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가 그려낸 자연, 강렬한 생명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11-30 오전 10:54:00
올해로 90세인 화가 전혁림은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전시실 안을 걷고 있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이영미술관. ‘구십, 아직은 젊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자신의 전시(12월 18일까
지·031-213-8223) 때문에 그는 현재 살고 있는 경남 통영에서 잠시 올라와 있다. 걸음이 빠르지 않을
뿐, 그는 거동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도록에 사인을 하기 위해 붓을 잡은 손에 떨림도 전혀 없었다. 올
해에만 1000호 크기의 대작 두 점 등 유화와 수채화 수십점을 완성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품 90여
점이 걸려있다.

“아직까지는 잘 보이기 때문에 안경은 필요 없어요. 보청기도 아직은 필요 없고. 노쇠하면 기억력도 희
미해진다는데 나는 어떻게 점점 더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요. 혈압도 정상이고, 당뇨도 없고. 참 복
받은 거지요.”

전시 개막 날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다녀가는 바람에 그의 전시는 갑자기 국내 모든 언론에서 조명을 받
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주목을 덜 받았다. 87세에야 덕수궁
미술관이 선정하는 ‘오늘의 작가’에 뽑혔다.

통영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는 짙푸른 바다와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바다, 고깃배 등 그를 둘러
싼 자연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거기에 화려한 원색을 입힌 90세의 미감은 강렬한 생명력 그 자체다.

한국의 근대화가들은 주로 일본유학을 통해 서양미술을 배워 유화를 했지만, 전혁림은 독학을 했다. 학
교라고는 33년 졸업한 통영수산학교가 전부다. 하지만 근대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덕에 그는 토속적인
미감과 오방색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일본유학은 못 갔지만, 나는 대신 우리 민화, 벽화, 자수 같은 거 보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불화, 단
청, 비단이불, 전통 공예품, 이런 게 내 선생이지.”

그는 “서양미술사에서는 배울 수 없는, 우리 어머니들이 품고 있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에 내 평생을
바쳤고, 평생 원 없이 쉬지 않고 그렸기에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업이 마무리됐다
는 뜻은 아니다. 아직도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으면 자꾸 잡
념이 들어서 싫어요. 잡념이 뭐냐고? 죽음이지요. 죽을 때 죽는다는 공포 없이 편안하게 죽으면 좋겠
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작품에 전념을 해버려요.”

이전글 남성 34%, "아내 충분히 벌면 내가 살림"
다음글 한글印章 읽기쉽고 아름답게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 589 우)143-805 / Tel. 02) 456-7850 | Fax. 02) 456-7650 | E-mail. karp@karpkr.org
Copyright(c) 2008 KA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