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거주하는 조모(63) 씨는 3년 전 자영업을 접고 본격적인 노후생활에 들어갔다. 30년 동안 틈틈
이 모은 돈으로 3억원가량의 다가구주택을 보유하게 된 데다 1억원 정도의 예금자산, 월 20만원 정도의
자금을 받을 수 있는 연금형 보험도 준비돼 있어 향후 생활비에 대한 걱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자녀들의 결혼비용으로 예금의 상당 부분이 없어진 데다 낮은 이자
율, 부정기적인 임대수입마저 고정적으로 생계비 충당이 어렵게 됐다. 고민 끝에 임시직 일자리라도 찾
기로 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박모(64) 씨도 안락한 노후생활을 기대하며 6년 전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당시 2억원
정도의 명퇴금을 포함해 3억원의 현금자산을 바탕으로 12%대의 은행 금리를 받으면 자녀들의 도움 없이
도 월 300만원 정도의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금 금리가 3%대로 떨어지면서 월 이자
수입도 100만원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자녀들 도움 없이는 생활 유지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는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부부들이 겪고 있는 일반적인 생활 모습이다. 지난 2002년 기준으로 우리나
라 60세 이상 인구는 생활비의 40.1%를 자녀 및 친척의 도움으로 충당하고 있다. 본인 및 배우자의 근로
소득 38.6%, 재산소득 10.7%, 연금 6.5%, 정부 및 사회단체 3.8%에 머물고 있다. 평생 땀흘려 돈을 벌었
지만, 노후생활비의 20%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재산 소득이 부족한 셈이다.
▶저금리ㆍ고령화가 원인이다=노후생활의 어려움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금리 시대가 도래했
고, 평균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와 같은 두 자릿수 금리 수준이 유지된다면, 노후생활비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12%대의 금리
상황에선 3억원 정도의 자금으로도 월 3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평균수명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노후생활비용 증가 요인도 없어져 풍족한 노후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77세로 증가한 데다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저금리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노후생활이
고통의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한마디로 ‘오래 사는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가 먼저 일어난 미국의 경우, 저금리로 노후생활이 어렵게 되자 가계 자산 포트폴리오
가 안정자산 중심에서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75년 미국의 10년 만기 채권 금리가
13~14%에 이를 정도로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당시에는 가계 금융자산에서 예금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55%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점차 금리가 하락하면서 80년대 중반에 3%대를 보임에 따라 예금자산 비중은 10% 선으로 줄어들
게 된 반면, 위험금융자산(주식+수익증권+채권) 비중이 50%를 넘어서게 됐다. 저금리ㆍ고령화 시대에선
일정 정도 리스크를 감안한 자산 포트폴리오가 예금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게 된 것이다.
▶위험자산 비중 너무 낮다=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가계 자산 구성은 부동산, 예금 등에 편향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1년 기준으로 국내 가계 총자산 가운데 부동산 자산 비중이
83%에 이르고 있는 반면, 금융자산 비중은 17%대를 나타내고 있다. 가계 금융자산도 예금이 전체의 56%
를 차지하고 있으며,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ㆍ수익증권ㆍ채권의 비중은 17.6%에 머물고 있다.
반면 미국 등 외국 가계의 자산 구성과는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미국에선 가계 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은 40%에 머물고 있으며,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에서 위험자산(주식 34.4%, 수익증권 12.2%, 채
권 7.5%)이 차지하는 비중이 54%에 이르고 있다. 반면 예금 비중은 13%에 머물고 있다.
이 같은 상반된 자산 구성은 자산별 수익률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25년부터
2000년까지 주식 자산의 평균 수익률이 11%로 가장 높았던 반면, 우리나라에선 부동산 불패 신화로 자금
이 집중되며 부동산 수익률이 12.2%로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주식 수익률은 8.0%를 기록하며 부동산
수익률을 밑돌았지만, 우량주(삼성전자 POSCO SK텔레콤 한국전력 현대차)의 지난 15년간 주가 상승률은
670%에 이르렀다. 연평균 40% 선을 넘어선 셈이다. 우량주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투자에 나섰다
면, 부동산보다 4배 이상의 수익을 누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자산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부동산과 예금에 편중돼 있는 자산 포트폴리오는 저금리 시대에 부적합한
모델로 자산 구성의 리모델링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과도한 부동산 비중부터 낮춰야 할 것으로 지적되
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8ㆍ31 부동산대책 등의 영향으로 주택 매매가격은 3.8%, 전세가격은
2.6%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내년에는 아파트 매매가격이 4.7% 하락하는 등 부동
산 가격 하락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 수익률이 예금 수익률을 밑돌게 된다
는 의미다.
반면 주식 가격은 미국식 대세 상승 국면에 돌입하며 향후 5년간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
다. 이와 함께 최근 콜금리 인상 추세에 따라 채권 수익률의 하락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같은 기대 수익률 변화에 따른 자산 포트폴리오의 구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의 강창희 소장은 “미국 일본 등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나타난 부동산
거품 붕괴 현상이 한국에서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장기적인 전망에 따른 자산
포트폴리오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