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주는 부모] 심각한 자녀중심 문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05-06 오전 9:20:00
오늘날 부모들의 자화상은 자녀의 장래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입신출세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리
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지만 모두 자식문제, 불확실한 앞날 때문에 고민하고 수많
은 시간과 비용을 허비한다. 결국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육체적 골병을 앓게 되고 이들이 이
끄는 가정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는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의 가정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위하여=과외비 때문에 빚을 지는 것은 다반사고, 부족한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부업전선에 나
서는 어머니들의 무용담이 흔한 이야깃거리가 된 지 오래다. 자녀교육에 좋다면 몇시간 거리의 출퇴근
을 마다 않고 전학을 시키고, 아예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고 교육이민을 떠나기도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초·중·고의 유학출국은 2000년 4,397건, 2001년 7,944건에 이어 2003학년도
엔 1만4백98건으로 늘었다. 유학·연수비 명목으로 해외에 송금된 돈이 지난해에만 2조8천4백억원.
뿐만 아니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키즈산업은 불황을 모른다. 아동복, 완구, 어
린이 교육, 전문쇼핑몰 등 국내 관련 산업 시장규모는 2003년 10조원, 2004년 12조원에서 올해는 15조원
으로 추산되는 등 급성장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래없는 자녀중심의 문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
분 가정에서 자녀 출산과 함께 부부의 삶은 실종된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몇달전 퇴직한 최모씨(51). 요즘 주변에 “내가 헛살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닌다. 아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최상의 조건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켰고, 대학 입학 후엔 차를 사주고
수차례 해외여행 비용을 대주었다. 결혼시킨 후엔 며느리에게 밍크코트까지 사주며 정성을 쏟았건만 최
근 아들은 최씨에게 등을 돌렸다. 퇴직후 “노후준비를 해야겠으니 앞으론 너희가 알아서 살라”고 했더
니 발길을 뚝 끊은 아들에게 최씨는 배신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모씨 부부(51)도 마찬가지. 족집게 과외를 시켰지만 아들은 3수끝에 중위권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뭐든 부모 뜻대로 움직였던 아들은 대학생활에서의 자유를 주체하지 못해 연속 학사경
고를 받아 퇴학당했고, 앞으로 뭘 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무력하게 살고 있다. 그런 아들이 오히려 자신
들에게 “왜 나를 이렇게 키웠느냐”며 원망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자식문제에 전력을 쏟는 부부관계는 자식이 잘못될 경우 급격히 위
험해진다”며 “요즘은 특히 저출산의 영향으로 자녀에게 자신들의 인생을 거는 경향이 많아졌는데 이
는 자녀에게도 부모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춘수 조흥은행 재테크팀장도 “자녀 교육비와 노후준비 비율이 적어도 6대 4 정도는 돼야 하지만 자녀
에 대한 너무 큰 기대와 투자 때문에 노후준비는 거의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며 “자녀에게 모
든 것을 거는 생활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남자들은 성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회사에
서도 일과 가족생활의 양립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취업포털 잡링크가 지난해 직장인 1,89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32.8%가 매
일 야근한다고 답했다.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야근을 해도 업무를 다 못마치
고 집으로 가져가는 경우 역시 68.5%에 이르렀다. 회사일을 열심히 하면서 가족에 신경쓰기는 좀처럼 어
렵다는 말이다.





주5일제 등으로 여가가 많아진 것 같지만,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부업을 꿈꾸고 있다. ‘젊었을 때 벌어
야 한다’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많다. 지난해엔 투잡이나 부업을 고려해 본 적 있다는 응답이 64.8%였
는데 올해는 68.5%로 늘었다.(잡링크 조사)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임모씨(57) 부부는 폭발직전이다. 늘 군림하고 평소 손하나 까딱하지 않던
남편의 태도가 퇴직후에도 바뀌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예전엔 남편이 바깥일에 지장을 받을까봐 조심조
심했던 부인도 이젠 짜증이 난다. 임씨는 임씨대로 삶의 모든 것이었던 직장에서 나오자 자신감을 상실
했다. 가족들이 모두 저마다의 일을 찾아 뿔뿔이 집을 나서 혼자가 되면 일에 파묻혀 친구와 가족을 팽
개치고 살았던 지난날이 뼈져리게 후회스럽다.
모든 행복을 유예하고 출세의 노예가 됐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도 “공부해라, 그런건 출세한 후에 생각
해도 된다”고 가르친다. 아빠와 자녀의 답사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아빠와 추억만들기’의
권오진 단장은 최근 경비행기 타기 프로그램에 자녀와 함께 참여했던 한 40대 의사의 예를 소개했다. 평
소엔 일중독이고 주말에도 혼자 골프만 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이 의사가 보인 반응은 ‘공
부만 하면 되지, 왜 귀한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느냐’는 것이었다.
권단장은 “부인, 가족과 나중에 시간을 갖자, 여유를 갖고 놀자고 생각하지만 나중은 오지 않는다”며
“그러나 출세후 가족을 돌아보면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로 관계가 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
했다. 그는 “그토록 추구했던 성공은 신기루일 뿐 하루하루 현재의 행복이라는 토대 없이는 가족의 행
복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


송현숙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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