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탐조여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11-29 오후 3:31:00
겨울이다.

새의 세상이다.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 든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초대하지도 않았고, 친절하게 길안내를 한 적도 없지만 그들은 어김없이 이 강산을 뒤덮는다.

시베리아와 몽골지역의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해 한국을 찾은 겨울철새는 열대지방의 새가 지닌 화려한 색
깔을 뽐내진 않는다.

가끔 머리나 부리의 색깔이 검거나 노란 희귀종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보는 이가 감탄할 정도의 아름다
움은 아니다.

하지만 수천, 수만 마리가 동시에 하늘을 난다거나, 그 와중에도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유지하는 모습을
볼 때는 진한 감동을 받기에 충분하다.

충남 천수만은 그 감동의 시작이다.

10월말부터 가창오리의 군무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천수만은 전 세계 가창오리(35만 여 마리)의 90%가량이 몰려드는 곳이다.

천수만에 남겨진 낙곡이 줄고 날이 차가워지면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금강하구 일대의 사주(沙洲)는 더 따뜻한 남쪽을 향해 떠난 가창오리가 두 번째 둥지를 트는 곳이다.

이 곳에서 그들은 두 번째 감동의 군무를 준비하고 있다.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의 경계를 이루는 금강하구의 사주는 둑 건설로 상류에서 토사를 머금고 흐르던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해 퇴적하면서 이루어졌다.

곳곳에 모래톱이 생겨나고 수초가 형성되면서 다양한 미생물이 자라고 있다.

쉴 공간이 마련되고 먹을 거리가 있으니 철새의 서식지로는 최적. 이 달 중순부터 고니, 청둥오리, 개
리, 중대백로, 마도요, 흰죽지, 붉은부리갈매기 등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

천수만에 얼음이 두껍게 어는 내년 1월이면 이 곳에는 40여종 50만 마리의 철새가 둥지를 튼다.

국내 최대 규모이다.

금강철새는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가까이서 철새를 접할 수 있다.

망월리, 금강대교 인근 사주 4~5군데에 철새들이 밀집해있다.

이중 와초리는 천수만에 이어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금강하구 둑에 위치한 이 곳을 어렵사리 찾았다.

강가에 가창오리 몇 마리가 보이는 듯 했지만 기대할 만큼의 숫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인기척에 놀라 저만치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실망이 앞섰다.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과연 황홀한 군무를 볼 수 있을까 은근한 걱정도 든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붉은 기운마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천지가 어둠으로 뒤덮이려는 순간, 강 주변에 묘한 굉음과 함께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가창오리의 군무가 시작된 것이다.

판소리 명창이 부챗살을 폈다 놓았다 하듯, 어부가 투망을 놓듯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내며 떼춤을 춘다.

갑자기 휙 하고 다가와 머리 주변을 한바퀴 돌더니 저 멀리 사라지기까지 불과 2~3분 남짓. 짧은 시간이
었지만 관람객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멋진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인근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금강에 왔다면 한번쯤 둘러 볼만 한 곳이다.

특히 겨울 언저리에 오면 운치를 더한다.

갈대의 높이는 평균 4m,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갈대위로 지나기 때문에 갈대숲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갈대가 바람에 부딪히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는 주변소음마저 앗아가 버린다.

연인들의 몰래 데이트 코스로 각광 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따금 강 주위를 퍼덕이는 철새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덤으로 주어진다.

철새의 향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구둑에서 2㎞가량 떨어진 유부도는 검은머리물떼새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1만 마리 중 5,000마리가 이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장항항에서 출발한 배는 20분가량 달려 유부도에 닿는다.

인근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엄청난 양의 모래가 몰려와 어마어마한 규모의 갯벌을 만들어놓았다.

갯벌에 널부러진 대합, 죽합은 주민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유부도의 아들 뻘 되는 섬인 유자도 인근에 특히 많다.

해가 어두워지자 검은머리물떼새들이 보금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누렇게 드러난 갯벌에 주민들이 세워둔 경운기들도 열을 맞춰 철수준비를 한다.

사그라지는 태양과 철새, 그리고 경운기의 묘한 대조, 겨울을 준비하는 저녁 한나절을 이루는 한 폭의
풍경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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