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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계장비회사에 다니는 최왕수(32)씨는 지난 4월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자전거여행을 다 녀왔다. 평소 해외 자전거여행을 즐기던 최씨는 중국 우루무치에서 쿠얼러까지 차로 이동한 후 중국 탐 하교에서 민풍까지 600km 거리의 사막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했던 것.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개인 홈페이지(www.wangsoo.com)에 사진과 여행기를 올려 놓았다. 어쩌면 ‘고행’ 과도 같은 여행을 하고 돌아온 최씨는 “기존 배낭여행은 도시와 도시 사이를 잇는 점의 여행이었다면 자전거여행은 이동하는 과정조차 여행이 되는 선의 여행이다”며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행복했지만 장 대한 사막을 바라보며 이동하는 순간순간 모두 최고의 장면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선희(여·33)씨는 최근 동남아시아 라오스를 다녀왔다. 김씨는 2주간의 라오스 여 행 중 1박2일간 슬로 보트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며 MP3를 듣고 가져간 소설책을 천천히 읽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김씨는 “라오스 고산족 원주민들과 손짓발짓 섞어 가며 대화해도 통하더라”며 “똑같은 24시간이라도 많은 일들을 충분히 음미하며 여유롭게 지내는 것 이 얼마나 환상적인지는 겪어본 사람들만 알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들어 최씨나 김씨처럼 ‘슬로트래블(느린여행·Slow Travel)’을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슬 로푸드(Slow food) 운동이 음식과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방법을 음미하도록 했듯, 슬로트래블은 자전 거, 기차, 도보, 배 등 친환경적이고 여유로운 여행 수단을 통해 음식을 음미하듯 여행의 과정까지 즐기 는 것을 지향한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현지인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시도하기도 한다.
자전거 여행이나 오지 배낭여행 등에서 알 수 있듯 슬로트래블은 여행 준비와 과정 모두 쉽지 않다. 일 반 ‘패키지식’ 여행보다 두 배이상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목적지까지 가는 수단이 여행이 되고 때 로는 ‘여행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느리게 이동하지만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고 때로는 현 지인과 동행하며 여행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여행법은 ‘런던 - 파리 - 뮌헨 찍고 로마’ 식으로 오직 사진 남기기만을 위한 여행에 대한 반 성에서 시작했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우리사회에서는 수박겉핥기식의 ‘깃발 여행’이 대세를 이루 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싸이월드에 사진을 자랑하기 위한 ‘사진용 여행’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 단순히 어느 나라 어디를 다녀왔다는 것은 더이상 자랑거리가 아닐 정도로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여행을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승화시키려는 여행 마니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이 지난 6월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8개 점포를 방문한 고객 156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8.1%가 휴가를 성수기가 아닌 가을에 ‘여유롭게’ 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또 일정을 쫓 아다녀야 하는 패키지 여행에 대한 선호도 줄어 지난해 패키지 상품을 이용한 경우가 34.0%였지만, 올해 는 25.0%만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비해 자유여행은 지난해 52.1%에서 올해는 60.2%로 올라갔 다.
슬로트래블족에겐 여름휴가는 ‘으레 가는 연중행사’가 아니라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들은 고달픈 업무에서 벗어나 휴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또다시 휴가이후 일상으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일’ 에 몰두한다. 이들은 ‘이탈리아 로마 트레비분수, 판테온, 성베드로 성당 하루코스’가 아니라 ‘어떻 게’ 로마에 가고 로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즉, 한편의 체계적이고 종합 적인‘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크로아티아 종단, 모로코 횡단, 남태평양 일주 등 슬로트래블을 즐겨온 윤 창호(41)씨는 “슬로트래블은 백화점식 여행이 아니라 한 가지 주제를 잡아놓고 그 주제를 찾고 돌아오 는 진정한 여행이고 자기표현 수단이기도 하다”며 “이런 방식의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수많은 기념품 과 사진 대신 이야기를 들고 귀국한다”고 설명했다.
슬로트래블족은 ‘현지인과의 접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자연스럽게 현지인과 만 남이 이뤄지기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지난해 여름휴가때 9박10일 인도 여행을 다녀온 공무원 이윤경(여·30)씨는 “인도 바라나시에서 자이푸 르로 가는 야간 기차에서 인도인을 만나 자이푸르에 있는 그 사람 집에서 3일간 머물면서 독특한 현지 체험을 했다”며 “이때 만난 인도 친구와 아직도 e메일을 통해 안부를 묻고 선물을 주고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인터넷 카페는 슬로트래블족에겐 필수 요소다. 자칫 위험하고 무모할 수도 있는 ‘슬로트래블’의 간극 을 이들 카페에서 자료 공유를 통해 메우고 있다. 인터넷포털 다음(Daum)의 느림여행족 모임인‘세계 자 전거 여행’이나 ‘세계여행 5불 생활자 모임’에는 각각 약 7000명, 3만2000명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자전거여행 운영자 권구현(32)씨는 “회원 중 현재 5~6명이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으며 직장인들은 속속 일주일 단위로 일본, 대만, 베트남 등지에 자전거 여행을 간다”며 “자전거여행을 문 의하는 전화나 게시물이 최근들어 부쩍 늘어 슬로트래블은 더이상 마니아만의 여행법은 아닌 것 같다” 고 말했다.
손재권기자 gjac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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