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se #1 2005년 1월 황옥분(48·가명)씨는 가슴을 움켜쥔 채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심장병이라는 단어
는 떠오르질 않았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여자가 무슨 심장병이란 말인가. 가게 일, 재수하는 아들 뒷
바라지로 피곤한데다, 요근래 유난해진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탓이리라. 가
슴이 두근두근 불안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것도 울화가 쌓여 생긴 화병 탓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병
원에서 검사해 보니 심장혈관(관상동맥) 세 갈래가 모두 꽉 막힌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급히 금속 그물
망으로 막힌 혈관을 뚫는 스텐트 시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심장 기능은 반 밖에 되살릴 수 없었다. 너
무 늦게 병원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Case #2 평소 고혈압이 있던 김기정(55· 가명)씨는 최근 부쩍 얼굴이 화끈거리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졌
다. 식은 땀을 흘리기도 했다. 영락없는 갱년기 증후군이라 생각했다. 하나 밖에 없는 딸 시집 보내느
라 마음 한 구석이 휑해진 탓도 있으리라. 딸 결혼 준비로 바쁘니 몸은 천근만근 가눌 수도 없이 피곤하
고 마음은 우울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녘 김씨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으로 잠을 깼다. 최근에 바
꾼 고혈압 약이 맞지 않은 탓이라 생각하고 의사를 찾았다. 전에 없던 흉통을 이상히 여긴 의사는 심전
도 검사를 의뢰했고, 검사 결과 협심증으로 밝혀졌다. 당장이라도 심장발작으로 돌연사 할 수 있는 위험
한 상황이었다.
피로, 소화불량, 두통, 복통, 요통, 현기증, 식은 땀…. 심장과는 전혀 무관한 듯한, 일상적으로 나타나
는 이 증상들이 적어도 여성들에겐 심장병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의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심장병 증세는 가슴을 칼로 가르거나 헤집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 그
러나 이 같은 극심한 통증이 여성 심장병 환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가슴 통증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여성 환자도 드물지 않다. 또 여성 환자가 이런 가슴 통증을 경험할 때쯤이
면 이미 병이 훨씬 더 악화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정남식 교수는 “심장병 증상의 이 같은 남녀 차이 때문에 여성 환자들은 자
신이 심장병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뒤늦게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된다”며 “환자 수는 남성이 훨씬 많
은데도 불구하고 여성 환자 사망률이 더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심장학회에도 여성들은 심장발작 한달 전에 극심한 피로, 불면증, 숨가쁨, 소화불량, 불안 등을 경
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학회는 이처럼 새로운 심장병 ‘경고 신호’에 대한 교육이 필
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왜 이 같은 남녀 차이가 있는지 그 이유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남성은 혈전(피떡)이 덩어리로 뭉치
는 경향이 강한 반면, 여성은 혈관벽을 따라 골고루 퍼져가는 특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미
국 미시간대학 혈관센터 수조야 데이 박사는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혈관이 꽉 막혀버린 증상이 나타나
지 않거나, 아주 늦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주대병원 순환기내과 최소연 교수는 “같은 심장병이라도 분명히 남녀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하
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차이 때문에 여자의 심장병이 늦게 발견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특히 한국 여성들은 가슴이 답답하면 ‘화병’, 속이 불편하면 ‘위장병’으로 속단하는 경향
이 있어 진단이 더 늦어진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이상훈 교수는 “여성의 경우 심장병
으로 인한 가슴 통증을 유방암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여성 심장병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고령이어서 이미 당뇨, 고혈압 같은 위험 요소를 동반하고 있
는 경우가 많다. 또 체력이나 건강 상태도 남성보다 떨어져 있어 혈전 용해요법이나 스텐트 시술 등 보
다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도 힘들다.
이대동대문병원 순환기내과 신길자 교수는 “콜레스테롤을 조절해 동맥경화를 막아주던 여성 호르몬 분
비가 뚝 떨어지는 폐경이 지나면 여성의 심장병 발병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며 “심장병을 남성의 병
으로만 여기지 말고 40세 이후부터는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하고 피로, 소화불량, 숨가
쁨, 가슴 답답함이 느껴지면 당장 심장 검진을 받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트 모양의 심장은 여성들의 기쁨, 슬픔, 사랑, 회한을 꾹꾹 눌러 담아 두는 감정의 주머니가 아니라,
하루 10만 번씩 쉼 없이 뛰는 근육 펌프, 생명의 엔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당부다.
[심장병 예방 이렇게] 1. 채소와 과일, 잡곡을 많이 먹는다.
2. 반드시 금연하고, 술은 두 세잔 이내로.
3. 짜고 기름진 음식은 삼간다.
4. 매일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한다.
5.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잘 관리한다.
6. 피로, 소화불량 가슴 답답함 등 전조 증상이 있으면 빨리 병원을 찾는다.
7.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고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