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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의 서쪽 끝, 격포에서 꾼들은 행복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사이 ‘서해 갯바위 감 성돔시대’의 중심이었던 격포는 10년 세월을 훌쩍 뛰어 넘은 지금에도 변함없는 손맛강산이다.
5월에 들어서자 몸 좋은 감성돔이 선보이기 시작했고, 홀린 듯 찾아오는 꾼의 행렬은 끝이 없다. 위도 나 왕등도처럼 멀리 나가야 하는 곳도 있지만 일정바위, 싼여, 하섬 등 담배 한 대 거리에 있는 포인트 도 많다. 그 넉넉한 수심(水心)을 헤아리다 보면 격포를 감싸고 있는 변산반도의 푸근한 산수(山水)와 인심(人心)을 지나치기 쉽다.
흔히 외변산이라고 일컫는 바다 쪽 풍경을 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국립공원이라고 해도 늘 보 는 바다가 새삼스러울 리 없다. 변산반도 산자락 내변산 일대의 아름다움은 그러나 색다르다.
서해안 고속도로 부안IC에서 변산반도의 북쪽 연안으로 들어가다가 바람모퉁이 쉼터를 지나면 왼쪽에 부안댐 물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댐에 닿기 직전의 변산온천은 물힘이 좋아 약 노릇도 한다지 만 새벽에 문을 열었다가 저녁8시30분 일찍 문을 닫는 것이 흠. 온천을 좋아하지 않아도 직소천 동쪽 연안의 멋진 바위는 챙겨서 볼만하다.
종소리 울리는 저녁 내소사
풍경을 휘휘 둘러볼 양이면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변산면사무소 앞에서 좌회전, 부안댐 상류를 일별하다 가 월명암 쌍쌍바위의 낙조(落照)나 직소폭포 등 변산팔경을 하나씩 마음에 새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 다른 여러 사람이 저마다 변산팔경에서 제1경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소사 모종(蘇寺暮鐘). 종소리 울리는 저녁 무렵 내소사(진서면 석포리) 풍경이 얼마나 운치가 있기에 그러 는 것일까.
무표정한 은행나무 대신 나이가 천살 이상이라는 느티나무가 정겹게 서 있는 내소사(來蘇寺).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해 달라는 비원’이 이름에 담겨 있다.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범종은 소리와 몸이 다 아름답다. 저녁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돌아 나오는 길, 절안 출입로 왼쪽에 있는 찻집 화래원(和來 院)에서 ‘솔바람차’ 한잔 데울 수 있으면 어떤 쓸쓸한 인생도 따스해질 것이다.
꾼들은 격포항의 아름다움조차 잘 모르고 있다. 북쪽 방파제 바로 앞에 있는 채석강과 격포해수욕장 북 쪽의 적벽강은 멀리 봐도 아름답고 배를 타고 찾아가 상륙한 뒤 채비를 드리우면서 봐도 아름다운 쌍둥 이 해식애(海蝕崖)다.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는 낙조(落照)를 감상하고 싶은 이는 격포 항구 남쪽 해넘이공원을 찾으 면 된다. 격을 갖추자면 산길을 1.7km나 걸어야 하지만 3백m 지점 돌계단 위의 조망도 뛰어나다.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은 선캄브리아대 지질 구조가 남아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5억7천5백만년 이전 에 생성된 화강암과 편마암과 7천만년 전의 퇴적암이 기와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이것이 심한 지각변 동을 받아 단층과 습곡을 이루면서 그 유난한 모습이 생겨났다. 5억7천5백만년 전이라니. 아름다움의 대가로는 너무 긴 시간이지만 우리의 여행에선 하루에 그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격포리와 도청리 사이에 있는 금구원조각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공원. 낚시솜씨도 뛰어난 조각가 김오성씨의 작업 공간과 개인천문대가 있다. 영상테마파크 건설과 도로 확포장 공사로 입구를 알리는 푯말을 놓치기 쉽다.
농지개혁을 꿈꾸던 언덕
보안면 우동리 우동저수지 들어가는 길목에는 조선 중기 학자로 실학의 씨앗을 뿌렸다고 평가받고 있는 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글을 썼던 서당이 있다. 산길 30분을 걸어 서당 앞에 서면 보안면의 너른 들과 염전, 풍성한 삶의 터전인 곰소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언덕에 서서 선생은 중농사상을 기반으로 한 농지개혁의 꿈을 키웠다.
격포에서 우동리 가는 길, 풍경이 좋다 싶은 곳에는 예외 없이 카페촌이 형성돼 있다. 도청리 남쪽 호 랑가시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앞은 오후 시간에 배낚시 출조지로 유명한 모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자리.
격포에서 낚시를 마치고 철수하는 길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남쪽 연안 길을 택하면 보안면 신복리 일대 젓갈시장을 거치게 된다. 곰소어민후계자젓갈, 다해젓갈할인백화점, 위도식품젓갈공장 등 상호는 제각각이지만 풍성한 맛은 한 가지다.
영전에서 바로 고속도로로 들어가지 않고 부안으로 발길을 돌리자 죽염 생산지로도 유명한 상서면 감교 리에 원숭이학교가 있다. 학교에선 일본 니코 원숭이를 들여와 매시간 재롱을 보여주는 공연을 한다. 악어이빨 콘테스트가 열리는 파충류관도 있어 아이들에게 점수 따기 좋다.
어느 길을 택하든 격포 부근엔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바닷가에 횟감이나 매운탕감이 흔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어디나 있는 것이기에 더 새로운 맛을 찾게 되지 않을까. 바자락죽 한 그릇은 입맛이 까다 로운 꾼에게도 해답이 될 수 있다.
바지락은 참조개과에 속하는 바닷조개. 담수가 섞여 염도가 낮은 바닷가의 얕은 뻘에 숨어 산다. 바지 락죽은 잘 끓인 쌀죽에 싱싱한 바지락을 넣고 한 번 더 끓인 뒤 생인삼, 녹두 등을 넣어 한 차례 더 살 짝 덥혀 완숙시킨 것이다. 최근엔 변산반도 북쪽 계화도 돈지연안에서 채취한 백합으로 끓인 백합죽이 가세했다. 그나마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면 백합죽은 맛보기 어렵게 된다.
변산반도의 북쪽 연안에는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시위라고 할 수 있는 목조각품이 늘어서 있 는가 하면 그 당위성을 설명하는 새만금관광안내소(월요일 휴관)가 있다. 꾼들은 이미 새만금방조제 건 설로 물길이 바뀌면서 포인트가 급변하고 감성돔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을 느끼고 겪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70% 이상 방조제 건설이 진행된 뒤에, 지금에 와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격포항 저편으로 내려앉는 저녁노을은 아름답고 또 슬펐다.
격포로 가려면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부안IC로 나와 30번 국도로 부안읍 으로 들어간다. 부안읍서 격포까지 승용차 20분 거리. 곰소만이나 내소사 쪽을 먼저 보고 싶을 때는 줄 포IC로 나와 23번 국도-30번 국도를 거치도록 한다. 호남고속도로를 타야 할 때는 태인IC가 출구. 고 속버스 승차권 예약 및 운행 안내 easyticket.co.kr 시외버스 안내는 부안 063-584-2098 격포 582-8740 줄포 582-0008 곰소 582-7129.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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