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을 심하게 구부리고 변형시킨 한글 인장(印章·도장)의 글씨체. 그건 한글 글씨체의 왜곡입니다. 이 정체불명의 글씨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알아보기 어려운 한글 인장의 글씨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훈민정음체와 같 은 전통 한글체나 최근 새롭게 개발된 세련되고 아름다운 글꼴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글씨체 인장은 주로 관공서나 기관 단체 등의 직인에서 발견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한 글 인장의 글씨체 바꾸기 운동이 전개되어 왔지만 극히 일부 기관만 인장을 바꾸었을 뿐 대부분은 무반 응이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원로 과학사학자인 전상운(77) 문화재위원이 최근 글씨체 바꾸기 캠페인 을 벌일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문제는 한자와 달리 한글의 경우 구불구불한 글씨체가 근원을 찾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글씨체라는 점이 다. 이에 대한 전 위원의 설명.
“도장에서 볼 수 있는 꼬부랑 한글 글씨체는 한글의 역사나 서예의 역사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습 니다. 국적 불명이라는 말이죠. 우리 글씨를 망가뜨리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최근 들어 세련된 한글 글꼴이 많이 개발되고 있음에도 유독 도장에서만 형편없는 글씨체로 한글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인장 글씨체의 유래=19세기까지는 모두 한자 인장이었고 한자 인장은 대부분 전각(篆刻)이었 다. 전각은 한자의 전서체(篆書體)나 예서체(隸書體)로 새긴 도장을 말한다. 서예나 그림에서 흔히 보 는 낙관(落款)이 바로 이 전각이다. 전서와 예서는 모양을 구부리고 변형해 일종의 상형문자처럼 꾸민 글씨로, 한자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한글에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당시의 인장업자들 사이에선 한자를 유별나게 구부리고 변형시키는 것 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유행은 한글 인장이 등장한 광복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이 같은 글씨체로 관공서의 직인을 새기면서 잘못된 인장 문화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종합예술 한글 인장을 위하여=한글 인장의 글씨체를 바꾸자는 움직임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이 에 힘입어 1999년 새 국새는 대한민국 네 글자를 훈민정음체로 새겼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한 전각인은 “2001년 정부 기관에 직인을 바꿀 것을 요청했지만 바뀐 게 거의 없다”면서 “이대로 계 속 갈 경우 우리의 전통 문화는 국적 불명의 글씨 공해에 숨이 막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민간 기관을 중심으로 인장의 한글 글씨체를 바꾸는 경우는 조금씩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3년 인장을 바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 사업회의 차재경 사무국장은 “2년 전 우리 직인의 글씨체 가 집도 절도 없는 서체라는 지적을 받곤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해 무례를 범한 것 같아 매우 부끄러웠 다”면서 “곧바로 알기 쉬운 한글 서체의 직인으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전 위원은 인장의 한글 글씨체 바로잡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장은 전통적으로 서예와 조각이 합해진 종합예술입니다. 한글 인장의 글씨체 바로잡기는 인장의 예 술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전통 문화를 올바르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훈민정음에 대한 우리 의 예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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