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를 찾아, 떠난 여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3-07-09 오전 11:04:00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매일같이 부소산성을 오르내리던 기억을 갖고 있다. 아버지의 큰손을 붙잡
고 올라갔던 그곳에는 어린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낙화암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벅차게
올랐던 산성의 끝에, 백제의 망운의 역사와 함께 했던 낙화암, 그 슬픈 이야기가 어린 나의 마음을 흔
들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들었던 백제의 이야기는 내게서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 아버
지의 직장 때문에, 부여를 떠나왔을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사했던, 다른 지역 사람들에
게 백제, 그리고 그런 백제의 역사를 간직한 부여는 그저, 잊혀진 하나의 왕국일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중·고등학교 내내 소풍과 수학여행을 다녔었지만, 백제의 옛 역사를 찾는 그런 여행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남북 시대를 연 천년의 고도 경주 그리고 수많은 유적지는 두루 돌아다녔지만, 유독 백
제의 옛 도시는 내게서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버린 듯 했다.

그래서 아버지께 부여를 다녀오겠다는 말을 건넸을 때, 아버지는 기대보단 걱정을 입에 담으셨다.

"오래 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부여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모두들 실망했었단다. 유적도 유적이지만,
한 나라의 왕도인 부여가, 관광준비가 이렇게 부족해서야…. 어렸을 때의 막연한 환상만 갖고 간다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단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하지만 적어도 실망보다는 좋은 의미를 가슴에 담고 오리라 생각
하고 7일 아침 부여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미 상투적 표현이 되었지만, 역사
는 승자의 전유물이라는 것, 만약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지금 부여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부여로 가기 위한 1차 목적지인 논산에 도착했다.

대전에서 부여에 가기 위해선 논산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 빠르기 때문에 나는 그 방법을 택했다. 논산
시내에서 부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부릉 한참을 달려 목적지인 부소산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잘 정비된 길, 그곳에 사비문이 있었다. 사비문은 부소산성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백제의 역사에
첫발을 내딛는 문이라고 생각하니, 자못 긴장이 되었다. 그런 설렘을 안으며 사비문안에 발을 내디뎠
다.

사비문안으로 들어가니, 백제의 옛 왕궁터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미 터만 남아버린 이곳
은, 필자로 하여금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한반도를 호령했던 삼국 중 하나인 백제의 모습은 지금 이렇
게 폐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신라의 경주와 고구려의 평양처럼,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백
제를 접하기는 아직 무리일까?

운치와 멋이 잘 조화된 부소산성의 숲은 걷기에 무척 좋았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연
신 카메라 샷을 눌러댔지만, 막상 디지털 카메라 화면으로 보이는 광경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숲길을 벗어나,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삼충사였다. 삼충사는 백제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 장군
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라고 한다. 승자의 전유물처럼, 역사가 이어지던 그 시기, 삼 충신
의 이야기는 망국의 한에 서려있던 백제인의 마음을 달래주며,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삼충사 옆에 작은 연못은, 이름 모를 수풀과 기암바위에 둘러싸여, 멋진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런 모습에 한동안 도취되어 필자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삼충사에서 멋과 운치가 있는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영일루가 보이게 된다.

영일루는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원래 이곳에는 영일대가 있어서,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
오르던 해를 맞이하던 곳이라고 하니 그 원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안타까울 뿐이었다.

계속 길을 가던 도중, 당돌한 한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앞길을 떡 하니 막고, 벤치에서 움직이지
를 않고 있던 녀석, 바로 청설모였다. 처음에는 사람 인기척을 듣지 못해서 도망가지 않는구나 생각하
고, 일부러 인기척을 냈다. 그런데 녀석은 나를 말똥히 바라보기만 할뿐 도통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다. 그런 청설모 녀석을 보고 있자니, 덜컹 겁이 났다. 요즘 야생동물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던
데, 저 녀석도 그런 녀석중 하나인가? 녀석을 놀래주려고 얼른 사진기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플래시
가 터졌는데도 녀석은 놀란 기색이 하나 없다.

하긴 청설모뿐만이 아니다, 다람쥐, 메추리 등 많은 동물들이 이곳에는 살고 있었다. 헌데 사람이 지나
가면 놀랄 만도 별로 그런 기색이 없다. 사람들에게 그만큼 익숙해지기 때문일까? 백제 사람들도 그랬
을 것이다. 마땅히 장난감이 없던 시절, 아이들은 자그마한 야생동물들을 벗삼아 놀았을 것이고, 그렇
게 자연과 친했을 것이다.

군창지는 부소산성내 동남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백제 사람들의 망국의 날의 마지막
저항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적군에게 군량미를 내주지 않기 위해 태워버린 곡식,
이곳 군창지는 군량미를 저장해 놓는 곳이었던 것이다. 요즘도 타다 남은 곡식이 가끔가다 발견된다고
한다.

군창지를 벗어나, 굽이굽이 계단길을 내려오니, 작은 정자 하나가 눈에 띈다. 백화정이었다. 그리고
백화정 아래, 낙화암은 자리잡고 있었다. 백마강이 한눈에 보이는 확 트인 이곳, 이곳이 바로 삼천 궁
녀들의 목숨을 앗아간, 백제의 망국의 자리였다.

백제의 사직이 무너지던 날. 백제의 여인들이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런 삶을 이어가기보다는 충절을 지
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고 삼국유사는 적고 있다.

낙화암의 끝에서 백마강을 바라보았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백마강은 말없이 오늘도 흐르고 있다. 하지
만, 백제의 역사는 우리에게 잊혀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잃어버렸던 백제의 역사를 찾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과제일 것이다.

적어도 백제는 우리와 함께 해 왔던 역사이기에 그리고 비록 패망했지만 낙화암의 여인들 같은, 백제
의 혼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백제를 알아 가는 여행, 곧 그것은 우리의 역사를
알아갔던 여행이라 생각을 담으며 글을 줄인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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