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들 가두리 양식장에서 낚시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3-09-24 오후 1:51:00
23일 오후, 아늑한 해변에 자리 잡은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 마을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지
난 12일 태풍 '매미'로 인해 무참히 사라진 마을은 온갖 쓰레기로 덮여 있어, 이전의 아름다운 모래 사
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을 주민들은 여름철마다 관광객들이 찾아와 모래 해안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답
답하다고 말한다.

조상림 와현마을 이장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며, "지금은 물과
전깃불은 들어오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살아갈 날이 까마득하다"

23일 오후 4시, 와현 마을은 KBS '수재민돕기' 생방송 준비로 분주했다. 대우·삼성 조선소 노동자들과
각종 사회단체 회원 등 500여명이 모여 해안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들과 와현 방파제 넘어 갯바위와 가두
리 양식장에서 낚시하는 낚시꾼들로 뒤엉킨 모습이었다.

참담한 수해현장에서 벌어지는 두 장면을 보면서 한 주민은 "할 말이 없다"고 분노섞인 투로 말했다.

해일로 부서진 집 앞에서 멍하니 온갖 쓰레기로 흩어진 것을 보고 있던 노파는 "이제, 우짜노. 망할 놈
들이 가두리 양식장에서 낚시하는 것을 보몬..."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이제 눈물도 마르고 한숨도 나오지 않는다"는 그 노파는 마을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마을을 정리하는 자
원봉사자들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와현 주민들은 한국방송 '수재민돕기' 생방송으로 피해 상황이 알려지게 되어 모처럼 환한 얼굴을 내비
치기도 했다. 수백명의 자원봉사들과 중장비, 덤프트럭 등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희망'을 찾
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그래도 한편에선, 와현 주민들의 "전장터(전쟁터)로 바뀐 마을을 보니, 우찌할꼬(어찌할꼬)"하는 목소리
가 와현 해수욕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예구, 쓰레기 태우는 연기로 가득해

와현 마을과 옆에 붙은 예구마을은 해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예구 앞 해상에 떠 있는 가두리 양식
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도 폭격을 맞은 듯 쓰레기로 가득하다.

태풍 이후 10일째 맞고 있는 예구도 옛 모습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온갖 쓰레기
를 태우다보니 시커먼 연기가 예구 마을을 덮고 있다. 바람에 날려 하늘로 치솟는 불길과 연기를 보니,
어느 전쟁터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 '무덤'들과 시커먼 연기에도 묵묵하게 일하는 경찰들, 복구는 끝이 없다.

한윤 일운 면장은 "이재민들을 위해 겨울 나기를 위해 콘테이너를 제공하는 교회연합회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하고, "아무래도 큰 문제는 쓰레기 문제"라고 쓰레기 처리에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각종 쓰레기는 12일부터 비상 대기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으며, 공
무원들은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23일 오후 늦게 예구 해안에서 철제와 섞인 스티로폼, 각종 폐자재 등을 태워 마을 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현재 거제 석포 쓰레기 매립장과 소각장에는 해안 쓰레기로 포화상태라고 한다. 거제시
는 1년 쓰레기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와현과 예구 마을 주민들은 복구를 통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연
일 말없이 묵묵하게 일하는 자원봉사자들과 여기저기에서 보내는 위로의 손길이 주민들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다.

<오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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