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시민단체 대상받은 ‘관방제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라기에 광주에서 일을 보고 일부러 들렀지요.” 전남 담양군 담양읍에는 요즘 관방제림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인 ‘생명의 숲’이 전국에 공모한 ‘사람 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숲’ 가운데 대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박기호 담양군 문화레저관광과장은 “주 말이면 보통 때보다 두 배인 100여대의 승용차가 관방제림을 찾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방제림엔 울 타리도, 입장료도 없고 당연히 탐방객 집계도 없다. 남산리에서 객사리까지 담양천 북쪽 제방 위 약 2 ㎞ 구간에 조성된 오래된 이 숲은, 시민들의 삶에 익숙하게 자리잡은 생활의 일부분일 뿐이다.
전남 담양군 담양천 2km 지금부터 350여년전 홍수막으려고 둑쌓고 나무심기 시작
지난 20일 생명의 숲이 주관한 남도 숲기행단은 관방제림 들머리인 향교교 밑의 음나무 거목 앞에서 발 걸음을 멈췄다. 세 아름은 족히 될 법한 이 ‘귀신 쫓는 나무’에는 ‘제 1번 나무’란 명찰이 붙어있었 다. 1991년 이 숲이 천연기념물 제 366호로 지정되면서 노거수 177그루는 모두 개별 관리대상이 됐다. 이들의 가슴높이 나무직경은 1~5.3m, 수령은 200~300살이 대부분이고 400살이 넘는 것도 있다.
“관이 만든 제방 숲”이라는 뜻
관방제림은 관이 만든 제방 숲이란 뜻이다. 담양천의 잦은 범람으로 인한 홍수피해가 잇따르자 인조 26 년(1648년) 담양부사이던 성이성이 둑을 쌓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 후 철종 5년(1854년)에는 부사 황종림이 연인원 3만명을 동원해 제방을 대대적으로 고친 뒤 나무를 더 심은 것으로 알려진다.
푸조나무 느티나무‥ 두세아름은 족히 될 200~300살짜리들도 두줄로 줄줄이 “여릉이면 온 동네 노인들이 그늘 아래로 모여든다”
제방에 두 줄로 늘어선 거목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탐스런 수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버찌 같 은 열매를 가득 매단 푸조나무는 제방 위 큰 나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어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많다. 우보명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이들은 모두 가지가 많고 오래 살아 정자나무로 많이 심는 수종”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나무 사이로 난 길에서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 타기, 사진 촬영, 운동을 한다. 숲해설가인 강영란씨는 “여름이면 온 동네의 노인들이 그늘 아래로 모여든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제방에는 나무를 심었다. 숲이 조성된 토석 제방은 수분의 흡수와 배출을 조절해 지반을 안 정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하천과 산을 이어주는 생태통로 구실을 했다. 하지만 하천정비사업 결과 대부 분의 제방 숲은 사라졌다. 기껏 남은 것도 제방 위 도로의 가로수로 쓰이는 게 고작이다. 함양의 상림 과 함께 관방제림이 소중한 까닭이다.
제방숲은 인공림이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은 “둑 위는 건조해 나무가 자리기 어려운데 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해 땅이 다져져 나무뿌리가 호흡하는데 지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각별한 관 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담양군은 오는 2010년까지 80억여원을 들여 느티나무와 푸조나무의 후계목을 심는 한편 고목의 외과수술, 사유지 매립 등을 해 나갈 계획이다. 또 담양천과 관방제림 사이를 생태적 으로 단절시키고 있는 포장도로를 걷어내기로 했다.
‘손때’ 묻은 자연이 아름답다
관방제림엔 애초 몇 가지 수종만 집중적으로 심어 자연림보다 단조롭다. 이런 인공림이 자연림보다 생태 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마을숲이 단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공간과 사람 사는 공간 사이에 경관요소가 추가되면서 새로운 서식공간을 제공하 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생태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자연은 종종 사람의 손길이 미쳐야 더욱 풍요로워진다. 관방제림의 당당한 아름다움에는 350여년에 걸 친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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