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 하면 다시 불거지는 공립학교 기도금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06-14 오후 6:04:00
헌법의 권리장전은 1조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했다. 의회는 어떤 경우라도 '국교'를 인정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억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고 못박았다. 다음에 나오는 게 표현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집회와 청원의 권리다. 첫머리에 종교를 올려놓은 것만 봐도 이 나라의 건국과 종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기독교 신앙이 바탕이 되 나라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고 또 믿을 수 있다는 규정이다. 헌법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종교를 맨 먼저 거론한 건 영국의 국교 때문이다. 국교를 세워놓고 다른 교파를 박해하자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온 것이다.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가를 깨달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를 기본권으로 명시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헌법에 나와 있는 종교란 개신교만을 의미했다. 일부 지역에선 백인이라도 카톨릭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요즘같이 이슬람을 비롯한 모든 종교가 자유를 누리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전국을 놀라게 했던 공립학교 풋볼 게임에서의 기도행위가 위헌으로 판결난 것도 '국교' 조항 때문이다.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정치와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헌법엔 이 같은 말이 없다. '국교' 금지를 확대 해석한 것 뿐이다. 풋볼 경기장에서 짤막한 기도를 한다고 주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종교가 될 수 있을까. 거의 5백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인터넷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게 한편 생각하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올 대통령 선거에는 후부마다 '거듭 태어난 신앙인'이라며 종교인들의 환심을 사려 애쓰고 있어 대법원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국가는 물론 국기에 대한 충성서약에도 '신'이란 단어가 들어 있다 심지어 돈에도 '우리는 신을 믿는다'는 구절이 박혀 있을 정도다. 또 있다. 연방의회는 기독교 성직자가 정식 스탭으로 근무하고 있다. 공립학교에서의 기도금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2년 대법원 판례로 학교는 물론 공공기관에서의 종교의식이 금지된 것이다. 사례를 중심으로 종교자유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1962년의 대법원 판례는 뉴욕주 교육위원회가 모든 공립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기도를 올리는 것을 허용한 게 발단이 됐다 .물론 자발적인 참여라는 단서를 달았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믿고 의지합니다. 우리와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조국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영어로는 꼭 19개 낱말로 되어있다. 초교파적인 기도문이어서 카톨릭은 물론 이슬람도, 유대인들에게도 거스릴 게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기도문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기도문을 허용함으로써 뉴욕주는 특정 종교를 공식 인정했다는 것이다.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대법원은 막무가내였다. 권리장전 1조의 '국교' 조항을 위반했으나 당장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케네디 시절에 나온 판례다. 대통령은 '인간의 권리란 국가의 자비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신의 손에서 나온다'며 반발했지만 심권분립이 철저한 나라이니 케네디도 대법원의 결정에 도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기독교 신앙이 바탕이 된 나라여서 곳곳에 이 같은 전통이 배어있다. 국기에 대한 충성서약에도 신이라 단어가 나온다. 1954년 연방하원은 '하나님 아래 한 국가'(one nation under God)란 구절을 포함시켜다. 상원도 이에 동조했다. 상원의사당 입구에 붙어있는 '우리는 신을(의 은총을) 믿는다'(In God We Trust)는 말을 건국 이념으로 해석한 것이다. 1865년부터 모든 동전에 쓰여지고 이는 이 구절은 이젠 지폐에까지 인쇄되어 있다. 이뿐인가. 국민의 세금으로 세워진 각급 정부의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라는 성서의 내용이 장식된다. 1952년에는 의회가 '전국기도의 날'을 정해 대통령에게 이를 시행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매년 열리는 백악관 조찬기도회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당시 대법원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영국 국교회의 '공동기도문'(Book of Common Prayer). 모든 학교에서 클래스를 시작하기 앞서 올리는 기도다. 지금도 여왕이 수장으로 되어 있는 영국 교회의 이 기도문이 뉴욕주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게 당시 다수의견이었다. 소수의견을 낸 판사들은 뉴욕주의 기도문은 미국의 종교적인 유산에 따랐을 분이라고 반발했지만 다수의견에 밀렸다. '국교'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거의 30년만에 공립학교에서의 기도행위가 대법원에 올랐지만 이번에도 역시 6대3으로 위헌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번 텍사스에서 논란이 된 기도는 뉴욕주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풋볼경기가 열리기 전 신의 축복을 빌겠다는 단발성 기도다. 이마저 안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이어서 여론이 들끓게 된 것이다. 대법원 판사들도 연방의회 마냥 기도로 일과를 시작하기는 마찬가지다. 초대 대법원장인 존 마셜 시절부터 심리에 들어가기 전 신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가 관례처럼 되어 있다 .'하나님은 미합중국과 명예로운 이 법원을 지켜 주소서'라는 내용의 기도다. 대법원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기도행위는 '국교'시비를 낳고 대법원은 면책특권이 부여되는 셈이어서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것이다. ◇ 침묵의 기도 기도행위가 위헌판결을 받자 앞으로는 '침묵의 기도' 캠페인이 일어날 조짐이다. 대법원도 침묵의 시위만큼은 규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마저 위헌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대법원은 1985년 교사들이 학급시작 전 자발적으로 침묵의 기도를 해도 된다는 앨라배마주법을 심의, 역시 이것도 종교의식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정부와 교회의 분리라는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침묵의 기도가 결코 종교의식이 아닌 세속의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 논란이 일어날 것 같다 .기도가 아닌 묵상 또는 묵념의 행위라는 것이다. 버지니아주는 지금도 침묵의 기도를 합법화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말없기 기도나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주 검찰총장은 침묵의 기도 행위를 의무가 아닌 학생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권후보로 나선 앨 고어 부통령이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도 표를 의식, 캠퍼스에서의 기도행위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한 정부가 규제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대법원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어 냉가슴만 앓고 있을 뿐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제정한 권리장전은 일점 한획이라도 고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으니 한편으로는 미국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융통성 없는 헌법이 혹 나라의 장래를 망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 의회의 성직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의회에는 풀타임 성직자(chaplain)가 있다. 그것도 상·하원 따로 있다. 연봉은 하원이 13만달러, 상원은 20만달러가 넘는다. 의원의 보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회기가 열리는 동안에는 매일 시작 전 기도를 하는 게 주요 업무다. 의회 성직자 아이디어는 독립선언을 하기 전 대륙회의에서 나왔다고 한다. 연방의회의 전신이다. 신망이 높은 성공회 신부를 불러 기도를 하게 하면 영국에 치욕을 안겨줄 것이라는, 어찌보면 정치적 의도가 한자락 깔린 것이다. 정식으로 성직자가 임명된 건 1789년. 하원은 장로교 목사를, 상원은 성공회 주교를 각각 선임했다. 가톨릭 신부가 임명된 건 1832년 상원이 처음이다. 하원은 지난 3월 시카고 교구의 대니얼 카플린 신부를 지명, 역사상 두 번째 카톨릭 채플린이 탄생했다. 예정과 달리 요즘은 카톨릭 신자가 하원의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의석 분포도 만만치 않아 언젠가는 유대교 랍비와 기독교 성직자가 교대로 기도를 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의회 채플린도 위헌 시비에 휘말렸지만 그때마다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의문을 채택하고 또 대법원도 이를 뒷받침해 줘 지금가지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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