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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용품 가게를 왜 가나? 노인 취급 받으면 더 늙어. 그런 건 애들한테 사오라고 시키고 스가모(巢鴨)상점가에서 수다라도 떨어야 스트레스가 확 풀리지."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의 하야시(74)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지만 한달에 한두번은 동네 할머니들과 집에서 차로 40분쯤 걸리는 스가모(巢鴨)상점가를 찾는다.
뭔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가면 그저 편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하야시 할머니는 우선 시장길 안에 있는 고간지(高岩寺)에 들러 '도게누키지조(刺拔き地藏)'라는 불상에 참배한다. 가시를 뽑아주는 보살이라는 뜻의 이 불상은 병을 낫게 해주는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는 시장길을 산책하면서 상점들을 기웃거린다. 점원들이 모두 나이가 지긋한 덕에 얘기가 통한다. 식당에서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마치면 손자.손녀에게 줄 선물과 그날 반찬거리를 사들고 귀가한다.
하야시 할머니가 스가모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쓴 돈은 약 1만엔. 다들 이런 수준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오야기(68)할머니도 열성 '스가모 팬'이다. 어릴 때 즐겨 먹던 투박한 단팥빵을 파는 빵집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스가모에 가면 '오바상(할머니)'이라는 말을 안 들어서 좋아. 점원들도 내 나이 또래라 마음이 놓이고…."
한국의 노인들은 문 밖을 나서면 갈 곳이 마땅찮지만 도쿄 노인들은 이처럼 정해놓고 놀러 다니는 곳이 있다. 도쿄역에서 전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스가모 전통 상점가가 그곳이다. 손님이나 점원 모두 백발이 희끗희끗한 '노인의 거리'다.
정부가 예산을 들여 만든 노인복지시설도 아니고 노인용품 전문상가는 더더욱 아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구닥다리 시장 거리다.
그러나 이 '구식'이 노인들에겐 '복고풍'으로 먹혀들어 연간 9백만명의 노인이 이곳을 찾아온다. 시골 노인들이 단체로 구경 오느라 지방번호판을 단 관광버스가 매일 20~30대씩 들락거린다.
이 때문에 스가모는 일본 내에서는 물론 노인문제를 안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연구대상으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한국의 학자나 기업도 견학하러 온다.
스가모 상점가에 들어서면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 많다.
상점 내에는 어디에나 의자가 5~6개 정도 놓여 있다. 노인들은 체력이 약하므로 힘들면 아무나 들어와 쉬라고 준비해둔 것.
심지어 부인복 상점 마루요시에서는 할머니들이 가게 안의 의자를 차지한 채 왁자지껄하게 도시락을 먹고 있다. 다른 곳이라면 장사에 방해된다며 내쫓을 법한 데도 오히려 점원은 따뜻한 녹차를 대접해준다.
이 가게의 요시이 기미아키(吉井公明)사장은 "노인들을 즐겁게 만들어 가급적 많이 찾아오도록 하는 데 신경쓰고 있다"며 "그날그날 매상 올리려고 아등바등하면 장기적으로는 노인 손님들이 끊긴다"고 말한다.
부근의 야자키 상회는 손님들이 마실 수 있게 상품 진열대 위에 아예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과 차 주전자를 갖다 놓았다. 목만 축이고 그냥 나가는 손님도 많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야자키 하루히사(矢崎晴久)사장과 도모코(智子)부녀는 "손님이 고령자이므로 그에 맞게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20대인 도모코는 단골들에겐 손녀뻘이므로 귀여움도 받을 듯하지만 손님들을 절대 '할아버지''할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며 기분 상할까 반드시 '손님'이라고 정중하게 부른다.
그뿐 아니다. 손님들이 고령자이다 보니 대부분의 상점들이 50대 이상의 '실버 점원'을 두고 있다.
10대들이 가득할 법한 맥도널드 햄버거에도 노인들이 들락거리고 나이 지긋한 중년부인이 계산대에서 분주하게 주문을 받는다. 판매 경험이 많아서가 아니다. 외로운 노인들과 동병상련(同病相憐)격으로 말 상대가 돼주라는 뜻이다.
가게마다 가격표도 어색할 정도로 큼지막하다. 조그마한 손수건이나 양말의 가격도 A4용지에 꽉 차게 써 진열대에 붙여놓는다. 가격표가 아니라 포스터 수준이다. 노안으로도 쉽게 알아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스가모는 일본 노인들에게 단순한 시장이라기보다 '고령자를 위한 테마 파크'로 자리잡고 있다. 스가모 상점조합이 손님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온다'는 노인은 5% 정도고 절(高岩寺)에 들렀다 구경삼아 돌아본다는 노인이 81%에 달했다.
경제평론가 다케우치 히로시(竹內宏)는 "스가모는 외로운 실버세대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런 것이 고령화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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