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개념, '세대 충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06-14 오후 6:04:00
공무원으로 퇴직한 아버지 박모씨와 딸은 지난 6월 14일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심한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딸이 "북한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반공교육에 우리가 속았다"고 한 말이 아버지 박씨를 화나게 했다. 박씨가 "우리측이 북쪽의 술수에 춤을 췄다. 북한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고 응수한 것이 논쟁으로 번져 며칠간 하지 말을 하지 않을 만큼 사이가 나빠졌다. 3세대가 함께 사는 김모씨 가족은 요즘 북한 얘기만 나오면 집안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한국전쟁때 남편을 잃은 노모는 "빨갱이들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며 역정을 내고 대학생 아들은 "미국·일본에 놀아난 분단 역사를 끝내고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찌르자 공산장'이라는 반공표어가 뇌리에 생생한 김씨 역시 정상회담에서 본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 때문에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을 동포로 보는 시각과, 적으로 보는 상반된 북한관이 사회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런 대립은 한국전쟁·무장간첩 사건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1950∼1970년대 멸공·반공, 80년대 안보, 90년대 통일 등으로 바뀐 교육을 받은 세대별 시각차도 존재한다. PC 통신의 남북 정상회담 관련 토론방에서는 '북한은 적(敵)이 아니라 손을 맞잡아야 할 한 민족이다' 등의 시각과 '사흘간 만나 웃고 악수했다고 해서 북한이 변한 것은 없다' 식의 관점 사이에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북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북한 정상 김정일 동무 I LOVE YOU' 등의 친북 사이트와 '북한에 인권의 햇볕을' '북한 인권 시민연합' 등 반북 사이트들이 잇따라 개설됐다. 개혁·진보단체와 반공단체가 각각 상반된 내용의 행사를 준비중이어서 자칫 대결로 치달을 위험성도 없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경실련 등은 북한에 컴퓨터 보내기 등 민간 지원 행사와 남북 민간협력 세미나 등으로 잘못된 북한관을 바로잡는 활동을 펼 계획이다. 이에 반해 우익·반공단체들은 "북한은 아직 남한을 위협하는 실체"라며 6·25 50주년을 계기로 대대적인 반공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상반된 북한관의 혼재가 당분가 불가피할 것이며 북한을 '안보와 협력의 대상'으로 보면서 참모습을 확인하는 작업과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 '겉 핥기식' 北 바로 알기 각 분야에서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북한 바로 알기'가 겉핥기식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각 업체들은 인터넷상에서 관련 행사나 정보 제공 등을 하고 있으나 단편적 상식을 소개하거나 퀴즈잔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 업체는 금강산 여행권 등의 경품을 내건 대대적인 북한 알기 행사를 벌였다. 하지만 행사 내용은 '김정일의 공식 직함이 무엇인가' '북한의 국화는 무엇인가' 등을 묻는데 그쳤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북한 관련 인터넷 사이트 역시 대부분 북한의 요리·노래 등을 소개하는 정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사이트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남북 정상회담의 시작과 함께 일부 대학가에서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하지만 대자보이 대부분으로 북한이 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소개에 할애돼 있다. ● 독일은 어떻게 했나 전문가들은 이념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독일은 통일(1990년) 20여년 전부터 체제가 아닌 민족에 중점을 둔 교육을 실시했다. 서독은 60년대부터 정치교육법을 제정, 통일대비 교육을 제도화했다. 특히 63년 내무부 산하에 연방정치교육센터를 설립, 통일교육의 목표설정·재정지원·교재교육용 매체개발 등을 실시했다. 이 센터에서는 독일의 역사·정치·경제를 담은 '정치교육을 위한 정보'라는 격월간지 1백여만부를 간행하는 등 대중매체를 통한 교육에 힘썼다. 70년대 이전 동·서독 교과서는 서로 상대 체제가 반사회적·비인도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72년 양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관계의 발전을 모색하자는 기본조약 체결을 한 후 비방적 내용은 대부분 삭제됐다. 78년 11월 23일 통일의지를 학생들에게 시어주는데 학교가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아래 문교부 장관회의에서 15개항의 '독일문제에 대한 교육지침서'를 마련,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통일 교육을 시작했다. 독일이 통일교육을 통해 이념의 대립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동질성과 민주주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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