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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2살 된 그 아이는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이는 가족과 함께 지구 반대편 유럽에 왔을 때에도 달라진 삶을 인식하지 못했다. 유럽이 '낯선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독일식 검은 빵을 한 입 깨물었을 때였다.
아이는 익숙지 않은 맛, 시크름하고 쓰고 딱딱한 검은 빵이 싫었다. 아이는 검은 빵을 먹어야 할 때마 다 거실의 피아노 뒤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그리곤 빵을 숨겼다. 어린 계집아이에게 '피아노'는 검은 빵 을 숨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오브제였다.
▲ 안나 킴을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만났다. ⓒ2005 배을선 그리고 26년이 흘렀다. 아이는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그토록 낯설던 검은 빵을 먹고 산다.
안나 킴(Anna Kim). 1977년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화가이자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오스트리아에 정착했 다. 어려서부터 문학작품을 읽으며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지난해에 처녀작 <그림의 흔적>(Die Bilderspur)을 출간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1972년도에 받았던 학술지원금을 안나 킴 또한 작년에 낚아챘 다. 올해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인 '잉게보르크 바하만 프라이스'(Ingeborg-Bachmann Preis)에 17명의 후보 중 한 명으로 초대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피부색 다른 이방인에서 오스트리아 작가로 성공한 안나 킴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11월 22일 비엔나 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하이세 쇼콜라데'(핫쵸코)를 주문했다. 쓴 커피보다는 아직도 초콜릿의 단맛이 좋다는 그에게서 쓴 빵을 뱉어내던 '계집'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아시아 부녀의 낯선 땅 정착을 첫 소설로
- 대전에서 출생했다. 유럽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아버지(김수평)가 화가이자 교수였다. 1978년 독일 함부르크 근처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의 예 술대학 교환교수로 발령 난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 독일로 왔고, 1984년 비엔나 미술대학으로 아버지 가 적을 옮기자 가족들 모두 오스트리아에 정착했다. 2년 뒤 아버지는 한국으로 귀환했으나 어머니와 오 빠와 나는 비엔나에 남았다. 아버지는 내가 12살 되던 해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 안나 킴의 처녀작 <그림의 흔적> 표지.
ⓒ2005 Droschl - 처녀작인 <그림의 흔적>에는 화가인 아버지와 딸만 등장한다. 안나 킴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설명이 있던데 어머니와 오빠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아버지는 한국에 나는 오스트리아에 오랫동안 떨어 져 살았다.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굵은 톤이었는지, 낮은 톤이었는 지…. 그나마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문득 사진이 없었다면 아버지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버지에 대해 내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의 첫 책 은 아버지를 알아가기 위한 책이며 아버지와 나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는 책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아버지와 내가 잘 알고 있던 아버지 모두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첫 책이다. 앞으 로 출간될 미래의 책들에는 어머니도 나올 수 있고 오빠도 나올 수 있다."
- 아버지를 그리며 쓴 책이지만 이 책의 서문에는 '클레멘스 바이어를 위하여'(Für Clemens M. Bayer) 라고 적혀 있다.
"클레멘스는 나의 남편이다. 10년 전 댄스스쿨에서 댄스파트너로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결혼한 지 2년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책을 완성시키기 위해 많은 도움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처녀작 은 남편에게 헌정하고 싶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예정이니 어머니와 오빠가 서운해 하지는 않을 것이 다."
- 아직 소설을 접하지 못한 한국 독자들을 위해 내용을 조금 소개해 달라.
"소설에는 화가 아버지와 딸이 나온다. 그들은 한국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이 사는 곳 도 독일인지 오스트리아인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는 유럽생활에 적응을 못하지만 딸은 그 반대다. 딸 은 아버지가 그린 그림들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아버지와 본인 사이에 이해할 수 없었던 간극을 좁혀나가 게 된다."
- 실제 아버지와 본인의 이야기인가?
"전혀 아니다. 아버지가 화가라는 점. 우리가 아시아인으로서 유럽에 살았다는 점은 사실로서 소설의 바 탕이 되었지만,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잘 이해했다. 아버지에겐 언어문제가 전혀 없었다. 독일어를 잘 하셨다."
- 왜 소설 속 아버지와 딸이 한국인이라는, 그들이 함께 살았던 곳이 오스트리아라는 명백한 암시가 없 는 것인지 궁금하다.
"일부러 그렇게 소설을 이끌어 나갔다. 낯선 곳이 꼭 오스트리아일 필요도, 이방인이 꼭 한국인일 필요 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소설 속 낯선 곳은 어느 곳이든지 될 수 있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라 면 어느 민족이든 상관없다."
"나는 40%는 한국인, 60%는 오스트리아인"
▲ 가장 권위있는 문학신문 중 하나인 <폴텍스트>에 실린 안나 킴의 기사. ⓒ2005 Volltext - 안나 킴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지만 유럽에서 성장해 살고 있는데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나?
"없다. 한번도 100% 한국인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100% 오스트리아인이라고 생각해보지 도 않았다. 나에게 독일어는 모국어와 같다. 한국어를 곧잘 하지만 한국인처럼 유창하지 않다. 언어에 따라 분류하자면 40%는 한국인, 60%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난 이 런 분류가 싫다. 나는 한국인도 되고 오스트리아인도 된다. 어느 나라 사람이 되던 그것이 '안나 킴'을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안나 킴'일 뿐이며 '안나 킴'으로 살고 싶다."
- 원래 본명이 '안나'인가?
"그렇다. 사람들이 많이 묻는 질문이다. 본명이냐고. 철학과 독문학을 배운 어머니가 몇몇 독일 이름을 매우 좋아하셨다. 또한 부모님 모두 가톨릭 신자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나는 '안나'로 오빠는 '요한'이 라는 독일어 이름이자 가톨릭이름으로 살고 있다."
- 이 곳에서 '안나 킴'을 오스트리아 작가로 받아들이는가?
"반반이다. 책도 내고 유명해지면서 이곳 신문들과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언론 사 기자들이 나를 '한국작가'라고 소개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살고 있고 독일어로 작품을 쓰고 이 곳에 서 책을 출판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한국작가'라고만 소개하는 신문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 지만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작가'라고 소개할 수도 있겠다는 관용이 생겼다. 어느 나라 작가로 불리든 이제 별로 상관없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 평소에 영감을 준 작가나 작품이 있나?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이라면 모두 좋아한다. 유진 오닐의 작품도 좋아한다. 여러 극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지만 카뮈와 뒤라스처럼 철학가들의 책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비엔나국립대학교에서 극장학 과와 철학을 전공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로 내 책 번역하는 일, 욕심 난다"
-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읽어보았나? 이번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도서전에 한국의 작가들이 주빈국 으로 초대되었는데.
"한국이 주빈국이 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작가들의 책을 한권도 읽어본 적 없다. 관심은 있었지만 이곳에서 번역된 한국책을 구하는 건 어려웠다. 나 또한 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기에도 바 빴다. 이제는 번역된 한국책들이 유럽시장에 나오는 것 같아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내 책 이 출간된 출판사 '드로슐'(Droschl)에서 이번에 시인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 먼저 이상의 책을 읽어 볼 계획이다."
- 한국어로 책을 쓴다든지 혹은 한국에서 책을 출판할 생각은 없는지.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작품을 쓰기에는 역량이 딸릴 것 같다. 그러나 좋은 번역가를 구해 내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사실 영어로 번역해 세계시장에 책을 출간하는 것보다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시장에 내 작품을 더 먼저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한국에는 딱 3번 가보았다. 내 작품이 한국에서 출간되면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 더 자주 가게 될 것이다. 한국은 언제나 감상적인 냄새 를 주는 곳이다. 한국에서 온 소포를 뜯으면 언제나 그 안에서 나오는 냄새부터 맡았다. 뭐라 형용할 수 없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그리운 냄새다."
▲ 주간지 <프로필>에 '잉게보르크 바하만 프라이스'의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기사를 장식한 안나 킴. ⓒ2005 profil - 이번에 학술지원금(비엔나시보조금)을 받았는데, 이 보조금은 받기 어려운 것이라고 들었다.
"1년에 한번씩 비엔나 시에서 작가 4명을 선정해 주는 상이다. 1만2천유로 정도(약 천오백만원)의 상금 을 받는다. 액수보다는 매우 영광스런 상이다. 물론 이 상을 매년 받을 수는 없으므로 나 같은 신인작가 들 중에는 부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비엔나국립대학교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 다. 소설 쓰는 것과 기사 쓰는 것은 그 성격이 달라서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 니까.(웃음)"
- 독일어 문학세계에서는 매우 권위 있는 잉게보르크 바하만 프라이스에서는 아쉽게도 수상하지 못했다.
"후보들은 미발표된 자신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 약 30분 동안 자신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데, 잘 읽는 것도 수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엔 내가 잘 못 읽은 것 같다."
- 독일어권 문학계에서 노벨문학상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엘프리데 옐리네크도 작년 노벨상을 거머쥐었 다. 혹시 노벨상을 받고 싶은 욕심은 있나?
"지금으로선 그냥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한국어로 내 책을 번역하는 일에 사실 더 욕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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