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조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2-12 오전 10:26:00
[중앙일보 유지상] ■ 캐는 게 아니라 그물로 잡아요

서산 간월도에서 보령 천북으로 이어지는 충청권 서해안엔 요즘 뜨거운 국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데쳐먹
는 새조개가 한창이다. 특히 새조개의 집하장인 홍성 남당항엔 주말이면 겨울 바다의 정취와 새조개의
화려한 맛을 즐기려는 식도락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귀족 조개인 새조개 맛보고 가세요~. 한번 먹어보면 그 맛 평생 잊지 못할 걸요."


"넉넉하게 드릴 테니 이곳에서 맛보세요. 키조개와 피조개도 덤으로 나갑니다~."


남당항 포구에 들어서자 방파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파라솔'(간이 포장집) 종업원들의 외침이 요란
하다. 갑자기 눈앞에 짝 벌어진 새조개가 펼쳐진다. '선옥이네 파라솔' 여주인 김창순씨가 빨간 함지박
수족관에서 건진 새조개 한 마리를 까 보인 것.


"이걸 만져 봐요. 탄력이 좋지요? 이 맛에 먹는 거라니까요." 만져보라고 내민 조갯살 모양이 영락없이
새(鳥)의 부리다. 조개가 이동하는 데 사용하는 발인데 새 부리를 닮아서 새조개란 이름이 붙었단다.


"모양도 특이하지만 여느 조개와 달리 쫄깃한 데다 감칠맛이 있어 열이 먹다가 열이 다 죽어도 모를 맛
이라니까요." 김씨의 새조개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새조개는 언뜻 보기에 피조개로 착각하기 쉽다. 껍데기 표면에 잔털이 나있고 골도 규칙적으로 잡혀 있
다. 크기도 피조개처럼 어린아이 주먹만 하다. 하지만 연갈색에 껍데기가 얇고 잘 벌어지는 점은 분명
한 차이점이다. 무엇보다도 피조개 안에선 붉은 피(?)가 나오는데 새조개는 바지락처럼 껍데기 속이 말
끔하다.


새조개는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을 때 캐는 조개가 아니다. 남당리 토박이로 겨울철이면 새조개
잡이를 한다는 박창헌씨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로 바닥을 긁어 잡는다"고 했다. 새조개는 양식
도 안 된단다. 그러니 100% 자연산이다. 1년 내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조개도 아니다. 겨울에만 먹
을 수 있는데 초겨울엔 속살이 차지 않아 맛이 떨어지고, 3월로 넘어가면 살이 질겨진다고 한다. 그러
니 요즘이 딱 제철인 셈이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제철이라도 값은 비쌀 수밖에 없다. 남당항 새조개 가격은 ㎏당 4만원. 파라솔에서
샤브샤브 상차림으로 먹는 값이다. 작은 놈은 20마리 넘게 담기지만 큰 것은 15마리가 채 안 되는 경우
도 있다. 그래도 말만 잘하면 새조개보다 훨씬 큰 키조개가 보너스로 나온다. 닮은 꼴 피조개나 가리비
조개도 두어개 얹어준다. 요즘은 주꾸미도 많이 잡혀 샤브샤브 냄비에 야채와 함께 몇 마리 넣어주기도
한다. 포장 판매용 새조개는 ㎏당 3만5000원이지만 후덕한 인심까지 담아 샤브샤브용보다 넉넉하게 저울
눈금을 쳐준다.


■ 샤브샤브로 먹어야 제격


현지 사람들은 새조개를 날 것으로도 먹고,구워도 먹고, 무쳐도 먹는다는데, 그중 제일 맛있는 건 야채
와 함께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란다. 조개 특유의 비린내가 사라지고 조갯살도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살아난다고 한다.


파라솔에 들어서니 양 볼이 후끈 달아오른다.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에 얼었던 얼굴이 따뜻한 실내 온기
에 풀리고 있는 것. 잠시 뒤 식탁에 샤브샤브 냄비가 오른다. 맑은 물에 바지락이랑 큼지막하게 썬 배추
·대파·팽이버섯이 들어 있다. 국물은 그저 맹물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한다.


새조개를 손질해온 종업원은 "너무 익히지 말 것"을 주문한다. 집개나 젓가락으로 조갯살을 들어 펄펄
끓는 국물에 넣고는 맘속으로 천천히 "샤~아~브, 샤~아~브" 하며 흔들어 바로 건져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는 것. 끓는 물에 너무 익히면 육질이 질겨지고 단맛도 사라져 진미를 느낄 수 없단다.


곧바로 종업원이 시키는 대로 "샤~아~브, 샤~아~브" 흔들어 한 입 집어넣었다. 한번에 먹기엔 다소 크지
만 일단 풍성하게 씹히는 맛이 반갑다. 어금니에 힘을 주니 새부리 모양의 조갯살이 탁터지는 듯하며 겨
울바다의 비릿함이 살갑게 다가온다. 부드러우면서 한편으론 사각사각 씹는 기분이 난다. 게다가 키조
개 관자처럼 조갯살의 결이 느껴진다. 특별한 맛은 맛이다.


찍음장은 기본이 초고추장,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려면 고추냉이간장에 찍어 먹는다. 접시에 담겨 나온
걸 봤을 땐 두 사람이 다 먹기 버거울 듯했으나 곧 바닥이 드러났다.


새조개가 두어 개쯤 남았을 땐 뒷마무리에 들어가야 한다. 칼국수나 라면 사리를 넣어 먹는 것. 살랑살
랑 흔들고 지나갔지만 국물은 감칠맛이 가득하다. 그 새조개의 진국까지 말끔하게 처리하고 나면 두둑
한 배를 가누기 어려워 허리가 절로 뒤로 젖혀진다.


홍성 글·사진=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새조개 천국' 홍성 남당리 앞바다

■새조개는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는 조개. 최근 몇 년 사이 알음알음 맛 소문이 났다. "예전에는 잡히
는 양도 많지 않았는데 대부분 일본 업자들이 비싼 값에 사갔지요. 새조개가초밥 재료로 쓰이거든요."
남당리 김영달 이장의 설명이다. 그러던 것이 천수만 방조제 공사가 끝난 뒤 남당리 앞바다에서 어획량
이 늘기 시작해 이젠 귀족 조개인 새조개를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됐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한다. 홍성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좌회전
해 29번 국도를 타고 얼마 안 가 40번 국도로 다시 좌회전한다. 곧 나타나는 갈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남당리 팻말을 보고 따라가면 홍성나들목이다. 거기서 15~20분이면 남당항에 도착한다. 남당항에서 10
여 분 정도 남쪽으로 차를 몰면 석화구이로 유명한 보령의 천북면이 나타난다. 2만5000원짜리 한 바구니
면 서너 명이 원 없이 딱딱 소리를 내며 직화로 구운 석화구이를 맛볼 수 있다. 되돌아오는 길엔 서산
간월도에 들러 자연산 굴을 넣어 지은 영양굴밥이나 어리굴젓으로 배를 채우면 완벽한 충청권 서해안 겨
울 별미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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