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환상의 자원봉사팀이죠.” 전북 군산에서 자동차 부품대리점을 운영하는 최형복(48)씨 가족의 봉사 열정은 어느 단체 못지않다. 3 년째 매주 한두 차례 노인들이 기거하는 사회복지시설이나 불우아동시설 등을 찾는다.
일요일 오후는 자원봉사가 가장 먼저다. 최씨는 부인 이현희(41)씨, 세 딸 선영(18·고3)·정안(16·고 1)·윤영(14·중2)양과 함께 나선다. 군산시 개정면 ‘정다운 요양원’과 임피면 ‘시온의 집’ 등이 그 들의 방문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목욕시키고 안마를 한다. 저녁식사 배급, 빨래, 청소도 이들의 몫 이다.
최씨 가족은 토요일에는 각자 다른 봉사활동을 한다. 최씨는 큰딸과 함께 군산시 옥산면 ‘사랑의 집’ 등을 찾아 할아버지·할머니의 영정 제작과 유언장 작성 등을 도와준다.
부인 이씨는 학교가 쉬는 토요일을 골라 한 달에 한 번 꼴로 시온의 집 등을 방문해 노인들 발 마사지 를 해준다. 태권도 공인 4단인 정안양은 2·4주 토요일 오후에 불우아동시설에서 태권도를 가르친다.
최씨 가족은 가끔 마라톤대회에도 나가 행사 안내를 맡거나 청소년축제에서 사이버범죄 예방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애경사와 같은 특별한 날을 빼고는 봉사활동을 거르지 않는다. 거의 매일 밤 12시가 지나 파김치가 돼 귀가하는 고3 수험생 선영양조차도.
그러다 보니 가족 모두가 토·일요일이 기다려진다. 남들은 주말 나들이가 기다려지는데도 말이다. 최씨 는 “아이들이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봉사활동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준비한다”고 귀띔했다.
최씨 가족이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5년 3월. 부인 이씨는 큰딸이 입학한 고등학교의 봉사단 을 따라 사회복지시설을 찾았다가 자원봉사에 마음이 끌리게 됐고, 남편에게 ‘가족 봉사활동’을 제의 했다. 2003년 2월 노모를 여읜 슬픔에 최씨는 할머니들이 남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터라 선뜻 동의했다. 세 딸 역시 흔쾌히 동참했다.
최씨 가족이 사회복지시설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 노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다. 일회성 생색내기 용 봉사가 적지 않아 노인들의 마음이 차가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왼 쪽 고관절이 좋지 않아 다리가 불편한 데다 1981년 직장 근무 중 왼쪽 엄지손가락이 작업기계에 잘려나 간 불편한 몸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께 못 다한 효를 다하겠다며 열과 성을 다해 노인들을 모셨다.
세 딸도 항상 밝은 얼굴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해 들려 드렸다. 노인들은 한결같은 사랑에 6개월 만에 마음의 문을 열었고, 이제는 최씨 가족이 오는 날을 손꼽 아 기다린다.
한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는데도 최씨 가족을 잊지 않고 ‘밥 먹고 가라’고 붙잡는다. 홀로 된 노인도 많아 최씨 가족이 설날에 세배 갔을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의 세 딸은 ‘노인 냄새’가 난다고 투정부릴 수 있는데도 기쁜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한다. 집에선 엄 마 아빠를 대신해 친할아버지 경수(75)씨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애교까지 부린다.
“봉사활동이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세 딸의 심성을 곱게 만들어줘 오히려 우리 가족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최씨는 마냥 흐뭇해한다.
이들의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동지’들도 많이 생겼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친구 오병호(49)· 김현숙(46)씨 부부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최씨 가족을 따라 나서 노인들의 머리를 다듬어드린다.
최씨와 의형제로 지내는 오영일(55)·한양금(55)씨 부부는 지난 16일 시온의 집에 기저귀와 수박, 참외 등을 듬뿍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국악봉사단체 ‘늘 푸른 향기 국악예술단’을 초청 해 노인들에게 흥겨운 품바타령과 사물놀이 등을 선사했다. 최씨 가족의 선행이 이웃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최씨 가족의 사랑 실천은 국경도 넘었다. 가족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가입, 3년째 후원 중이다. 세 딸은 최근 캄보디아와 이라크, 파키스탄에서 날아온 후원 대상자의 사진과 편지 를 받고는 자신들의 사진·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보냈다.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와 심장재단 등에 도 후원하고 있다.
그들의 아낌없는 봉사는 사회를 감동시켰다. 선영양은 전북시민자원봉사단장상과 군산시 효행상, 학교 봉사우수상을 받았고, 정안양은 학교 자원봉사상에 이어 다음달 2일 군산시장상을 받는다.
“우리 가족의 작은 수고로 할아버지, 할머니 등이 기뻐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봉사를 통해 우리 가족이 다듬어지는 만큼 힘이 닿는 한 불우한 이웃을 살필 겁니다.” 빙그레 웃는 최씨의 하얀 이 가 유난히 빛나 보였다.
전주=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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