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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겨울이 오면 군내 나는 오모가리 김치에 끌리고, 봄이 오면 향긋한 봄나물 이 간절하니. 아마 몸이 스스로 계절의 향미를 원하는 듯하다.
게으른 눈빛은 봄꽃 풍광에 반짝이고, 짧은 입은 풋풋한 봄 푸성귀에 연연하는 나른한 봄날. 문득 떠오 른 곳이 있다. 선암사(전남 순천시 승주읍)다. 봄이면 청매화 홍매화 벚꽃 목련 동백 춘백 등 하얗고 붉 은 꽃으로 꽃 대궐을 이루는 곳. 그러나 그보다 더 ‘봄 밝힘증’을 부채질하는 것은 선암사가 아니라 그 길목 식당의 봄 냄새 향기로운 소반상이다.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을 나와 22번 국도로 가다가 만나는 857번 지방도.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굴 다리를 지나자마자 오른편 공터 앞에 ‘진일기사식당’(전남 순천시 승주읍 신성리)이 보인다. 하필이 면 기사식당? 이런 의문도 일리 있다. 전국 맛집을 소개해 온 이 난에서 기사식당은 처음이니.
이 공터는 호남고속도로 개통 당시 승주 나들목이었다. 그 나들목이 7, 8년 전에 현 위치로 옮겨 가면 서 식당만 남았는데 간판은 그대로다. ‘진일’은 ‘진입로에서 제일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식당을 낸 이는 배일순(73) 씨. 23년 전 일이다. 당시 손님은 주로 트럭 운전사였다. 음식이라고 해 봐야 집에서 해먹는 것과 같은 반찬에 돼지비계와 고기를 푸짐하게 얹어 프라이팬에 끓인 김치찌개를 더 한 한정식. 그런데 남도의 손님상은 상다리가 휠 정도로 푸짐한 게 특징이어서, 아무리 당시 기사식당 의 1200원짜리 밥상이라고 해도 다름없이 반찬 열너덧 가지에 찌개까지 올랐으니 인기를 끈 것은 당연했 다.
저렴한 가격에도 그만한 밥상이 가능했던 것은 주인의 정성 덕분이었다. 남편은 밭에서 시금치 쑥갓 등 채소를 키우고 안주인 배 씨는 된장 고추장 간장을 직접 담갔다. 이런 방식은 지금도 변함없어 맛이 그 대로다. 식당 옆 텃밭에서는 지금도 푸성귀가 자라고 있다.
상차림을 보자. 갓김치, 산초 넣어 알싸한 열무김치, 고들빼기, 굴 넣고 버무린 무김치, 묵은 배추김 치, 시금치 고사리 콩나물 도라지 취나물 머위 등 나물, 가자미구이, 양념게장, 전어내장젓과 정어리젓 을 뒤섞은 전어속젓, 깻잎장아찌, 계란찜, 그리고 김치찌개와 쑥국, 밥.
이즘의 상차림은 봄빛이 짙다. 된장으로 무친 머위와 취나물, 깔끔한 갓김치는 봄날의 깔깔한 입맛을 일 순에 바꿔 놓을 만큼 향취가 기막히다. 봄꽃으로 뒤덮인 선암사가 지척이니 선암사 여행길에 들른다면 입으로도 눈으로도 봄맛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이 식당에는 원칙이 있다. 첫째, 음식은 배 씨가 그날 만들고 다음 날에는 절대 쓰지 않는다. 배 씨는 23년째 매일 오전 5시 반에 주방에 나온다. 둘째, 장 젓갈 김치는 직접 담근다. 찌개용 김치도 별도로 담그는데 약하게 양념한 김치로 끓여 낸 김치찌개는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셋째, 혼자 온 손님에게도 1 인상을 낸다. 혼자 다니는 트럭 운전사를 위해 시작한 이 식당의 전통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4500원이던 음식값은 지금 500원 올랐다. 이 가격에 한 사람 상을 차려내도 수지가 맞을까. 며느리 서정엽 씨(43)의 대답이다. “밥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워낙 찾는 분이 많아서….”
○여행정보
▽찾아가기 △진일기사식당: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22번 국도(구례 방향)∼857번 지방도(순천 방 향). 선암사까지 6km △선암사:진일기사식당∼857번 지방도∼죽학 삼거리∼832번 지방도∼괴목(사하촌) ∼주차장. www. seonamsa.co.kr 061-754-5247 △식당 이용:오전 7시∼오후 9시 반 영업. 추석 설 연휴에 만 쉼. 061-754-5320 ▽길따라 맛따라 패키지 △당일=29, 30일, 5월 1, 6, 7일 출발. 선암사∼진일기사 식당∼지리산 할미봉(철쭉 군락). 3만8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동백… 영산홍… 겹벚꽃… 꽃물 든 山寺▼
봄에 선암사는 찾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언제 가도 꽃이 만발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하얀 겹벚꽃이 피었다. 3월 내내 피고 지던 동백과 춘백의 빨간 꽃도 건재하다. 영산홍도 빨간 꽃을 피워 청 매화 홍매화 지고 난 뒤 무채색이었던 고찰을 다시 화려하게 채색했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오르는 산길의 작은 계곡에도 봄빛이 역력하다. 물가의 가지마다 연둣빛 봄물이 올랐 고 봄비 덕분에 불어난 물이 흐르는 소리도 청아하다. 계곡 가로지르는 승선교의 우아한 자태는 새로 놓 은 뒤에도 변함없고, 그 다리 뒤로 선녀처럼 사뿐히 내려앉은 누대 강선루도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이 어울림을 뒤로 하고 길가 야생 차밭을 지나면 일주문이다. 문 곁 고목의 마른 가지에까지 ‘봄물’ 이 푸르게 들었다.
태고종 총림의 선암사는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찰. 고색창연한 당우 20여 채가 절 안에 핀 꽃 나무와 잘 어울린다. 선암사의 봄꽃 시즌은 매화 피는 3월부터 겹벚꽃이 폭발하듯 만개하는 5월초까지. 팔상전의 풍경 소리가 요즘 활짝 핀 겹벚꽃의 풍치를 선경으로 휘몰이한다.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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