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왕 고이 잠들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3-09-23 오전 11:10:00
역사 유적지에는 파격적인 것이 드물다. 집권층의 문화 등 당대의 시대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러
나 튀는 유적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때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던 대가야의 산중 고분과 계단식 돌무
덤인 금관가야의 구형왕릉은 파격에 가까운 역사의 이색지대다. 이들 가야시대 이색 유적지를 찾아
1500여년전 가야 왕들을 만나보자.


국내 최대 200여기 고분군, 해발 311m 능선따라 조성

최초 순장묘 44호분 눈길


◆ '위풍당당' 대가야 산중 고분

 대구~광주를 잇는 88고속도로 경북 고령구간을 지나갈때면 이색적인 산봉우리에 눈길이 가게된다.
산 위에 봉긋 솟아있는 거대한 무덤들. 봉우리 위에 여러개의 작은 봉우리가 솟아있는 듯하다.

 대가야의 왕들이 잠들어 있는 지산동 고분군(경북 고령군 고령읍ㆍ사적 제79호)으로 해발 311m 주
산 남쪽 능선을 따라 조성돼 있는 것이 특이하다.

 대가야의 왕들은 도읍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능선에 묻혀 외침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하려 했던 것일
까. 6가야중 유독 대가야가 이처럼 험준한 산중에 고분들을 남겨놓았다.

 고령군측은 "국내 수많은 고분중 이곳 고분들만 특이하게 산능선에 자리잡고 있는데, 왜 높은 산중
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해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멀리서 보면 아득하게 보이던 고분들은 실제 도로에서 가깝다. 도로변 대가야 왕릉 전시관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20여분 올라가면 구릉지대가 나타나고 크고작은 고분들이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줄
지어 있다.


이곳 지산동 일대에는 무려 200여개의 고분이 몰려있는 국내 최대의 고분군이다. 특히 우리나라 순장문
화의 현주소라는 역사적 가치 때문에 주목 받는 곳이다. 능 주인과 함께 32명을 산채로 매장한 우리나
라 최초의 순장묘인 44호와 인근 45호분이 대표적으로 왕릉 전시관에는 이들 고분의 내부를 재현, 고
분 내부와 순장 풍습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고분 행렬이 끝나는 산중턱에서 정상까지는 울창한 송림길의 삼림욕 코스. 200여기의 고분들을 한눈
에 보기 위한 기대감에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많지만 숲으로 시야가 가려져 있다.

 대신 금림왕릉 등 5기의 대형 고분이 몰려있는 능선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봉우리같은 고분들이 발아래 펼쳐지고 멀리 가야산맥 산자락들이 한눈에 들어오
는 등 전망이 좋다.

 왕릉 전시관에서 주산 정상까지는 1.84㎞로 1시간이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다. 고령군은 지산동 고
분군을 중심으로 한 문화유적답사, 등산, 문화체험 등 관광 코스를 마련해 놓았다. 88고속도로 고령IC
에서 좌회전.


국내 유일 계단식 돌무덤, 경사진 비탈 따라 7단 쌓아

근처 '유의태 샘터'등 볼만


◆ '한국판 피라미드' 구형왕릉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인 대진고속도로 생초IC를 빠져나오면 '구형왕릉'이라는 이정표를 보게된다. 어
느 시대 왕인지 갸우뚱하기 일쑤인 이 인물은 금관가야 마지막왕인 구형왕(仇衡王)이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王山) 입구에 있는 구형왕릉(사적 제214호)은 국내 유일한 계단식
돌무덤으로 '한국판 피라미드'로 불린다.



◆ 유의태 샘터

호젓한 계곡 길이 끝나는 막다른 곳, 산비탈에 비스듬히 기대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모습의 돌무덤에
신비로움이 감돈다. 주민들 사이에 '왕무덤'으로 통하던 구형왕릉은 신빙성있는 자료가 없어 학계의 고
증을 받지 못해 전해내려오는(傳) 구형왕릉이라는 뜻의 '전구형왕릉'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2년여전부
터 산청군이 모든 정황증거로 구형왕릉임이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전(傳)자를 삭제했다.

 이곳이 구형왕릉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1798년 왕릉 아래편에 있는 왕산사에서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
과 옷, 녹슨 칼, 활 등의 유품이 발견되면서부터. '왕산 산중에 돌을 포개서 만든 둔덕이 있고 사면이
모두 층계로 되어있는데 왕릉이라는 전설이 있다'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도 이를 뒷받침했다.

 왕릉은 경사진 비탈을 그대로 이용, 크고 작은 돌을 7단으로 쌓아올려 층과 단을 이루고 있다. 앞면
중앙 4단째에는 특이하게 가로 40㎝, 세로 40㎝의 빈공간이 있는데, 왜 만들어놓았는지 미스테리로 남
아있다.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이기도 한 구형왕은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금관
가야를 통치했다. 왕릉으로 가는 산길 입구에 있는 덕양전은 구형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곳이며, 김
유신 장군이 구형왕릉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중 활쏘기를 하였다는 '김유신 사대비(射臺碑)'가 왕릉
100m 아래에 위치해 있다.

 왕릉 왼쪽으로 난 왕산 등산로를 따라 1.8㎞ 정도 가면 허 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가 물을 길
어 약재를 달였다는 '유의태 샘터'가 있고 인근에 구형왕이 여생을 마쳤다는 수정궁터가 잡초더미에 묻
혀있다. 대진고속도로 생초IC에서 좌회전.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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