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식이 상팔자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3-05-22 오전 11:15:00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오래 전의 고등학교 윤리시험 문제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답안이 있다.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아닌 것의 답안 하나가 ‘무자식이 상팔자’였다. 진지하
게 시험을 보다 말고 나는 킥하고 웃었었다. 그저 ‘상팔자’라는 단어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당해보지 않고서는 그 어려움을 실제와 같은 크기로 가늠하기가 쉽지않다. 세상에서 자식
을 키우는 어려움만큼 힘든 일이 있을는지…. 요즘은 자식 수에 비례해서 부유함을 짐작한다고도 한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들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네살 먹은 둘째 아이가 전화기 하나를 접수해버렸다. 초여름의 햇살이 한가로운 오후였다. 오랜
만에 전라도 광주에 사는 후배가 전화를 했다.
“어머, 반가워. 요즘 잘 지내니?…..”

아줌마 특유의 수다를 떨려고 막 자세를 잡는 사이에 색종이를 오리고 있던 아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야?..나도 바꿔줘 봐…나도 바꿔줘..”
나는 왼손으로 부지런히 아이를 밀치며 통화를 해야 했다.

순간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전화선에 들이미는 게 아닌가….
아들만 둘이라 연일 말썽이 끊이지 않지만 그리 큰 사고를 치는 일은 드물었다.

다른 집은 아이가 비디오를 두 대 째 고장을 냈다든지, 수화기를 부쉈다든지 하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
데, 우리는 기껏해야 아끼는 CD를 여러 장 망쳐놓았을 뿐이었다. 물론 장난감은 수도 없이 부쉈지만…

통화를 하다 말고 먹통이 되었다. 느닷없이 끊기자 후배가 전화를 두 번이나 더 했는데 이쪽에서는 잘
들리는데 그 쪽에서 혼자 여러 번 부르다가 끊는 것이었다.

수화기에 매달려있는 동글동글 말린 전화선이 3분의 2가 끊겨 겨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어깨에서 기운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왜였을까….

그렇지않아도,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도 더 줄일 데가 없는지 살펴보는 상황에서 멀쩡하던 전화기가 못쓰
게 되었으니….

순간 이 아이를 호되게 야단칠까, 적당하게 타이를까 잠깐 고민을 했다. 아이는 벌써 엄마의 기색을 알
아채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어느 고급식당에서 친척이 사주는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날도 둘째 아이가 자리에 앉지않
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나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큰소리 내지않고 아이를 데려다 타이르기
바빴다.

그때 어느 분이 그러셨다.
“서양에서는 아이들 그렇게 키우지 않는다. 잘못을 하면 그 자리에서 따귀를 후려쳐서 키우더라.”
삼십대 중반인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매번 헛갈린다. 어느 것이 옳은지, 혹은 공정한지.

아직 취학전인 아이 둘을 키우기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 사춘기를 맞고 머리가 굵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이 할인매장을 세 군데나 다녀서야, 기능도 좋고 우리상황에 맞는 전화기를 사왔다.
이번 기회가, 고물이던 전화통을 바꿀 기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둘째 아이를 유난히 예뻐하는 남편 또한 크게 야단치지 않았다.
그도 늘 ‘엄한 아빠’와 ‘폭력적인 아빠’는 다른 거라고 구분하면서 종종 체벌을 하는 편이긴 하다.

우리집 전화기를 바꾼 날, 불현듯 웃음이 나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떠오름은 왜일까.

누군가는 그랬다. 자식은 태어나서 3년 동안 부모에게 평생동안 할 효도를 다 한다고. 그 어여쁨과 가
슴 가득 안겨주던 행복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인내심 테스트를 하게 할지 알 수 없다. 반면 그만큼의 행복 또한 안겨
주리라. 그로 인해 우리부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배우며 늙어갈 것이다.

/성지현 기자 (sjhgrace@hanmir.com) 오마이뉴스 2003.5.22(
이전글 어느 날 아침, 남편의 티셔츠를 입고
다음글 <브랜드 이야기>3줄무늬 스타일혁명 "아디다스"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 589 우)143-805 / Tel. 02) 456-7850 | Fax. 02) 456-7650 | E-mail. karp@karpkr.org
Copyright(c) 2008 KA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