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결혼의 계절"에 돌아온 부조문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04-22 오전 10:27:00
청첩장이 ‘세금 고지서’처럼 느껴지는 계절. 이곳 저곳 챙기자니 주머니가 헐렁하다. 눈 딱 감고 갈
자리만 가려니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삶의 작은축제, 경조사’의 부조는 얼마가 적당할
까? 또 어디까지 챙겨야 하는 걸까?


#경조사, 갈까말까

교육전문회사에 다니는 유재훈씨. “각종 경조사 때문에 ‘비참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한
다. 올해 직장생활 13년째를 맞는 유씨는 입사 후 지금까지 주말이면 직원들의 경조사에 참석하느라 그
흔한 가족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일의 특성상 직원의 90%가 미혼 여성.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결혼식이 줄줄이다. 5월 중순까지 유씨가 받아놓은 결혼 청첩장만 9건. 예고 없는 초상이
나 집들이, 돌잔치, 부모님의 회갑, 칠순까지 포함하면 1주일에 2~3건의 경조사는 기본이다.

“경조사 없는 나라, 대한민국 좋은 나라!”를 외치는 유씨지만 막상 현장에는 누구보다 먼저 가 있다.
“경조사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또 회사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다 보니 어쩔 수 없
는 일”이라고 말한다.

경조사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통신회사에 다니는 조응조씨다. IMF 구조조정으로 오랫동안 신입사원
을 뽑지 않아 결혼 청첩장을 받아본 일이 까마득하다. 경조사라도 있어야 흩어져 근무하는 동료들도 만
나고 그 핑계로 ‘손금(고스톱)’이라도 볼텐데…. 사내 게시판에 경조사방이 붙으면 잔칫날을 받아놓
은 것처럼 설렌다.

#최고의 현금시장 ‘경조사’

‘큰 일이 닥쳤을 때 서로 돕는다’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이 부조, 곧 경조사 문화다. 한국
소비자연구원이 1998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 1인당 평균 11.4회의 경조사에 참석하고, 52만2천원
의 경조사비를 지출한다. 평균 결혼축의금은 2만8천8백원이다. 결혼 축의금만 따지면 연간 1조7천억원
의 현금시장으로 잠정 추산된다. 여기에 장례, 돌, 칠순까지 포함하면 ‘경조사’는 최고의 현금시장이
분명하다.

#얼마가 적당할까

2만원은 적고, 5만원은 부담스럽고…. 각종 경조사의 부조금은 얼마가 적당할까? 사실 수학공식처럼 얼
마로 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에서는 ‘3만원 내외의 선물은 괜찮다’는 주장이다. ‘3만
원’이 친척이나 특별한 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관계에서의 적정 부조금이라는 해석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김시덕 연구원(유물과)은 ‘3만원’이란 금액은 홀수를 선호하는 동양문화에서 비롯
된 금액이라고 설명한다. 동양문화에서 ‘3’은 천(天)·지(地)·인(人)의 조화이자 가장 안정적이고 완
전한 수로 꼽힌다. 혼례문화를 연구하는 김정철 교수(대전 우송정보대학)는 일반 예식장에서 하객 1인
의 식비를 1만5천~2만원선으로 잡을 때 최소 부조금은 ‘3만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호텔웨
딩 등 예식의 고급화 경향이 늘어나면서 최소 부조금도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뿌린 대로 거둔다

각종 경조사에서 볼 수 있는 ‘방명록(芳名錄)’이나 ‘부조계(扶助計)’. 방명록은 참석자의 이름만 적
는 것이고, 부조계는 참석자의 부조금까지 기록하는 것이다. 이 장부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
만, 처음 부조계를 작성하게 된 계기는 ‘내가 받은 도움을 잊지 않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다시 말하
면 ‘도움을 준 사람에게 도움을 되돌려 주기 위해 마련된 장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조’라는 형태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 특히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정주(定住)집단의 와해, 잦은 이직과 이사로 인한 신유목사회(新遊牧
社會)의 도래 등으로 과거처럼 각종 경조사의 부조금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 쉽지 않다. 부조금
을 내는 사람 역시 다음에 받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의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
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럼에도 ‘경조사 흥행’은 역시 많이 다녀야 많이 오고,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둔다는 것.

#이런 부조도 있다니

시간이 없어서, 정신이 없어서 놓친 부조를 대신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www.bujoo.com)’가 등장했는
가 하면 부조금 퀵 서비스, 식장을 채워주는 하객 아르바이트까지 다양하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결혼
식은 가을걷이가 끝난 농한기에 잡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장례 역시 5일, 7일, 9일로 길게 잡았으나
1973년 가정의례 준칙 제정 이후 3일장으로 굳어졌다. 식장에 따라서는 밤샘을 금하는 것도 요즘 장례식
장의 풍경. 한때 경조사에 화환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98년 이 규제가 위법이라는 판결후 화환이 다시 등
장했다.

화환 대신 ‘쌀’을 보내는 식장도 눈에 띈다. 지난 17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소영씨
의 결혼식에선 화환 대신 ‘쌀’을 전시해 놓아 이채를 띠었다. 또 예비 신랑·신부들의 당당한 결혼선
언이나, 청첩장에 결혼 블로그, 축의금 계좌가 등장하는 일도 새삼스럽지 않다. 젊은 커플들의 ‘결혼
식 흥행’을 위한 몸부림이 귀엽다.

백일, 돌, 결혼, 회갑, 칠순, 장례 등 각종 경조사는 인생의 마디와 매듭 같은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삶에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경조사. 삶의 축제를 함께 나눈다는 마음
으로 기껍게 즐길 일이다.

〈글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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