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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여행가 김현-조동현씨…정밀 가이드북 손수 제작
2년 동안 KBS PD로 활동하다 8년여 전 명예퇴직해 자연인으로 돌아간 김현(64)씨. 그는 은퇴 후 생활이 더 바쁘고 즐겁다고 했다. 한국 방송인 동우회(同友會) 부회장·한국여행문화원 회장·한국 관광인클럽 공동대표·대학원 강사…. 그가 맡고 있는 공식 직함만 대여섯 개가 넘는다. 하지만 김씨는 “이중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부부(夫婦) 배낭 여행가 제1호’라는 호칭(呼稱)”이라고 했다.
보통 앙코르 세대에게 해외 여행은 이색(異色)풍물을 구경하거나 진기한 음식을 맛보며 편히 쉬다오는 외유(外遊) 코스가 아닌가. 예순 나이를 훌쩍 넘긴 이들이 아들뻘 대학생에게나 어울리는 배낭 여행을, 그것도 부부 동반으로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 마디로 ‘복덩어리’입니다. 배낭여행 경비는 여행사의 패키지 관광상품과 비교할 때 3분의 2 정도면 충분합니다. 모든 일정과 방문지 등을 직접 설계해 완벽한 자유를 누리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부애(夫婦愛)가 쌓여 금슬이 한결 더 좋아집니다.”
이런 묘미(妙味)에 이끌려 이들이 배낭 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만 4년째. 남편 김씨가 먼저 ‘터’를 닦아놓은 후, 부인 조동현(61)씨가 지난 99년 교직에서 물러나 합류하면서 배낭여행 부부 커플이 탄생한 것. 이들이 함께 떠난 해외여행은 지금까지 50여 차례고, 가 본 나라는 143개국에 달한다.
김씨 부부의 배낭 여행 스타일은 남들이 쉽게 흉내내기 힘들 정도로 특이하다. ‘모든 준비는 부부가 철저히 역할을 분담할 것’ ‘여행 중 한번은 반드시 가장 맛있고 멋있는 집에서 식사할 것’ ‘모든 교통편을 이용해 볼 것’ 등의 ‘여행 십계명(十戒命)’을 만들어 실천한다. 여행 계획은 군대의 도상(圖上)훈련을 능가할 만큼 촘촘하게 짠다.
“출발 전에 각국의 자료를 모아 현지 교통편·숙박시설·관광명소·음식점 사정 등을 담은 여행 가이드북을 별도로 만들지요. 세심히 조사하다 보면 A4용지 크기 대학노트로 세 권이 넘는 분량이 됩니다.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명소(名所)를 찾아 여행의 진수(眞髓)를 만끽할 때 모든 피로가 사라지지요.”
루이 14세 때 세워진 세계 최초의 커피 전문점인 파리의 ‘르 프로코프’와 워싱턴 DC의 맥주 전문점 ‘브릭스 퀼러’ 같은 곳이 이들의 대표적인 발굴 작품이다. 김씨 부부는 배낭여행지에서 몇가지 불문율(不文律)을 정해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예컨대 여행지 기념품은 10달러가 넘지 않는 것만 구입하며, 숙박시설은 별 두 개짜리 이하 만을 이용한다. 또 배낭여행 중 일 주일에 하루는 재충전을 위해 반드시 휴식을 취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저녁 그날 일과와 소감 등을 녹음하는 것도 단골 메뉴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여행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각자 한 시간 정도씩 소형녹음기를 들고 떠들지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모아둔 녹음 테이프만 몇 백 개 됩니다. 기회가 되면 이걸 바탕으로 부부 배낭 여행 책을 쓸 생각입니다.”
부부가 같이 여행하면서 자주 다투지 않느냐고 묻자, 이들은 의외로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 부인 조씨는 “매일 아침 오늘도 두 사람이 사랑을 다지는 날이 되도록 기도하고 관광지나 식당·목적지 등을 결정할 때도 의식적으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배낭 해외여행 경험과 준비과정 등을 묶어 ‘여보, 우리도 배낭여행 떠나요’와 ‘여보, 우리 함께 떠나요’ 등 이미 두 권의 책을 냈다. 이중 ‘여보, 우리도 배낭여행 떠나요’는 3만여 권이 팔리는 대히트였다. 경기 분당에 있는 김씨 부부의 아파트는 2000여 권의 여행 관련 서적·파일과 세계 각국의 여행 기념품 200여 점이 모여 있어 해외여행 전문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직장을 그만두기 10여년 전부터 은퇴 후를 생각해 해외출장 등을 나갈 때마다 여행 자료와 책자를 모으고 정리하면서 꾸준히 대비한 게 큰 재산이 됐지요.” 김씨 부부는 “앞으로 건강과 주변 여건이 허락하는 한 배낭 여행을 하는 청년의 도전정신으로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글은 2002년 4월 26일 조선일보의 기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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