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은 렘브란트 탄생 400주년 축제 중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4-20 오전 9:59:00
오전 9시 30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Rijksmuseum). 입장하자 마자 뛰었다. 렘브란트의 ‘야
경’(1642) 앞이 마침 텅 비어 있었다. 너무 유명해 오히려 그동안 제대로 보지 않았던 그림이다.


막 출동하려는 민병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세월의 때로 시커멓게 변해 ‘야경’이라는 별명이 붙었
다. 실제로는 대낮 풍경이라고 한다. 그림 속에서 렘브란트의 얼굴도 찾아본다. 수백 년 전 거장의 붓질
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살짝 벅차다. 곧 웅성웅성 관람객들이 떼로 몰려든다. ‘야경’과의 1대1 만남은
5~6초 만에 끝났다.

그림 보러 해외여행 간다? 황당한 낭비, 아니면 최고의 낭만. 아무튼 미술팬이라면, 올해 유럽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일정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넣자. 암스테르담에서는 연말까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탄생 400주년’ 축제가 한창이다. 국립박물관은 2009년까지 보수 공사 중이다. 일부 전시
실만 빼고는 폐쇄됐다. 멀리서 온 여행자는 억울하다. 그러나 렘브란트를 한번에, 집중적으로 보려면 올
해 가야 한다.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등에 흩어져 있던 렘브란트 작품이 400주년을 맞아 네덜란드
로 속속 모여들었다.


‘집중 관광’ 하면 또 암스테르담이 최고 아닌가. 중앙역에서 국립박물관까지야 트램 타고 가야 하지
만 볼거리가 밀집된 도시 중심부는 지도 한 장 들고 슬슬 걸어 돌아다니기 좋은 스케일이다. 게다가 렘
브란트가 활보했을 17세기 분위기가 고스란히 간직된 암스테르담은 165개의 운하, 1281개의 다리 덕분
에 오밀조밀 야무지게 예쁘다. 암스테르담 도착 즉시 관광안내소에서 ‘렘브란트 따라 걷기’ 지도와
‘아이 암스테르담’ 카드(여행수첩 참조)를 사면 렘브란트 만날 준비 완료다.

‘렘브란트 따라 걷기’ 지도에 보니 출발점은 렘브란트가 살면서 작업했던 ‘렘브란트하위스’
(Rembrandthuis)다. 암스테르담의 저 좁고 긴 가옥 내부가 궁금했는데, 마침 그 안을 들여다 볼 기회
다. “그 귀한 렘브란트 그림을 부엌에 건 사례는 여기 뿐”이라고 큐레이터가 웃는다. 스튜디오, 침
실, 작업실 등 대가가 머물렀던 공간에 작품이 걸려 있다.

다시 국립박물관. 마침 영국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가 와 있었다. ‘야경’을 재해석한 영화와 영상
·설치 작품을 발표 예정인 그는 “그림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다빈치 코드’ 속 ‘모나
리자’ 급의 미스터리가 ‘야경’에도 있다? 작품은 6월 2일 국립박물관에서 공개된다. “제가 보기에
렘브란트의 그림은 영화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감정이 요동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잡아낸 렘
브란트의 붓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근 고흐 미술관까지 핫도그 하나 먹으며 걸어갔다. ‘감자 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보러 어차피
가야 하는 고흐미술관에서 마침 빛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드라마틱한 명암 효과, 격정과 전율…. 바
로크 팬이 흥분하는 두 개의 이름, 렘브란트와 카라바조를 앞세운 전시다. ‘렘브란트-카라바지오’에
는 렘브란트, 그리고 이탈리아 거장 카라바조(Caravaggio·1571~1610)의 작품이 30여점 나온다. 데릴라
가 삼손의 머리칼을 싹둑 자른다. 쿡 찔린 삼손의 눈에서 피가 펑펑 솟구친다(렘브란트). 얼굴을 살짝
찡그린 유디트가 버둥대는 적장의 머리를 잡고 칼로 목을 자른다(카라바조)…. 도록에 적힌 대로 ‘시각
적 쾌감’의 극치다.

렘브란트의 흔적을 찾아 암스테르담 거리를 산책했다. 렘브란트 동상이 서 있는 ‘렘브란트 광장’. 현
대 미술가들이 ‘야경’을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관광객들이 등장 인물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사진
을 찍는다. ‘레스토랑 더 바그’(De Waag)는 선박의 닻이나 대포의 무게를 재던 계량소. 해부학 강의
가 열리기도 했던 장소다. 렘브란트가 이곳에서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1632),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수업’(1656)을 그렸다. 20대 때 이미 스승을 넘어서며 두각을 나타낸 렘브란트는 일찌감치 부
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림을 의뢰한 고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내 맘대로’ 화풍, 수집벽
과 낭비, 아내와 정부·자녀들의 잇따른 죽음 때문에 말년은 쓸쓸했다. 그가 잠든 곳은 ‘안네 프랑크
의 집’ 바로 옆 ‘베스터케르크’(Westerkerk) 교회 지하 어디라고 한다. 국립박물관 큐레이터는 “묘
지 살 돈도 없이 빈털터리로 죽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렘브란트의 고향 레이덴(Leiden)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 타고 30분이면 간다. 전통 있는 대학 도
시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시립미술관에서도 렘브란트 특별전시가 연중 계속된다. 시내 기념품 매장에
서 ‘청년 렘브란트를 따라 가는 지도’를 판매한다. 운하 따라, 풍차 옆 다리 건너, 레이덴 대학 캠퍼
스를 누비는 코스는 한 2시간이면 끝난다. 부유한 풍차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난 렘브란트도 레이덴 대
학을 다녔다.


렘브란트를 찾아가는 여행은 헤이그(Den Haag)까지 계속된다. 헤이그는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 타
고 1시간. 마우릿츠하위스 왕립 미술관에는 렘브란트도 렘브란트지만, 베르메르(Vermeer·1632~1675)의
‘진주 귀고리 소녀’(1665)를 보러 갔다. 베스트셀러 소설과 영화 때문에 상상의 여지는 죽어버렸지
만, 관람객을 향해 살짝 몸을 돌린 소녀의 윤기 도는 입술, 반짝 빛나는 귀고리를 얼굴 닿을 듯 가까이
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 보고 또 보고 싶고, 그림 앞을 떠나기 아쉽다.


여행수첩

●인천-암스테르담은 대한항공이 매주 월·수·금요일 출발, KLM은 매일 출발. 비행 시간은 11시간. 유
로화 사용(1유로=약1170원). 한국보다 7시간 늦다(현재 서머타임 실시 중).

●보통 스키폴 공항에서 기차 타고 암스테르담 시내로 이동. 20여분쯤 걸린다. 3.60 유로.

●관광안내소나 호텔에서 ‘아이 암스테르담’카드를 판다. 24시간(33유로)·48시간(43유로)·72시간
(53 유로). 기한 내에 트램·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이 공짜, 주요 미술관·박물관 입장이 공짜(특별전
제외)다. 암스테르담에서 꼭 해봐야 할 운하 크루즈(75분 소요)도 공짜.

●펜케이크가 특이하다. 우리 식으로 푹신한 것이 아니라 크레페처럼 얇다. 그 위에 사과·파인애플 뿐
아니라 햄·살라미도 올려 먹는다. ‘프린센그라흐트’(Prinsengracht) 운하길 191번지 ‘팬케이크 베이
커리’(Pancake Bakery)는 관광객이 몰리는 곳. 좀 더 ‘네덜란드’ 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Pannenkoeken huis Upstairs’(Grimburgwal 2)로 가자. 말 그대로 ‘2층 팬케이크집’. 가파른 계단
을 기어 올라가야 한다. 테이블 4개짜리 미니 식당에서 귀고리를 한 주인 남자가 팬케이크를 구워낸다.
베이컨·치즈 팬케이크가 7.50 유로. 금·토·일·월요일에만 문 연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의 도시다. 걸을 때 보도와 차도 사이 붉은색 자전거 도로는 침범하지 않도록 주
의 한다.

●커피 한 잔 하려면 ‘커피숍’ 말고 꼭 ‘카페’로 갈 것. ‘커피숍’은 대부분 (대마초가 합법인 네
덜란드에서)대마초를 파는 곳이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네덜란드 관광청 웹사이트(www.holland.co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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