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에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8-07 오전 10:19:00
[머니투데이 전승범 전문여행가]어느해 초여름,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역에서 체코의 프라하행 야간 침
대차에 타고 있었다. 저녁 10시쯤 부다페스트를 출발하여 새벽 한시쯤 되었을 때였다.

프라하행 기차가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창밖으로 세퍼트 짓는 소리가 나의 단잠을 깨웠다. 기차
가 머문곳은 헝가리와 체코의 국경 검문소인듯 하였다. 기차가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퍼트와 몇
몇 군인들이 아카보기관총을 겨눈체 열차 내부로 거칠게 들어 닥쳤다.

그들은 무례하고 거만하게 나의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였고, 내가 탄 침대차 내부를 후래쉬로 삿삿이 비
춰보기도 하고 세퍼트는 신이 난듯 나의 침대칸을 끙끙거리고 다녔다. 나의 신원을 확인기 무섭게 군인
들이 열차에서 내리니 또다시 기차는 프라하를 향하여 짙은 밤길을 갈랐다.

체코의 프라하 역에 도착한 나는 뿌연 안개속의 프라하 중앙역을 빠져 나와 프라하의 도심을 가로지르
는 블타강변으로 걸어가 카를교 위에 서 있었다. 블타강변 저쪽에는 1140년에 지어졌다는 스트라호프 수
도원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수도원 가까이에는 비투스 대성당, 화약탑과 파스텔톤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왔다.

비투스 성당을 빠져 나가니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파스텔톤의 동화같은 거리 황금소로가 나타났
다.

이 황금소로는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는 프라하성(城)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나, 루돌프 2세 때인 16세기 후반 연금술사와 금은세공사들이 살면서
황금소로라고 불리어졌다.

그러나 이곳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때문이다. 카프카
는 1916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그의 여동생이 집필 활동을 위해 마련해 준 황금소로 22번지의 작
은 집에서 매일 글을 쓰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하숙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프라하성에서 모티프
를 얻어 쓴 작품 '성(城)'도 이때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프라하의 이 황금소로에서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그 벽을 뛰어넘
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치열한 사고를 하다가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타계하지 않았던가. 그가 얼마나 열
정적으로 글을 썼는지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한마디가 대변해준다. "한권의 책은 얼어붙은 마음의 바다
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하네..."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지 황금소로를 벗어나면 집시들의 음악과 풍성한 볼거리들이 있는 아기자기한 중
세의 다리 카를교가 지척에 있는데 이 다리위는 마치 퓨전예술의 공연장 같이 거리의 미술가, 음악가,
퍼포먼스하는 사람들로 볼거리가 많았다.

파리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예술가의 다리에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카를교야 말로 다리 전체가 하나의 새로운 예술을 시험하는 무대같이 보였다. 프라하의 중심 거리를
느리게 달리는 전차와 중세 시대의 아기자기한 거리들은 마치 커다란 무대같이 보였고.

커다란 두개의 전쟁에서도 프라하는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는것이 더욱 프라하를 가치있게 하며 많
은 이들에게 프라하를 찾아오게 하는 매력인듯 하였다. 사실 나는 프라하에 오기 전부터 프라하를 알고
있는듯 착각에 빠져 있었다.

반공 교육이 한창이던 학창시절에 어느책에서 '프라하에 봄은 오는가?'라는 '프라하의 봄'에 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프라하에 처음 발을 내딛던 날 새벽, 블타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 내음을 맏
고 비로소 나는 프라하의 봄을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프라하의 봄이란 1968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 총회에서‘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즉 민주 자유화노선을 제창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그 내용은 재판의 독립, 견고한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제도의 창설,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보장, 국외여행 및
이주의 자유보장, 경찰정치의 부활저지, 경제계획의 추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서의 연방
제로의 이행, 자주독립에 대한 대외정책 추진 등이다.

따라서 사실상 검열제가 폐지되고 많은 정당 정치단체가 부활되었으며, 의회는 활발한 논의와 비판의 광
장이 되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인간답고 지극히 양심적인 선언이었던가.

프라하에 도착하여 하루해가 질 즈음에 강건너 어느 카페에 앉아 그날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
나 더듬거렸다. 이른 아침 프라하의 역에 도착하여 안내데스크에서 프라하 여행 정보를 얻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왠 젊은 아시아 여학생이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녀는 대뜸 나에게 어느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서 나는 코리아에서 왔다고 답했다.

어~ 그럼 한국분이시네요? 그 말을 건내기가 무섭게 정말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돈은 여행중 소매치기 당하였는데 여비좀 빌려 달라는것이 요지였다.
이억만리 객지에서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돈을 빌려준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마치
마술에 걸리기라도 한듯이 순수하게 그녀가 요구하는 금액을 조건없이 빌려주었다.

그 돈을 받아든 그녀는 한국의 연락 전화번호만 달랑 내게 건내주고 총총히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최근
에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무슨 내용인지 나는 모른다.

그날 아침 돈을 빌려주었던 그녀와 나는 비록 연인사이가 아니지만, 내가 도착하던 날 프라하의 아침에
있었던 그 일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강은 아직도 내가 도착하던 그날
처럼 순수하고, 밝고, 활기차게 프라하의 봄을 만끽하고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언젠가 또다시 내게 프라하에 가게된다면 나는 또다시 황금소로를 걷고 있을것이다.

전승범전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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