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안(五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06-14 오후 6:04:00
사람의 눈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육안(肉眼) 즉 살눈이다. 둘째는 식안(識眼)인데, 앎눈을 이라는 말이다. 셋째는 지안(智眼)으로, 철눈을 뜻한다. 넷째는 이안(理眼) 즉 까닭눈이다. 다섯째는 오안(悟眼)으로, 눈이다. 전통선도에선 살눈만이 눈이 아니라는 생각이 수련의 바탕을 이룬다. 살눈은 두말할 나위 없이 얼굴에 붙은 눈이다. 이 눈은 한쪽 밖에 보지 못한다. 아무리 얼굴을 돌려보아도 역시 면(面)하는 쪽은 한쪽뿐이다. 이에 비해 앎눈은 살눈이 보지 못하는 덩치를 볼 수 있는 눈이다. 살눈이 이쪽만을 볼 때 앎눈은 우리의 알음알이와 경험을 바탕으로 저쪽가지 더듬어 덩치를 알아차린다. 철눈은 모든 사람의 값어치 즉 가치와 보람을 알아내는 눈이다. 흔히 철눈은 짐승에게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다 철이 드는 것이 아닌 것처럼 철눈은 절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까닭눈은 모든 것들의 되어진 까닭과 있어진 나위와 내력을 밝혀 까밝히는 눈이다. 무엇이·어째서·어떻게된 것인지를 알아내는 눈이 바로 까닭눈이다. 깨달은 눈은, 즉 오안(悟眼)은 눈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눈이라고 할 수 없는 눈이다. 먼저 손꼽은 네 가지 눈은 우리에게 아는 것을 알리는 눈이다. 그러나 깨달은 눈은 그런 것이 없다. 다시 말해 보는 주관(主觀)과 보이는 객체(客體)가 구분되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무엇이라 내어놓을 수 없으니까 깨달음이요 깨침이다. 다만 밝다라고 내세울 뿐이다. 무엇을 아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깨달은 눈은 바로 그런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요즘의 세상살이에선 먼저 열거한 네 가지 눈만으로도 네 활개를 쭉 펴고 거들먹거린다. 그러나 수련의 세계에선 그럴 수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 마지막에 가선 참말로 깨달은 눈을 뜨지 않고는 참사람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깨달은 눈은 사람과 우주가 하나(一)를 이루는 밝은 바닥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곧 길(道)이요, 목숨이다. 일찍이 달마대사는 이 눈을 이신전심(以心傳心) 곧 마음으로 제자에게 전했다. 정법안장(政法眼藏) 곧 "바른법은 눈 속에 있다"는 말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깨달음 눈은 마음눈(心眼)이다. 눈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정법은 눈으로 전해진다. 이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 곧 글이 필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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