했다.

〈글 심희정·사진 우철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