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명산 30選
조선의 문신이자 구한 말의 정치가·개화사상가였던 구당(矩堂) 유길준은 근대 한국 최초의 일본과 미국 유학생의 한 사람이었다.
정치 일선에 있기보다는 배후에 있었고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구금과 유폐의 세월 속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 불운한 지성이었다.
검단산에는 개화기 최초의 국한문 혼용 서양견문록인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1856~1914)의 묘소가 있다.
창우동 애니메이션고교에서 왼쪽으로 가다보면 묘소 입구 방면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온다. 들입목에서 한 20분 정도를 오르면 유길준과 그 직계의 묘소가 나온다.
갑오개혁과 을미개혁 이후 제도 개편을 추진하다가 아관파천으로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 뒤 환국을 기획하다가 일본 정부에 체포되어 4년간 구금당했다.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 체제와 합리주의 사상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정치적으로 전근대적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의 개혁을 시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10년 10월 한일병합 조약이 맺어지자 이 조약에 대한 반대운동을 추진하다가 체포됐다. 도산 안창호가 만든 흥사단은 전 국민을 선비로 만든다는 목적으로 유길준이 앞서 만든 흥사단에서 따온 것이다.
유길준은 교육과 계몽의 필요성을 외치며 계산학교 등 학교설립, 노동야학회 등의 활동을 펼쳤다. 조국을 위해 한 일이 없어 묘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지는데 자손들이 묘비를 세웠다. 유길준은 역사적 평가가 엇갈려 애국지사로 공훈을 받지는 못했다.
2011. 9. 16
KARP 대한은퇴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