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는 쓸쓸하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 호미곶 등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4-30 오전 9:45:00
한반도(38선 이남) 최동단에 가면 흰빛으로 눈부신 등대가 하나 외롭게 서 있다. 그 이름은 호미곶등대.
이곳의 주소는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호미곶(호랑이 꼬리)이란 애칭도 갖고 있다.
주말이나 간혹 행사 참여차 들러 그 곳의 등대를 볼 때면 가슴이 짜릿하다.
이 등대를 마주하면, 홀로서기를 느끼게 된다.
홀로서기라는 표현이 좀 애매한데 말하자면 홀로 섰을 때의 외로움과 망망함,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야 한다는 불안이 섞인 의무감 등등이다.

어쨌든 흰 등대가 풍기는 인상이 묘하다. 왜 그럴까? 100살이 다 돼가는 등대의 나이 탓일까. 어찌보면
이 등대의 위엄과 역정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호미곶 등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 1908년 12월 20일이라고 한다. 약 100년 전 샛바람 불어오는 차가운
초겨울,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둔 겨울날 등대의 불이 켜졌다. 독일 건축가의 설계로 일본인들이 축조했
다. 일본인들은 이곳 한반도 최동단의 호미곶에 등대를 설치해 동해 남부연안에서의 잦은 해난사고를 막
을 수 있었다.
이 등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이곳 영일만 대보 앞바다를 지나는 선박들이 좌초하는 해난사고가 잦았
다. 그런데, 이 등대 내부 천장에 새겨진 꽃잎이 있는데 가만 들여다 보면 이화(李花)다. 오얏꽃 모양
을 새겨넣은 것인데, 오얏꽃은 조선왕조의 상징 문양이었다.

일본인들이 축조한 등대 내부에 조선왕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의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에 대
해 궁금해진다.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일본인이 진두지휘한 등대 축조라면 이얏꽃이 아니라 사쿠라여
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중요한 것은 이 등대에 대한 단상이니까.

호미곶등대는 백색 연와조로 축조된 8각형 구조다. 8각을 이룬 면이 하늘로 뻗어나간 자태가 예사롭지
가 않다. 높이는 26m로 전체가 흰빛이다. 해가 비치는 한낮에 가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등
대 앞은 푸른 바다다. 흰 등대와 푸른 바다! 참 낭만적인 풍경인데 이 곳 등대 앞에 서면 낭만을 만끽하
기 보다는 관조하는 마음이 강해진다.
등대는 낮이면 흰몸을 통째로 해상의 선원들에게 이정표로 내놓는다.

구름이 짙게 깔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엄청난 음량의 무적을 울린다. '뿌~웅~' 하는 거대한 소리를
토해내 뱃사람들의 귀를 연다. 좌초할 수 있으니 돌아가라는 소리다. 밤이면 16마일(약 25㎞)까지 날아
가는 강력한 불을 비춘다. 12초에 한 번씩 반짝이며, 밤 바다의 외로운 선원들에게 위험을 알린다.
오랫동안 수많은 선원들의 눈이 되어주었던 이 등대가 내년, 그러니까 2008년 12월 점등 100주년을 앞두
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어떤 설계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1908년 처음 만들어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등대는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대시
설로는 최초로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어쨌든 여름의 태풍과 뜨거운 태양, 겨울의 습하고 차가운 동해 바닷바람을 친구 삼아 온 100살 된 호미
곶 등대는 의연하다.

이 등대는 막막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의 희망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위로
를 주고, 좌절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고, 실연한 청년에게는 희망을 준다.
홀로 쓸쓸한 등대지만, 육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힘을 주는 등대다.
바다와 육지의 접경지대에 자리하고 서서 바닷사람과 뭍사람 모두를 위로하는 등대는, 그래서 볼 때마
다 쓸쓸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등대는 쓸쓸하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포항CBS 조중의 기자 jij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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