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로 바뀐 한 청년의 삶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6-04 오후 7:01:00
평화바닥 활동가 염창근 씨를 만나다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기자]
“5월 15일이 무슨 날이야?”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이 이렇게 대답할 거다. “스승의 날이잖아.” 맞
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그런데 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이기도 하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은 전쟁을 거부하고 총을 잡지 않은 사
람들의 날이다. 무기와 전쟁으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세
계병역거부자의 날’이 시작된 것은 2004년이니 올해로 4회째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병역거부자들이 여럿이 있다. 기자가 되면서 병역거부문제를 계속 취재해왔고, 그러
면서 알고 지내온 사람들이다. 대학 때부터 알던 사람도 있다. 2002년 대학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
한 서명운동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인연들이다. 당시를 회상컨대, 사람들은 병역거부와 병역기
피를 동일시했으며, 남녀노소 불문하고 남자는 무조건 군대를 가야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
다. 많은 사람들이 병역거부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는 존재하지 않으며, 병역거부자들은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해야만 한다.

염창근 씨는 병역거부자다. 지난해 1월 출소했다. 그는 2003년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2004년 1월 구속됐
다. 1심, 항소, 상고에서 모두 실형 1년 6개월이 구형됐다. 그는 현재 평화바닥(Peace Ground,
http://peaceground.org/)에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바닥은 낮은 곳에서 더불어 실천하는 평화활동공동체
이다.

“병역거부를 처음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처음 맑스를 접했을 때처럼.”

그는 학생운동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존재했던 대체복무 중 하나
인 소방역을 알아봤다고 한다. 한국에서 징병제가 주는 스트레스가 싫었다. 신참이 되면 굴러야 하고 고
참이 되면 굴려야 하는, 강압적이고 군사적인 위계질서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막연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병역거부를 처음 알게 된 건 2002년 초였어요. 불교신자인 오태양 씨가 2001년 12월 17일 병역거부를
선언했는데, 오태양 씨와 여호와의 증인 사례를 들으면서 결정하게 됐어요. 오태양씨의 출연은 충격적이
었어요. 당시 사회적으로는 미국이 이라크, 북한과 전쟁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상황에서 병역거부자들의
사례를 만났는데 평화주의 신념에 대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엄격한 잣대로 지킨다는 사실이, 대학에
서 처음 맑스의 저작들을 접했을 때 사회구조가 보였던 것과 비슷한 충격을 주었어요. 그러나 동시에 가
족에 대한 부담, 감옥에 대한 부담 등 여러 고민도 시작되었지요.”

아들 둔 부모들의 마음이 그렇듯 염창근 씨의 부모님도 아들이 군대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군대를 계속 미루자, “왜 안갈라고 하냐”고 물어보셨단다. 그때부터 염창근 씨는 부모님을 설득해왔
다. 평화적 신념으로 병역거부를 한 다른 이들와 달리, 꽤나 긴 기간이었다. (자식이 군대가는 것보다
도 감옥가는 것을 원하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설득한다는 것은 어려
운 일이라고. 다른 병역거부자들은 구속 당일 부모님에게 병역거부를 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예전부터 부모님께 앞으로 ‘돈 많이 벌고 할 생각은 없다. 못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
다’고 설명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병역거부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꺼냈고 부모님들도 낌새를 차
렸죠. 군대를 안가면 감옥간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부모님이 ‘네 맘대로 해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시다가 영장이 나오고 날짜가 다가오니까 많이 긴장하셨죠. 울음으로도 호소하시고. 그런데 결국 구속
되는 날 격려하시면서 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많이 참으셨어요.”

감옥에 있는 동안 무얼 했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하면서 글을 쓰거나 밖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했는데 몇 개월 지나서 깨달았단다.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을. 그 다음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상고가 기각되고 나서는 충주교도소에서 종이쇼핑백을 만드는 공
장에 출력을 나갔다고 했다. “하루에 종이쇼핑백 4~500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쇼핑백 기계였죠.”

평화를 위해서 군사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때에 따라 다르다. 어떨 때는 응답자의 80% 이상이 군 복무기간보다 긴
대체복무제를 찬성한다고 답하면서도, 어떨 때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지하지 않는 답이 더 많기
도 하다. 병역거부자가 군대 대신 군 복무기간의 2배 정도를 사회봉사에 투입되는 것에는 찬성하면서
도, 즉 자본주의적인 접근에 있어서는 동의하지만, 병역거부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진보학자들은 사회복지분야의 효율성을 강조해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수 있도록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은 야박합니다. 주변에는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별 어려움은 없는
데, 친구들이나 그냥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는 싸늘한 경우들을 종종 접합니다. 그건 여성도 마찬가지더
라고요. 군사화에 대해 문제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건 아닐지요. 감옥에서도 반응은 다 달
랐는데, 어떤 사람은 일리가 있다며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대화 자체를 하지 않아요. 군대를 다
녀온 나이 많은 남성은 설득하기 훨씬 어렵죠. 다른 방식의 국가 봉사에 대해 용납하지 않아요. 호불호
를 떠나 무조건 다 같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길 좋아해도 유독 군대문제에
대해서는 비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거죠.”


△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평화난장 웹자보 ⓒ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다. 첫째 안보를 위해서 가능한 최대한 모두 징집해야 한
다, 둘째 북한도 있고 주변 강대국과의 사이에서 살려면 군사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철저한 믿음이다. 그
러나 염창근 씨는 평화를 위해서 총을 놓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대가 필요한 것
이 아니라, 군대를 해체함으로써 비로소 평화가 온다고 해야 할까.

병역거부가 바꿔놓은 삶의 태도

“관심사의 이동은 분명히 있어요. 이전에 정치경제, 노동구조의 문제가 저에게 주요이슈였는데, 지금
은 관심이 별로 없어요. 대신 평화, 인권, 환경, 여성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죠. 관심이 저절로 이동
하게 되니까 활동도 그렇게 되고, 공부도 그런 쪽으로 하게 되고.”

요즘 염창근 씨는 작은 평화활동을 하는 풀뿌리 모임에 관심이 많다. 작은 평화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이라크연대모임이나 반성폭력운동모임이 그렇다. 평화운동에 대한 활동과 관점, 자세가 다르더
라도 한국사회에서 평화의 가치가 다양해지고 여러 모임이 생겼으면 한다.

“이전에는 ‘반전평화’로만 생각했는데 평화의 가치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지면서 경합도 생겼어요. 한
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통용되는 평화는 통일로 귀속되거나 북한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평화통일’
이었죠. 북한과 적대적 관점이 아니라 이웃이고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에는 민족이라는 울
타리가 있어요. 그렇다면 국민국가의 경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군대가 있어
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평화운동은 궁극적으로 각종 경계를 없애고 친구가 되
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경계를 짓고 타자화하는 것을 평화적 관점이라 볼 수 없죠.”

20대에 병역을 거부한 청년은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었다. 평생 평화주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염창근
씨에게는 요즘 꿈이 하나 있다. 평화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평화바닥 사무실이 있는 마포지역에서 말
이다. 그렇다고 평화도서관을 크게 만들 생각은 없다. 아이들이 와서 책도 보고 놀기도 하는 도서관, 지
역주민들이 쉽게 들러 평화를 생각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일상에서의 평화
다.

병역거부자의 날이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은 세계병역거부자회의로부터 유래된다. 1981년부터 열린 세계병역거부자회의는 20
개 이상의 나라 100여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참석하는 회의다. 1985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회의는 병
역거부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각 국가별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을 인지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어떤 해에는 여성징병문제(1991년), 징집을 거부하거나 탈영한 남성과 여성을 위한
보호시설(1993년) 등 주제별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 후 매년 5월 15일은 전 세계에서 병역거부자들을 위해 단일한 액션을 취하는 날로 정착됐다. 이 날에
는 전 세계에서 동시에 공개토론회, 철야농성, 시위, 각종 행동들, 세미나, 캠페인 등과 같은 행동이 벌
어진다.

올해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평화난장’은 5월 12일 오후 2시 청계광장(파이낸션 빌딩 앞)에서 열린다.
15일 오전 11시에는 평화박물관에서 UN인권위에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인통보를 요청하
는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또 올해 캠페인 국가로 선정된 콜롬비아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할 계획이
다. 콜롬비아에서는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영장을 거부한 사람들은 태만자로 분류해 대학
입학을 허가하지 않거나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는다.


강서희 기자(heeging@promethe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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