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으로 가는 사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06-14 오후 6:04:00
사회적으로 난리법석을 떨어야만 귀를 기울이는 사회인가? 최근 불거진 몇 가지 사회적 갈등이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거나 봉합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된다. 갈등해결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겠지만 한국사회는 그 메커니즘이 전무하다는 느낌이다. 문제는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에 있다. 물론 우리국민들의 의식 수준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법과 제도로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항상 정치적 사회적 해결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제도 내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일단 길을 막고 보는게 관례다. '빨리빨리'식의 사고가 이같은 행동을 낳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의 의식과 관행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정상적인 제도와 절차 속에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과연 누가 힘들게 거리로 나서고, 욕을 얻어 먹어가며 파업에 나설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결국 우리사회는 쇼크를 던져주고 난리법석을 떨지 않는 한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얘기다. 한번이라도 소란을 피워야 그제서야 여론이나 정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게 현실이다. 국민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평소에 고질병의 징후가 나타났는데도 치료를 미루고 있다가 곪아터지거나 거동을 못할 지경이 돼서야 병원을 찾는 격이다. 한마디로 극단주의(Brinkmanship)의 나라다. 경제는 선진국수준이고 IMF의 아픔을 겪은 만큼 성숙됐다고 하짐나 이점에 관한 한 한치도 바뀐게 없다. 의료계 파업이 단적인 예다. 여론과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으면 현행 의약분업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문하다. 금융파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불법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파업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관치금융'을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교육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일선 교사들이 중심이 돼 제기한 교육개혁을 일방적으로 짓밟기만 한 결과 한국의 교육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교육제도가 경쟁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조기유학을 틀어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문제해결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의사결정과정은 불합리하고,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제도와 절차는 턱없이 수준 미달이다. 우리 스스로는 바꿀 때 '화끈하게' 바꾼다고 평가하지만 자랑할 일이 아니다. 평소에 제대로 했다면 화끈하게 바꿀 일도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이같은 갈등해결구조는 당사자나 우리사회나 엄청난 고비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건물로 치자면 부실로 지어진 상태에서 유지보수조차 게을리 하다가 무너져 벼리면 다시 짓는 식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시스템 부재현상이 위기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IMF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도 알고 보면 평소에 나타난 문제점을 깔아뭉개기만 하다가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 총수들은 실무자들의 지적을 묵살하거나 제대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로막았고, 정부당국은 관치금융의 폐해에 대한 지적을 애써 눈감아 온 결과 재앙을 초래한 걸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 간단하다. 사태가 벼랑 끝까지 가지 않도록 평소에 문제점을 고쳐나가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같은 시스템적인 해결에는 시장원리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는 보건의료분야나 교육제도가 끝없이 파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시장의 순리대로 맡겨 놓았다면 과연 의료제도와 교육제도가 이 지경이 됐을까? 시장의 순리를 거스르고 관료들의 전문성과 합리성에만 제도를 맡기기엔 이젠 시장의 힘이 너무 커졌고 국민들의 기대수준도 높아졌다. 이제 의사결정의 주체를 관료의 손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넘겨야 한다. 재벌총수의 독단을 방지하고 정부의 압력에서 벗어나는 게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핵심이듯이 보건의료 및 교육분야에서도 문제해결의 주체를 시장에 맡기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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