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범죄 잡는 ‘보이지 않는’ 기술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4-28 오전 9:37:00
[동아일보]
《어느 야심한 밤 한국 첩보요원 K는 은밀히 부산항에 정박된 배 안에 잠입했다.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
피는 K. 곧이어 재빠른 손놀림으로 작은 상자를 배낭에서 꺼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넣는다. 몇 시간
뒤 선박은 조용히 새벽안개를 가르며 유유히 공해로 나아갔다. 같은 시각 K가 근무하는 청사 안에 마련
된 작전실 화면에는 선박 위치가 시시각각 보고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선박은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
온 해군과 해경 경비정에 붙잡힌다.》

톰 크루즈가 등장하는 첩보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국가정보원(원장 김승규)이 국내 산업 기
술을 빼내려는 일당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 장치가 사용됐다. 산업 스파이
와 이를 쫓는 국정원 요원 사이의 추격전에서 영화 속에나 등장할 첨단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다만 범인
에 대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겨 주고 손을 떼기 때문에 국정원의 역할은 일반인에게 거의 드러나지 않
고 있을 뿐이다.

○ 디지털 범죄 대응 특수부 운영 중

본보가 최근 국정원에서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 6건에 머물던 기술유출 사건 검거 실적이 2004
년 26건, 2005년 29건으로 급격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예방액을 추산하면 82조 원에 이른
다.

산업스파이들이 노리는 범죄 대상은 디스플레이 장치에서 신형 휴대전화, 메모리, 초음파진단기, 음식
물 쓰레기 처리장비까지 광범위하다.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나 메모리, 스마트폰 등 한
국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술은 밀거래 품목 1순위를 차지한다. 이처럼 범죄 대상이 첨단이
다 보니 수사기법도 첨단을 좇는다.

최근 산업스파이들은 노트북, 메모리스틱, 외장형 하드디스크, 개인 간 파일 공유(P2P), DVD 등 다양한
정보 매체를 범죄에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정보가 A4용지로 200∼300만 장 분량에 해당하는 수십 기가바이트(GB) 규모이고 자료를 은닉
하기 쉽기 때문이다”고 국정원 측은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럽식(GSM) 스마트폰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려다 적발된 범인들도 A4지 100만 장 분량의 정보를 DVD와 e메일로 빼돌렸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
러났다.


문제는 디지털 저장매체를 활용한 범죄를 수사하기가 꽤 까다롭다는 것. 검거에 대비해 기계를 부수면
증거가 쉽게 인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도 영화 007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첨단 첩보장비를 제공하
는 특수연구소와 유사한 부서를 설립해 수사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를 자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
다.

○ 자체 개발 암호화 e메일로 연락

주요 기관의 사내 블로그나 게시판도 국정원의 정보수집 창구로 활용된다. 해외여행이 갑자기 잦아진 전
직 직원과 이들과 연락을 자주 취하는 현직 직원은 의심 대상 1순위. 국정원은 산업기술 유출의 95%가
전현직 직원에 의해 벌어진다고 파악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e메일 감시다. 국내 대기업들과 주요
연구기관들은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e메일을 감시하는 보안솔루션을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
다고 알려졌다. 국정원 요원의 경우 ‘보이지 않는 적’의 감시에 대비해 자체 개발한 암호화 프로그램
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그림 속에 글자를 숨기는 알고리듬인 ‘스테가노그래피’라는 암호기술
도 그 중 하나다. 별도의 해독 프로그램이 없으면 아무도 의미를 알 수 없다.

과학기술부는 첨단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까지 ‘디지털 포렌식’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디지
털 포렌식이란 정보매체 안에 남은 범죄 증거를 찾아내는 수사기술로 최근 각국 수사기관들이 큰 관심
을 보이고 있다. 연구 계획에는 파괴된 하드 디스크의 완전 복구, 휴대전화기에 남은 증거 포착, 용의자
의 e메일과 계정 비밀번호를 푸는 첨단 기법이 포함돼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국제 마약 범죄와 산업스파이 수사나 검거작전에는 GPS 추적 장치 외에
도 밝힐 수 없는 비밀장비들이 사용되고 있다”며 “기술유출 방식이 지능화되면서 요원들의 수사 방식
이나 장비들도 실제로 과학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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