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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인생의 시, 기차는 여행의 연인.’ 느림이 아름다움으로 존중받는 이즈음, 기차여행이야말로 느림 미학의 진수가 아닐까. 여행이란 본디 고속의 쾌감보다는 느림의 미학에 더 가까운 원시적 정서다.
초가을 느긋이 계절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분, 철길 따라 느릿느릿 질박한 이 땅을 한가로이 주유함은 어떠실지.》
##산중턱을 오르는 ‘하늘열차’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해 태백 산골로 가는 열차. 중앙선의 양평, 원주를 지나 제천에서 태백선에 오른 후로는 고깔모자를 닮은 높은 산과 깊은 골을 헤집고 달린다. 이어 영월역부터는 죄다 탄 더미 흔적이 역력한 탄광촌이다. 석항 예미 함백 증산 사북 고한 추전 그리고 백산(태백선 종점). ‘하늘열차’란 이 구간을 말한다. ‘은하철도 999’를 연상시키듯 탄광지대 산악의 아득한 중턱을 타고 오르는 열차를 두고 붙인 이름이다.
그 여행길의 절정은 태백시 추전역. 태백광업소에서 채굴된 석탄 더미가 수북이 쌓인 산비탈 역에는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해발 855m’라고 쓴 표석이 서 있다. 플랫폼의 서쪽에는 정암터널의 한 끝이 보인다. 한때는 국내 최장(4505m) 터널이었지만 지금은 실치터널(6128m·전라선)과 황학터널(9970m·고 속철도 추풍령관통)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뒷걸음치는 열차여행, 스위치백 철도
스위치백(switchback)이란 ‘자세를 반대로 바꾸다’라는 뜻. 앞으로 가던 열차가 후진해 가는 것을 말 하는데 나선형 철로를 가설할 수 없는 좁은 급경사에 놓인 계단식 철로를 오를 때 채용하는 방식이다. 그런 철길이 국내에 딱 한 곳 있다. 영동선의 심포리와 나한정 두 역 사이다. 두 역은 태백산 통리와 산 아래 삼척시 도계읍 사이 급경사로, 통리와 도계 두 곳의 표고 차(435m)가 그 경사도를 잘 말해 준 다.
스위치백의 포인트는 심포리와 나한정 두 역 가운데 있는 흠전역. 앞으로 달리던 열차는 흠전까지 오르 거나 내려서서는 뒷걸음쳐 심포리나 나한정역으로 간다. 이때 후진 구간은 상행선(청량리 행)의 경우 오 를 때, 하행선(강릉행)은 내려갈 때다. 후진할 때는 차내 방송으로 안내한다.
지금은 사라진 ‘인클라인’(모터로 열차를 견인하는 방식) 철길도 바로 이 비탈에 있었다. 구간은 통리 와 심포리 사이. 1940년 철도건설 당시 이 급경사(15도) 구간에는 스위치백 같은 우회 철길을 놓을 여력 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인클라인 철도였다. 급경사 비탈에 직선 철길을 놓고 위쪽 인 통리역에서 열차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인클라인도 화물차에만 해당돼 객차는 두 역이 종착역이었다. 그래서 승객은 열차에서 내려 가파 른 비탈을 걸어 오르내리며 다음 역으로 가서 갈아탔다. 노인과 여자에게는 고역이었지만 까까머리 중고 교생에게는 용돈벌이였다. 짐 운반은 물론 자리 잡아 주기가 수지맞는 아르바이트였으니까.
인클라인 철도가 사라진 것은 1963년이지만 스위치백 철길은 아직 그대로다. 이것도 퇴역할 날이 2년밖 에 남지 않았다. 공사 중인 루프(나선형 터널) 식 철길로 대체된다. 루프 식의 솔안터널(16.2km)은 작 년 말에 공사가 완성됐다. 정식 개통이 되면 국내 최장 터널로 등극할 예정이다.
##속세를 등지고 달리는 낙동강협곡열차
오직 철도만 통과하는 오지, 걷거나 자동차로 갈 수 없고 오직 기차로만 지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승부 와 분천, 두 역 사이의 ‘낙동강 협곡열차’(영암선) 구간이다.
백산역(태백선 종착점)에서 영주행 철길로 바꿔 타면 곧 철암역이다. 영암선(철암∼영주)의 시발이자 종 착점인데 철암역을 출발한 열차는 이내 물 흐름 빠른 강물을 벗 삼아 달린다. 낙동강이다.
추전역 근방의 백두대간 두문동재 산비탈(너덜 샘)에서 발원한 이 물은 태백에서 황지천을 이루어 구문 소에서 바위를 뚫고 흐르다 예서 비로소 강의 모습을 갖춘다. 그 거센 물살은 협곡을 이루고 그 협곡을 따라 영암선 철길은 달린다.
협곡의 끝은 경북 봉화군 현동. 철길은 바위를 깎아 겨우 확보한 옹색한 절벽 길을 따라 붙는데 그 철 길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기막히다.
이 중 오직 기찻길만 놓인 채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곳은 승부∼양원(임시승강장)∼분천 역 구간. 강 변의 승부역은 ‘눈꽃열차’ 운행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역 구내 바위벽의 글귀로 더 유명하다.
영암선은 6·25전쟁 직후인 1955년 개통된 산업철도. 87km 전 구간 중 20km가 다리(55개)와 터널(33개) 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지형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 수 있다. 어렵던 시절 이룩한 난공사 구간의 이 철도, 당시 산업의 동력이었던 석탄을 실어 나르는 이 철길이 얼마나 대견했던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승부 역 철길 옆에 준공기념비까지 세웠다.
##동해를 정면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바다열차
스쳐 지나치는 일상과 자연의 풍경을 편안히 기대어 앉은 채 차창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보며 즐기는 여 유, 이것이 열차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백미라면 영동선의 강릉과 정동진 두 역 사이에 펼쳐 지는 바닷가 풍경이다. 그러나 이 구간은 너무 짧아 늘 아쉽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올해 7월에 운행을 시작한 ‘바다열차’다. 삼척과 강릉 사이 58km로, 동해 묵호 망 상 정동진을 지나 두 역을 오가는 데 총 1시간20분이 걸린다. 내내 바다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심심 찮게 바다풍경이 펼쳐지니 바다를 벗해 달린다는 느낌이 진하게 든다.
바다열차는 국내 최초의 전망객차다. 전망객차란 좌석이 차창을 향하도록 2열로 배치한 특수차. 마치 영 화를 보듯 정면의 통 유리창을 통해 펼쳐지는 동해의 풍경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의 이토반도 (시즈오카 현) 해안철도에 비슷한 것이 운행되고 있다. 와인과 초콜릿을 서비스하는 프러포즈룸(4인용 컴파트먼트 객실, 2인에 5만 원)도 있는데 연인과 가족의 단란한 여행을 돕는다.
##아라리가락 훑는 정선 꼬마열차와 레일 바이크 여행
2000년 11월 14일 오후 7시 15분. 정선선의 종착점인 구절리역에서는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평소와 다 름없이 증산역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였다.
그렇다. 이 두메산골의 호젓한 철길은 가장 느리고, 가장 낡고, 가장 낙후한 열차가 가장 마지막까지 운 행됐던 곳이다. 이 정선선 비둘기호만큼 각별한 사랑을 받은 열차도 없었다.
‘꼬마열차’라는 별명이 그것을 말해 준다. 꼬마열차는 기관차 뒤에 달랑 한 칸, 많아야 두 칸의 객차 를 매단 채 단선의 정선선 철로를 앙증맞게 달리던 비둘기호 열차에 붙은 이름이다. 정선선은 1966년 태 백선의 지선으로 구절리 탄광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개통(당시는 예미∼증산∼고한)된 철길. 정 선과 구절리 구간(39km)은 1년 후에 추가로 개통됐다.
이 열차가 1990년대 후반 세상의 관심을 모은 것은 구절리와 아우라지를 잇는 철길 구간(7.2km)의 폐선 방침 때문이었다. 이 구간은 정선아라리의 모태인 아우라지(두 물이 만나 하나로 아우러지는 합수지점) 의 한 축인 송천의 물길을 따른다.
산중 계곡의 오지비경을 열차 안에서 차창으로 감상할 수 있는 운치 있는 코스였던 만큼 폐선 방침에 아 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 덕분에 여행객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이 구간은 2004년 3월 31일 결국 폐선됐다. 그 날은 KTX 개통으로 한국철도의 역사가 새롭게 쓰 인 날이었다. 구절리∼아우라지 구간 폐선은 그 뉴스에 가려 알려지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2005년 7월 폐선 철길로 레일 바이크가 다니기 시작했다.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레일 위를 달리는 이 초경량 궤도차는 느긋하게 주변 경관을 살피며 송천 물가의 두메산골 풍광을 감상 하는 여유를 선사해 꼬마열차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레일 바이크는 구절리에서 아우라지 쪽 한 방향으로만 운행한다.
꼬마열차도 부활했다. 증산∼아우라지 구간을 하루 2회 객차 두 량을 달고 운행 중인 통근열차가 그것이 다. 옛 모습의 비둘기호 열차 대신 카페 분위기를 내는 호화로운 관광열차이기는 해도….
정선5일장 관광열차(청량리역 출발)도 있다. 숫자 2와 7로 끝나는 날에만 운행한다. 산악자전거를 싣고 가 정선산골을 누비는 MTB열차도 운행 중이다.
●여행정보
◇철도
▽추전 역=청량리↔강릉, 제천↔강릉 구간에 지난다.
▽스위치백 철도=청량리, 제천↔강릉, 부산, 영주↔강릉 구간에 지난다.
▽낙동강 협곡열차 △열차타기=이 구간(백산역∼현동 역)만 운행하는 관광열차가 없으니 여기를 지나는 정기편 열차(태백→영주, 영주→태백)를 이용. △승부역 오지 트레킹&협곡열차 패키지=태백의 구문소, 승부역의 낙동강변 오지트레킹 후 협곡열차로 봉화역까지 여행.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출발(오전7시 30 분)하는 당일 버스투어(4만3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삼척 △바다열차=하루 3회 왕복운행. 온라인 예약은 코레일투어서비스(www.korailtours.com) 033-573- 5474
▽정선 △정선선 꼬마열차=증산∼아우라지 하루 2회 왕복(증산역 출발: 오전 9시, 오후 2시), 1400원. △레일 바이크=구절리에서 2시간마다 출발(오전 9시∼오후 9시). 2인승(1만8000원)과 4인승(2만6000원) 이 있으며 온라인 예약도 가능. 코레일투어서비스(www.korailtours.com) 1544-7786 △정선5일장 관광열 차=코레일투어서비스(www.korailtours.com)에서는 자유여행은 물론 화암약수와 화암동굴, 산악자전거와 레일 바이크, 정선선 꼬마열차투어 등을 연계한 다양한 5일장 열차패키지를 판매 중. 1544-7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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