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베를린 심포니 내한 공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03-05 오전 10:09:00
(서울=연합뉴스) 노승림 객원기자 = 부천시향의 말러 전곡 연주회는 국내 오케스트라계의 지각변동을 가
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레퍼토리의 확장이다. 사실 그 대중성에 대한 의구심과 연주의 어려움 때문에 부천
시향 이전의 여타 관현악단들은 말러를 꺼렸던 것이 사실이다.

부천시향이 4년여에 걸쳐 말러 사이클을 진행하는 동안 다른 악단들도 시대의 변화에 동참해 그 레퍼토
리를 섭렵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몇몇 악단들은 오히려 브루크너 등 더욱 후기 낭만주의에 적극적으
로 접근하는 실정이다.

덕분에 콘서트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1년에 한 번 듣기도 어려웠던 말러 중기, 후기 교향곡들을 국내 교
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와중에도 듣기 힘든 말러 교향곡이 있으니, 바로 6번과 8번, 그리고 9번이다. 난점은 아무래도 편
성과 곡의 난해함, 그리고 러닝 타임에 있을 것이다.

때문에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3일 덕양어울림누리 공연)가 말러의 거장 엘리아우 인발과 함께 맨 처
음 제시했던 레퍼토리가 교향곡 9번이었을 때, 한국의 말러 교도들은 독일 유명 악단의 실연으로 듣게
된 희열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공연장 측은 이미 매표가 시작된 상황에서 갑자기 레퍼토리를 변경해 버렸다. 갑자기 윤이상 10
주기를 기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의 작품을 프로그램에 추가하자는 논의가 매표 이후 이뤄진 듯하
다.

결국 윤이상의 '바라'가 끼면서 없던 하이든 협연이 함께 거론되고, 말러는 9번에서 5번으로 변경되기
에 이르렀다.

교향곡 5번으로 바꾼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은 아니다. 엘리아우 인발이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
단과 일구어낸 말러 교향곡 전집에서도 5번은 7번 연주와 더 불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희소성의 가치로 따질 때 숫자는 의미가 달라진다. 말러 5번은 이미 국내 에서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로 안착했지만 9번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레퍼토리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주최측은 아마도 진지
한 애호가를 유치하는 데 부분적으로 손해를 봤을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말러리안들에게, 1부 공연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 다.

윤이상의 '바라'는 일반 관객에게도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인발의 주된 영역은 역시 말러를 중심으로 한
후기 낭만주의였다. 서양 어법으로 쓰인 이 작품 안에서 인발은 한국의 정적인 정서를 찾아내는 데 어려
움을 느낀 듯싶다.

첼리스트 이숙정과의 하이든 협연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첼로의 음색은 오케스트라와 따
로 돌았으며 음정과 박자 또한 서로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실망감은 인터미션 이후 총체적으로 반전되었다.

말러를 손에 쥔 인발은 2부 무대에서 역전의 용장으로 탈바꿈했다. 1악장 도입부의 청명한 금관 솔로에
서부터 오케스트라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전날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인발은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말러의 음악 철학을 전파했을 만큼 대단한 말
러 광신도다.

그가 음악계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것 또한 덴온 음반사에서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
과 말러 교향곡 전집을 발매하면서였다.

다소 음울하고 과대망상적이던 이전의 말러 연주 스타일과 달리 인발은 명쾌하고 밝은 음색에, 논리적이
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제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말러가 이후 발매된 래틀이라든가 아바도와 같은 명장들의 연주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던 것 또
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2번과 5번, 7번은 아직도 많은 팬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은 전곡 녹음 이후 더욱 단련되고 확고해진 인발의 말러 연 주를 확인할 수 있었
다.

자칫 현학적이고 관념적으로 빠져버릴 수 있는 말러 교향곡에서(1990년대 드레스텐 슈타츠카펠레와 함
께 내한했던 주세페 시노폴리가 5번을 연주하며 바로 그런 우를 범한 바 있다) 인발은 작품에 잠재돼 있
는 통속적 정서를 최대한 자극적이고 세련되게 이끌어 내었다.

동구권 출신의 오케스트라답지 않게 베를린 심포니는 눈부시게 밝은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다. 이 또한
2001년도 부임 이후 인발에 의해 갈고 닦여진 소리로, 음반에 새겨진 프랑크푸르트 관현악단의 음색이
지휘자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금관들의 청명하고 자신감 넘치는 외침, 일사불란한 현악을 기반으로 인발은 매우저돌적인 템포로 음악
을 이끌었다.

지휘봉 없이 맨 손으로 연주하던 인발 자신조차 열정에 과도하게 몰입한 나머지 2악장 연주 직후 잠시
퇴장하여 휴식을 취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평균 10-12분이 소요되는 아다지에토 악장조차 8분 만에 소화해낼 정도로 빠른 템포였지만 풍성한 볼륨
감과 그 감정의 발전이 논리정연했던 덕분에 듣는 이들은 전 혀 부담을 느끼지 못했다.

브람스 헝가리 무곡까지 앙코르로 들은 관객들은 그 취향에 상관없이 충만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교향곡 9번의 아다지오 악장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크리스털과 같
은 사운드로 바로 그 악장을 공연장에서 직접 듣고 싶은 욕심이 아직까지도 무럭무럭 피어 오르고 있으
니 말이다.

alephia@hotmail.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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