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막강 FRB의 역사와 기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06-14 오후 6:05:00
FRB는 대통령도, 심지어 의회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특별한 기관이다. 흔히 '페드'(Fed)라고 부르는 중앙은행이다. 페더럴(Federal)의 줄임말로 그 자체가 연방이라는 뜻이다. 의장을 포함한 7명의 이사는 대통령이 지명해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임기는 4년. 사망 또는 본인이 사퇴를 하지 않는 한 보장된 임기다. 더구나 FRB는 연방예산을 타다 쓰는 곳이 아니다. 투자 수입과 일반은행으로부터 서비스수수료를 받아 운영하고 있어 의회도 회계감사를 할 수 없다. 자체가 독립된 기관인 셈이다. 무엇이 이처럼 FRB를 막강한 기관으로 만들었을까. 미국의 중앙은행 설립의 전국의 이념과 맥을 같이한다. 처음엔 연방정부의 파워가 강해야 나라의 틀이 잡힌다는 측과 독재정권의 출현을 방지하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주정부에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는 측이 팽팽하게 맞섰다. 대표적인 인물이 앨릭잰더 해밀턴과 토마스 제퍼슨이었다. 연방주의자인 해밀턴은 중앙은행의 설립에 찬성한 반면, 제퍼슨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결국 해밀턴의 논리가 먹혀들어 중앙은행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중앙은행은 '퍼스트 뱅크'(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였다. 1791년 의회가 20년 시한부로 이를 승인한 것이다. 일반 은행의 업무감독과 은행권 규제 등이 주 임무였다. 퍼스트 뱅크는 그러나 20년을 채우고는 문을 닫았다. 이때는 제퍼슨의 논리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감독기관이 없어지자 은행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대부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은행들이었다. 위조지폐가 남발하는가 하면 정실·부실대출이 심해 얼마안가 문닫은 은행들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이에 놀란 의회가 다시 중앙은행의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세컨드 뱅크'(Second Bank)다. 그러나 이번에도 20년 시한부였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앤드로 잭슨 대통령이다. '통나무 집'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백악관을 차지한 인물이다. 가난하게 지낸 탓인지 그는 중앙은행을 아주 싫어했다. 연방정부의 지나친 감독과 규제로 일반서민들이 대출을 못 받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당시 의회 분위기는 중앙은행을 영구적으로 존속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잭슨은 이를 거부, 두 번째 중앙은행도 결국 문을 닫게 됐다. 또다시 날림 은행들이 판을 치기 시작하며 온갖 비리가 터져 나왔다. 오히려 일반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중앙은행이 제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13년에 이르러서다. 의회가 연방준비제도시스템(Federal Reserver System)을 만들어 조직을 재정비한 것이다. 오늘날의 FRB는 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갖춘 채 기구만 확장했을 뿐이다. ▲조직과 기구 FRB의 최고 행정기구는 의장을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된 이사회(Board of Governors)다. 의장은 임기 4년으로 이사 중에서 선임된다. 대통령이 한번 임기 중에 지명할 수 있는 이사는 평균 2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7명의 이사 임기시작을 제각각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의회도 이사를 인준만 할 수 있을 뿐 FRB를 감독할 권한이 없다. 흔히 미국을 가리켜 '정치논리 따로, 경제논리 따로'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FRB의 이 같은 독자적인 기능 때문이다. FRB는 전국을 12개 지역으로 나눠 지역은행 총재를 두고 있다. 뉴욕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턴, 리치먼드, 댈러스, 세인트 루이스, 미니애폴리스, 애틀란타, 필라델피아, 캔자스 시티, 클리블랜드 등에 지역본부가 세워져 있다. 뉴욕은행 총재는 FRB의 당연직 부의장을 맡는 게 관례로 되어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 FRB의 최고정책결정기구(FOMC).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자율 등 주요 금융정책을 결정한다. 7명의 FRB 이사와 각 지역은행총재 중 5명(뉴욕은행총재는 당연직)이 1년마다 교대로 참여한다. 12명의 위원이 투표로 결정하지만 의장이 거의 절대권을 행사한다. 그린스펀의 서류가방이 얄팍하면 이자율이 내려가고 두툼하면 올라간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 1년에 10차례 회합을 갖지만 연초에 미리 스케줄이 잡혀있어 이자율의 변동을 미리 점쳐볼 수 있다. ▲FRB의 기능 이자율뿐만이 아니라 통화량까지 조정한다. FRB가 통제하는 금리는 주로 단기 금리, 시중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릴 대 적용되는 '오버나잇'(overnight rate), 그리고 FRB가 시중은행에 적용하는 할인율 등 세 가지. 이번엔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0.5%포인트나 올려 파급효과가 커진 것이다. 통화량 조절은 정부 보유 주식과 채권의 매각을 통해 이뤄진다. 경기가 이상 과열 조짐을 보이면 뉴욕증시에 이들을 내다 판다. ▲'그린스펀'은 누구인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발휘했다. 피아노는 물론 특히 색서폰연주는 천재적이었다고 한다. 처음에 줄리아드 음대에 진학했다. 1년을 다니다 그만두고는 재즈밴드에 입단, 전국 순회연주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에 눈을 뜨게 된 그린스펀은 사립명문인 뉴욕대학(NYU)에 들어가 최우수 졸업생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NYU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는 월스트릿에서 실물경제를 익혔다. FRB의장이 된 것은 로널드 레이건 시절인 1987년. 이때부터 그린스펀은 카리스마적인 존재로 떠올라 '금융계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자신의 신념대로, 또 실물경제에서 익인 논리를 9조달러의 경제에 대입해 성공한 것이다. 성장배경도 특이하지만 그의 대인관계도 아주 유별나다. 그의 유머는 워싱턴 사교계에서도 명성이 높아 내노라하는 언론계의 거물들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 출 정도이다. 바버러 월터스와 오랜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경제의 달인답게 숫자를 이용하는 조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2년 전에는 20년 연하의 여기자와 재혼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위트가 넘쳐나는 인물이지만 그는 한번도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를 가진 적이 없다. 현재 나이 74세. 이번 4번째 의장직에 연임돼 78세까지는 '황제'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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