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이어진 암릉 … 비 오는 여름숲 산과 함께 호흡
정리=안중국기자 tksdkr@chosun.com 사진=허재성기자 heophoto@chosun.com
백두대간 여름 산행은 불과 물의 회오리 속에 몸을 던지는 일이다. 이번 구간, 화령에서 봉황산~비재~속 리산~밤재~늘재에 이르는 약 32㎞를 걷는 동안 5명의 취재진은 안개와 장대비 그리고 햇빛을 번갈았다.
산허리에 구름이 길게 누워 있다. 풀잎들은 안개에 젖어 있다. 하마하마 비가 올까 하는 조바심 같은 건 없다. 모두들 충분히 젖을 준비가 돼 있다. 봉황산(741m)은 이름 그대로 우아한 자태를 지닌 산이 다. 군더더기 없는 몸매로 서서히 키를 높인다. 화령의 진산답게 봉황산 정상에 서면 화서면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봉황산을 막 내려서서 암릉을 우회한 다음부터 비재까지는 표고차 400m의 긴 내리막이다. 1시간30분쯤 표고차 100m의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보면 급경사를 이루며 비재(330m)로 떨어진다. 날아가는 새의 형 국과 같다 하여 비조령이라 불렸다는 고개다. 고갯마루 서쪽(화남면 방향)의 공터에 집을 짓는다.
비재에서 대간 길은 가파른 철계단으로 시작된다. 철계단의 이물스런 느낌은 숲으로 들면서 곧장 지워진 다. 비 오는 여름 숲의 고요는 유혹적이다. 숨소리, 발자국 소리, 나뭇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가 빗물과 함께 땅으로 스민다. 나무와 더불어 우리는 혼연히 산과 하나가 된다. 삽시간에 먹장구름이 드리우고 한 바탕 소나기가 지나가는 숲의 표정은 언제 보아도, 멋지다. 발끝을 기분 좋게 긴장시키는 암릉을 지나 자 못재다. 못재를 지나면서부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갈령삼거리를 지나 형제봉에서 피앗재로 내려서기까지 2시간 동안 속수무책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았다.
속리산의 최고봉은 천황봉(1058.4m)이지만, 제1봉의 지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산이다. 천황봉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약 3.8㎞의 등성마루 전체가, 그 기기묘묘한 암릉 전체가 하나의 봉우리다. 천황봉에 서 문장대까지는 평균 속도로 2시간이면 된다. 하지만 뒤에서 누가 ?지 않는 다음에야 그 시간에 걷는 건 산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고픈 조망처가 도처에 널려 있을 뿐 아니라 법주사 쪽 기슭은 구르고 싶을 만큼 울창한 수림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다.
신선대에서부터 문장대는 걸음걸음마다 확연한 원근감을 보여주며 마중이라도 나오듯 가깝게 다가선다. 문장대에서 늘재로 내려서는 길은 급전직하의 내리막은 아니지만 1시간 이상 까다로운 암릉이 계속된 다. 잔뜩 팔다리에 힘을 주어야 하거나 배낭을 벗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가야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지 루하지 않아서 더 좋은 구간이다. 중간중간 쉬면서 이우는 햇살에 선명한 하늘금을 드러내는 속리산의 표정을 살피는 맛도 보통이 아니다.
식생 - 숲 보전됐지만 외래식물 유입 되기도
속리산 법주사쪽 사면에는 벌건 줄기를 자랑하며 죽죽 뻗은 소나무들이 해발 400m에서 600m, 높게는 1000m 가까이에 이르기까지 능선에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양수로서 계곡쪽에 잘 자라지 않는 습성 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계곡 옆에까지 내려와서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계곡 주변의 활엽수들 도 울창하여 숲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이처럼 나무들이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가야산 등 고찰을 품은 다른 산에서처럼, 이곳 숲이 사찰림으로서 가꾸어져온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사찰은 일대의 숲을 보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찰이 자리잡음으로써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도 도리없이 이루어져 온 게 사실이다. 일대에 서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는 속리산이지만, 개망초, 환삼덩굴 같은 강잡초 귀화식물이 천황봉 근처 고지 대까지 유입해 있다. 예부터 사찰과 암자가 발달한 탓에 이곳을 중심으로 외래식물들이 속리산 산중으 로 유입되었던 것이다.
지명 - 일본이 '천왕봉'을 천화봉'으로
속리산의 최고봉인 상봉의 본래 이름은 천황봉(天皇峯)이 아닌 천왕봉(天王峯)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도, 현재 속리산의 최정상 자리에 속리산번영회가 1994년에 세운 돌비에도 ‘天皇峯’이라 써놓 고 있으나, 이는 일제시대에 왜곡시켜 놓은 왜색 산봉 이름이다.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송시열의 ‘보은군속리산사실(報恩群俗離山事實)’ 성해응의 ‘동국명산기’,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의 속리산 기에 의하면, 속리산의 현 천황봉은 본래가 천왕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이 천황봉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은 한일합방 직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총독부 조선임 시토지조사국에서 전국 지리를 조사하면서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 지형도’에 속리산의 상봉을 ‘天皇峯’으로 표기한 이후부터의 일이다. 산 이름, 봉 이름 등을 접하면서 일본 천황을 인식하게 하려 고 한 저의가 깔려있는 의도적 개명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 표기부터 서둘러 바꿔야 할 것이다. 지형지질 - 속리산 기암들은 절리가 만든 작품
속리산을 이루는 화강암은 백악기 말 9000만 년~8000만 년 전, 바로 한반도에 공룡들이 넘쳐나고 있을 당시 마그마가 변성퇴적암의 기반암을 뚫고 관입한 후 지하 약 3~4㎞ 부근에서 식으면서 굳어져 형성된 것이다. 지하 약 3~4㎞ 부근 깊은 곳에 있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는 오랜 지질 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으 로 지반이 융기함과 함께 피복 물질들이 침식과 풍화를 받아 차츰 깎여나가면서 지표에 모습을 드러냈 다. 이 화강암체가 온갖 기묘한 형태로 변모한 것은 ‘화강암 재단의 마술사’인 절리(節理) 작용 덕분 이다.
화강암은 지표 가까이로 올라오면서 점차 압력 하중이 제거됨에 따라 팽창한다. 이때 암체에는 팽창에 의해 금이 가면서 갈라지는 절리가 발생한다. 절리의 방향과 발달 정도에 따라 그 암괴의 형상은 다양하 게 나타난다. 수직 방향의 절리가 탁월할 경우 암주(巖柱) 모양의 기둥 바위들이 발달하는데, 입석대를 중심으로 문장대에 이르는 종주 능선을 따라 주로 분포한다.
판상의 수평 절리와 수직 절리가 서로 동일한 간격으로 형성된 격자상 절리가 발달할 경우는 모서리 풍 화가 진행되어 핵석(核石·tor)이라고 하는 돌알(돌탑) 바위들이 발달하는데, 문장대에서 청법대 그리 고 칠형제봉으로 이어지는 곳에 주로 분포한다. 그리고 수직보다는 판상의 수평 절리가 탁월할 경우는 평탄한 너럭 형태와 돔 모양의 바위들이 발달하는데, 경업대를 비롯하여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 대 등이 이에 속한다.
(취재=월간산·에코로바 백두대간 종합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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