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서비스, 목숨 걸고 질주 "종착역 인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12-23 오후 3:53:00


[경향신문 2005-12-23 10:39]

오토바이 등을 이용해 짐이나 서류를 지정된 곳에 빠르게 전달하는 ‘퀵 서비스’. 연간 매출규모만 7천
억 원에, 종사자만도 최소한 2만 명에 달한다. 도로에 퀵 서비스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급성
장한 사업규모와 달리 퀵 서비스 기사들은 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
해 있다.

◇ “출구만 있으면 그만두고 싶다”=올해로 4년째 퀵 서비스 일을 하고 있는 고모(39)씨는 걱정이 태산
이다. 업체가 난립하다보니 주문은 갈수록 줄고 요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아무리 안전에 신경
을 써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사고를 막을 방도가 없다. 퀵 서비스 기사들은 노동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는 처지. 또 일반 보험회사들이 퀵 기사들의 자손·자차보험을 꺼려해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이 고스란히 기사 몫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뾰족한 수
가 없다.

“퀵 서비스요?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의 종착역이지. 언제 사고날지 모르는데. 그뿐인가. 요리조리 곡예
하듯 자동차를 피해 달려가도 늦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득달같이 ‘왜 안 오냐’고 전화가 와요. 부
랴부랴 뛰어 가면 반말부터 한다고. 나이 마흔에 어린 사람들한테 그런 소리 들어봐요. 이 일, 못해
요.”

고씨는 매달 사납금으로 40~45만원을 회사에 낸다. 그러면 회사는 배달정보를 알려준다. 그렇다고 개개
인에게 물량을 나눠주는 방식은 아니다. 정보만을 알려주고, 가장 먼저 ‘찍은’ 기사가 배달을 한다.
배달업무 도중 물건의 파손이나 분실 등의 책임도 기사 본인에게 있다. 배달정보를 전달하는 PDA나 TRS
는 물론, 거래처 관리를 위한 쿠폰과 회사 이름이 박힌 조끼 비용까지 기사가 부담해야 한다. 고씨는
“회사를 세군데 옮기니 남는 건 조끼밖에 없더라”며 조끼 장사로 나서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다.

조그맣게 시작한 사업을 실패한 후 퀵 서비스 기사로 나섰던 고씨. 오토바이와 면허증만 있으면 일할
수 있어 그야말로 열심히 뛴 만큼 많이 벌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야 굴뚝같지. 돈 좀 모였으면, 출구만 있었으면 골백번도 넘게 그만뒀지.”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폐에 납 성분이 꽉 찼다는 진단을 받은 친구가 있어요. 그게 다 뭐겠어요. 하루
종일 매연 뒤집어쓰고 달리니까 그런 거지. 요새는 20대 젊은 사람들도 퀵 서비스를 하더라고. 정말 말
리고 싶어요. 단돈 2~3만원을 벌더라도 안전하고 장래성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 “근로자성 인정 못 받아 불이익”=함께하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지난 10월 특수고용 노동자
에 관한 실태조사의 일환으로 퀵 서비스 기사의 근로조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퀵 서비스 기사는 알선료를 내고 회사로부터 배송업무를 소개받아 고객에게 받은 요금을 수입으로 하는
지입관계의 특수고용 노동자로, 현행 법 제도에서는 업체와 대등한 사업자 관계이기 때문에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업체의 관리?감독을 받
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시민행동이 퀵 서비스 기사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0.0%와 36.7%가 각각
정규직 관리자와 회사 대표에게 업무지시를 받고 있었다. 또 대부분의 기사들은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사
고위험을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응답자 중 90%가 사고경험이 있다고 말했으며 83.3%가 산재보험
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신태중 시민행동 좋은기업만들기팀장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퀵 서비스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등 전국적으로 8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각종 불이익을 받고 사회적으
로도 무방비 상태에 있다”며 “정부는 사회보험 등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미디어칸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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