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컴퓨터·로봇을 만든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9-27 오전 10:06:00
전자회로 집어넣은 종이컴퓨터 스피커·촉각센서·광고판 등으로 전기가 흐르면 나비처럼 나는 초정밀
종이로봇까지 개발중

책장을 넘기면 장면에 맞는 음악이 책에서 흘러나온다. 거리의 종이 광고판에 손을 대면 안내방송이 흘
러나온다. 물건이 가득 찬 종이 상자는 ‘이제 그만 넣으세요’라고 투정을 부린다. 최근 종이와 컴퓨터
가 결합한 ‘똑똑한’ 종이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컴퓨터가 들어간 종이는 우주를 탐사하는 종이
로봇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무게 감지하는 종이상자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의 마르첼로 코엘료(Coelho) 박사는 지난달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 유비쿼터스 컴퓨팅 학회’에서 이른바 ‘종이 기반 컴퓨터(Pulp-based computing)’ 기술을 소개
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종이 상자는 내용물의 무게를 감지할 수 있으며, 책장을 넘기면 그에 맞는 음성
과 음악을 들려준다.

연구팀은 전통적인 종이 제조 공정에 전자회로를 이루는 부품을 결합시켰다. 일단 종이를 이룰 펄프
(pulp)층을 만들고 그 위에 전기가 흐르는 전도성 잉크로 전자회로를 그려냈다. 전도성 잉크에는 은
(銀) 입자가 들어 있어 전기가 흐를 수 있다. 회로는 다시 음성이나 음악 정보를 만들어낼 컴퓨터 칩에
연결됐다. 그 위에 다시 펄프 층을 입히면 종이 컴퓨터가 완성된다.

종이 컴퓨터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도성 잉크를 나선 모양으로 그려놓으면 스피커나
촉각센서가 될 수 있다. 전도성 잉크에 전류가 흐르면 펄프에 들어있는 섬유질인 셀룰로오스가 떨리게
된다. 전기를 진동으로 바꿔주는 이른바 ‘압전(壓電)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셀룰로오스의 떨림은
스피커 역할을 하게 된다. 아직은 제대로 된 음성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신호음이나 간단한 멜로디는 충
분히 가능하다. 책장을 넘기면 그 페이지에 맞는 음악이 흐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촉각센서는 노트북에서 손가락으로 커서를 옮기게 하는 터치 패드(touch pad)의 원리와 같다. 종이를 만
지거나 종이에 가까이 손가락을 갖다 대면 전도성 잉크에 흐르는 전류의 흐름이 바뀐다. 이를 통해 손가
락이 다가오는지, 아니면 특정 페이지로 넘어가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또 물건을 담는 종이 상자에 같
은 방법을 적용하면, 내용물의 무게를 감지해 물건을 더 담을지, 그만 담을지를 알려줄 수도 있을 것으
로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손대면 대답하면 종이 광고판
종이 컴퓨터는 광고판에도 이용할 수 있다. 스웨덴의 미드 스웨덴대 굴릭슨(Gulliksson) 박사팀은 사람
과 교감할 수 있는 종이 광고판을 개발했다. 광고판에 그려진 만화의 말풍선에 손을 가져가면 실제 음성
이 흘러나오는 식이다. 음반 광고판에 손을 대면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미리 들을 수도 있다.

굴릭슨 박사팀은 3㎝ 두께의 골판지에 전도성 잉크로 전자회로를 그린 얇은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다
시 그 위에 광고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붙였다. 가운데 종이 층은 전원과 컴퓨터 칩에 연결됐다. MIT팀
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광고판에 손을 대면 전도성 잉크가 주변의 종이를 떨게 해 음성이나 음악이 흘러
나오게 한다.

사람이 손을 대면 음성이 나오는 광고판은 이미 여러 형태가 개발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한 번 만들면
내용물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반면 종이 컴퓨터 광고판은 전자회로가 그려진 종이와 광고그림이 있는 종
이층만 바꿔 바르면 늘 새로운 광고를 보여줄 수 있다.

◆날아다니는 종이 로봇
국내에서는 같은 원리를 이용해 전기가 흐르면 나비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날 수 있는 ‘종이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김재환 교수는 셀룰로오스 함량이 높은 종이에 전기를 흘리면 마치 근육처럼 떨린다
는 사실을 발견해 미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잠자리나 벌레처럼 움직이는 종이 로봇을 개발 중이다.
김 교수는 2003년부터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생체모방 종이 작동기 사업단’을 이끌고 있
다.

종이 로봇에는 따로 배터리를 달 필요가 없다. 종이 로봇의 날개에 전파를 전기로 바꾸는 회로와 전파
를 감지하는 안테나만 붙이면 된다. 외부에서 종이 로봇에 전파를 쏘면 종이 로봇의 안테나가 이를 수신
해 전자회로로 전력을 생산해낸다. 따라서 배터리가 없이도 스스로 날거나 기어다닐 수 있다. 자연 무게
가 가벼워진다.

종이 로봇은 싼 값으로 대량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높고 위험한 우주실험이나 군사실험
에 적합하다. 작고 가벼워 초정밀 탐지로봇, 정찰로봇으로도 쓰일 수 있다. NASA는 값싼 종이 탐사선을
대량으로 화성이나 토성에 보내는 방안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종이를 만들 때 전도성 잉크로 전기회로를 그려넣어 책장을 넘기면 신호음이 나거나 빛을 내고, 내용물
의 무게를 감지하는 종이상자가 가능해진다. /미 MIT 제공= 이영완 기자

스웨덴 미드스웨덴대 연구팀은 종이에 전도성 잉크로 전기회로를 만들어 넣은 광고판을 개발했다. 광고
판에 있는 만화 말 풍선에 손을 갖다대면 해당 음성이 실제로 흘러나온다. 종이는 음성신호를 증폭시키
는 스피커 역할도 한다. /스웨덴 미드스웨덴대 제공= 이영완 기자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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