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은 발해대장경 계승한것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12-29 오전 11:54:00
발해대장경은 거란대장경의 母本 처음 확인
北方불교문화 발해→ 거란 →고려로 이어져

최근 발견된 8~9세기의 ‘발해(渤海) 대장경’〈본지 8월 7일자 A2면〉이 11세기에 제작된 ‘거란 대장
경’의 모본(母本)이었음이 확인됐다. 이로써 서기 926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발해 것을 그대로 옮
긴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거란 대장경을 상당 부분 참고한 13세기의 고려 대장경(팔만대장경)이 사실은
‘발해 대장경’을 계승했을 가능성이 높아져 발해와 고려의 문화적 계승관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실마
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지학자 조병순(趙炳舜) 성암고서박물관장은 “거란 대장경인 ‘대방광불(大方廣佛) 화엄경 (華嚴經)’
의 함차(函次)번호가 발해 불경으로 여겨지는 ‘대방광불 화엄경’ 권 제38 ‘대화령국장(大和寧國藏)’
과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함차번호란 대장경의 여러 권(卷)을 묶어 천자문 순서대로 매긴 번호로, 이 순서가 동일하다는 것은 곧
같은 계통의 불경임을 의미한다. 화엄경의 31~40권에 해당하는 현존 ‘대화령국장’의 함차번호는 ‘육
(育)’이다. 그 앞에 존재했을 21~30장은 앞 글자인 ‘애(愛)’가 되지만 송나라에서 청나라까지의 중
국 불경은 이 부분이 ‘장(章)’으로 돼 있는 반면, 거란 대장경은 똑같은 ‘애’자였다.


고려 팔만대장경(1251년 완성)을 만든 결정적 공로자인 승려 수기(守其)는 1087년 완성된 고려의 ‘초
조 대장경’과 북송(北宋)의 대장경, ‘거란 대장경’을 모두 비교·교감(校勘)했다는 내용이 ‘고려국
신조대장(新雕大藏) 교정별록(校正別錄)’에 기록돼 있다. 많은 학자들은 지금까지 이 내용을 근거로
“거란 대장경은 중원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대장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1991년 중국 산시성
(山西省) 잉셴안(應縣)에서 거란본의 일부가 발견된 뒤에도 그와 같은 대장경이 없어 ‘북방 불교문화’
의 실체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오노 겐묘(小野玄妙)는 “고려 대장경이 참고한 거란본은 거란에 앞선 세력(발
해)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아직까지 그 근거는 없었다.


‘동일한 함차번호’라는 것은 거란본이 발해본을 사실상 그대로 베꼈다는 얘기가 된다. 조 관장은 “거
란이 발해의 궁중 서고를 고스란히 넘겨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며 “여기서 고구려-발해-거란으로 이어
지는 고대 북방 문화의 계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려 팔만대장경은 이 ‘북방 문화계
통’과 당-송으로 이어지는 ‘남방(중원) 문화계통’을 모두 계승·종합한 ‘완정본’이라는 의미이며,
‘북방 문화’는 중원이 아닌 고려로 계승됐다는 것이다.


조 관장은 또 “당시 대장경은 황제의 칙령이 없이는 번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대장경을 발간한 세력
은 중원의 통치범위 바깥에 있었던 것이 된다”며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중국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불경 전문가인 박상국(朴相國)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불경사(史)를 다시 써
야 할 큰 발견”이라며 “그동안 잃어버렸던 북방 문화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고 평
가했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이전글 줄기세포 3000억弗 시장… 한국이 연다
다음글 새해맞이 여기 어때요?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 589 우)143-805 / Tel. 02) 456-7850 | Fax. 02) 456-7650 | E-mail. karp@karpkr.org
Copyright(c) 2008 KA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