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 사회과학은 이미 종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5-21 오후 6:19:00
오마이뉴스 김헌식 기자

정부에서 인문학 진흥 계획을 발표 했다. 인문학의 위기론을 만들어낸 보람을 느낄 만했다. 인문학 진
흥 계획 중에 인문학 연구소 지원이 눈에 띈다. 대학 거점연구소(또는 연구단) 12곳 안팎을 선정해 해마
다 10억~15억원씩 지원하고, 세계 각 지역·나라의 언어·문화를 연구할 지역학연구소 8곳 정도에 5억~8
억원씩 지원한다. 또한 한국학 분야 연구소 10여 곳에도 지원한다.

사회과학을 전공해 온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부러운 일이다. 인문학 연구소로 나름대로 인문 정신의 명
맥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 주도의 인문학 진흥이 과연 얼마나 인문정신에 충실할지 의문인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확실한 것은 사회과학 정신을 유지할 방도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문학의
위기만을 이야기 하지만, 사회과학은 더 위기다. 아니 이미 생명을 잃었는지 모른다. 이점을 연구소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진보 진영에서는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희망제작소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문화사회연구소, 금융경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 투쟁 지향적 운동에서 참여적 시민운동으
로 이동했던 것에서 다시금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 아이디어의 실천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
실 분석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저널리즘 방식의 보도에서 벗어나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이미 십여 전
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것이다. 연구소에 따라서는 연구 결과물을 대중화 시키는 작업까지도 병행한
다.

이러한 면이 부각되지 않는다면 단순히 투쟁적 운동론이나 관념론적 실천에 불과해진다. 감상주의적 접
근으로는 진보에 대한 염증만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물론 연구소를 만들고 있는 이들의 문제의식은 더
깊다. 하지만 적어도 연구소들의 동기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투명해 보이지 않는
다. 아직도 현실 적용성 보다는 이념적 스펙트럼에 더 좌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부 연구소는 용역 혹은 프로젝트 수주 조직으로 전락해 가기도 한다. 공공성 강화를 지향하다보니 정
부조직에 산소마스크를 대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리더들의 야망을 위한 개인 사조직으로 전
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펀딩과 인력 면에서 본질적인 유인 시스템이 부족한 측면은 포부와는 역방향으로 미래를 불안하게 한
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가 인간 세상의 기본적인 룰임에도 무시하다 무덤을 파고 만다. 위키노믹스의 허
구성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각고의 노력은 기존 사회과학 연구소의 사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회과학 연
구소 아니 사회과학은 존재한다. 갈수록 그 역할은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찍부터 사회과학
은 죽었다. 사회과학은 시장의 요구나 제도적 질서에 충실한 연구 결과를 낸다. 이러한 점을 못하기 때
문에 인문학의 위기론이 나온다. 사회과학은 ‘근본 대안’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밥을
먹고 사는데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정말 대안적 내용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
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요구도 대안적 상상력이나 성찰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에 위기론에
휩싸일 뿐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정부나 대학에 안주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인문학이 정말 위기라면 정부나 대학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학위와 학문의 권위에서는 새로운 인문학적 질서나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이는 실제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 이론이나 성찰은 빛을 잃고 말 것이다. 단순히 인문학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재생산하기에 이르지 않
을까 우려가 더 강하다. 특히 정부의 지원은 번문욕례에 포위될 가능성도 크다. 대안을 꿈꾸는 독자적
인문학 연구소는 보기 힘들다. 그 틀 속에 있는 곳은 많아 보인다.

대안을 꿈꾸는 인문학-사회과학연구소들의 앞날은 이제 시작이다. 무엇보다 양자의 부활과 위기 극복은
학제간의 연구에 달려 있다. 물론 지금의 연구소 주도 세력의 스펙트럼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서
는 계급이나 저널리즘 운동론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연구소에 대한 민중-대중적 관심이 절실하다. 진보의
위기와 대선의 판세를 볼 때, 어쩌면 길고긴 노정에 들어가야 할 시점이므로, 장기적인 대안을 담은 성
찰적 연구 결과물이 긴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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