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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배영대 기자] 원나라 법전 '지정조격(至正條格)'이 간행된 1346년은 원나라 순제(順帝) 6년이 며, 고려 충목왕(忠穆王) 2년째이기도 하다.
고려는 1백여년간 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몽고는 그들이 세운 원나라의 법인 '지정조격(至正條格)'을 고려에 적용했다.
'지정조격'은 고려 후기에 사실상 고려의 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정조격'은 현재까지 중국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북 경주시의 경주손씨 종가가 보존하고 있던 '지정조격'이 현재로선 세계 유일본인 셈이다.
경주손씨 종가로부터 보존관리를 위탁받아 자료를 검토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안승준 전문위원은 "고 려와 조선의 법제사 연구, 그리고 사회제도.풍습.언어 등을 연구하는 데 우선적으로 고찰해야 할 1차 자 료"라면서 "서지학적 측면으로 봐도 6백58년이나 된 고문서로서는 그 유례가 없다는 점에서 국보적 가치 가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또 "6백58년 동안 전해져 오는 과정에 책의 제본과 종이가 마멸되고 탈락된 부분들이 있기 때문 에 복원 처리가 시급하다"고 했다.
'고려사'1377년의 기록을 보면 "중앙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옥사(獄事)의 처결은 모두 지정조격에 의거하 게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 말기는 '지정조격'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사'1392년의 기사에 의하면, "정몽주가 대명률(大明律), 지정조격 및 우리나라(고려) 법령을 상 호 참작하고 산정하여 편찬한 새 법전을 왕에게 드렸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지정조격'이 고려말 법전 편찬의 주요 참고 자료였음을 알 수 있다.
안승준 박사는 "원나라의 고려 주재관인 달노화적(達魯花赤)은 고려의 관제(官制)와 풍속 예컨대 두발 (頭髮), 의복, 그리고 일상생활의 관습까지도 원나라 풍으로 바꾸고자 했다"면서 "당시 고려의 법, 즉 고려율도 그들의 법으로 바뀌었으니, '지정조격'이 바로 그들이 채택한 법전"이라고 말했다.
조선에 와서도 '지정조격'은 각종 외교문서나 형사법에 참고가 되었다.
특히 세종 연간에는, 세종이 직접 명해 '지정조격' 50부를 인쇄해 배포하기도 했으며, 집현전 학사들은 형법(刑法)에 관한 한 중요 도서로서 연구하고 있었음을 실록을 확인할 수 있다.
'지정조격'은 형사법인 '단례(斷例)'와 일반 법률인 '조격(條格)'으로 대분되며, 각기 2책씩 총 4책이 완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경주손씨 소장 '지정조격'은 '단례'와 '조격' 1책씩 모두 2책이다.
그 구성을 보면, '단례'에는 위금(衛禁, 왕궁 방위).직제(職制).호혼(戶婚).학규(學規).식화(食貨).대악 (大惡).간비(姦非).도적(盜賊).사위(詐僞).투구(鬪毆).포망(捕亡).살상(殺傷).잡범(雜犯).휼형(恤刑).평 반(平反) 등으로 구성돼 있다.
'조격'편은 훼손이 심한 상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문서연구팀장 박병련 교수는 "이번 '지정조격'의 발굴은 지난 10년간 교육부의 지 원 아래 국내의 여러 종가로 부터 고문서 자료를 위탁받아 관리해온 작업의 주요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중앙일보 200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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