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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험부정 묵인하는 사회 - ① 비뚤어진 현실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학 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지난 10일 마무리됐다. 올 해 수능 부정사건은 입건자가 374명으로 입시사상 최대 규모였다는 점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 첨단 수법을 사용해 조직적으로 부정을 저질러 충격을 던져줬다. 학생들이 왜 부정행위에 나서는지 그리고 그 해법은 무엇인지 두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돈이 있었으면 저도 했을 거예요.” 대학 수학능력시험 부정 사건 와중에 만난 광주 ㄷ고 3학년 ㄱ (18)군은 거리낌없이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수능에서의 부정행위가 무슨 큰 죄냐고 따지는 듯했다. 같 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ㅇ(18·구속)군이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에 가담하라고 권유했을 때 단지 “돈이 없어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되묻기조차 했다. “점수를 1점이라도 더 받고, 더 좋은 대 학에 가려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수능 부정행위를 한 이들은 일반의 예상과 달리 이른바 ‘불량’ 학생들만이 아니다. 성적 우수자들이 모였다는 서울의 한 외국어고 학생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답 안을 전송했고,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벌며 재수를 하던 지방 출신의 고학생이 수능 시험지를 판다는 인 터넷 광고에 눈이 멀어, 막노동을 해 모은 350만원을 선뜻 보내기도 했다. 광주 ㅈ고 박아무개 교사는 “수능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점수 1~2점에 목을 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 하다”며 “양심보다는 현실이 앞선다”고 말했다.
학부모와 교사도 시험 점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 지만 사회적 토양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어찌보면, 시험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고 학벌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가 부정행위의 ‘공모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1년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1학년 학기말 시험 때는 감독교사가 깜빡 조는 틈을 타 학생들이 답안 지를 돌렸고, 얼마 뒤 잠에서 깬 감독교사에게 들켰다. 시험을 본 15명의 학생들 가운데 10여명이 부정 행위에 가담했고 교사는 이들의 점수를 0점 처리했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들은 감독을 소홀히 한 교사 에게 책임이 있고, 내신 가중치가 높은 과목을 0점 처리한 것은 잘못이라고 항의해 결국 교사는 다른 학 교로 전보 조처됐다.
“수능으로 인생결판” 양심 헌신짝 ‘커닝 만연’ 감독도 교육도 행방불명 사회가 편법 방치·조장 사실상 공모
서울 ㅅ고 이아무개 교사는 “학부모나 학교는 서울대 몇 명, 연·고대 몇 명 하는 식으로 학교를 평가 한다”며 “학부모들의 호응도 이 숫자에 따라 달라져 교사로서는 무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입시철 이 끝나면 고등학교 교문에는 “서울대 합격 ○○명”이라는 글귀 아래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펼침막이 걸린다. 중학교에도 “외국어고 ○○명, 과학고 ○○명”이라는 펼침막이 내걸린다. 이런 현실에 부닥치 면 점점 더 성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커닝을 한때의 추억처럼 떠올리며 무용담처럼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엄연한 현실이다. 인터넷에서는 온갖 커닝 수법을 문의하고 답한다. 쪽지돌리기나 발의 위치에 따라 번호를 정하는 ‘발치기’, 시계의 초침을 맞춰 0~5초 사이는 1번, 6~10초는 2번 등으로 정해놓는 ‘초치기’ 등은 이미 낡은 수법이다. 대 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투명필름’(OHP)을 사용한 커닝이 많았다. 깨알처럼 글씨를 적어 책상 위에 펴 놓아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행위가 초등학교까지 퍼져 있는데도 이에 대한 연구나 대책에 대한 논의는 드물다. 10년 동안 학업 부정행위를 연구해 온 덕성여대 오영희 교수(심리학)가 서울 강북과 강남, 중소도시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여 학생 903명을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논문을 보면, 책상과 벽 등에 예상답안을 써 놓는 것 과 같은 ‘명백한’ 부정행위를 실제로 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58%나 됐다. 휴대전화로 답을 교환하 는 등의 수법까지 포함하면 시험 부정행위를 경험한 학생들의 비중은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부정행위 를 한 학생들의 27.1%가 초등학교 때 처음 부정행위를 했고, 62.1%는 중학교, 10.8%는 고등학교 때 처 음 부정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어떤 부정행위도 한 적이 없다고 답한 고교생은 6.8%에 그쳤다.
놀라운 것은 83.4%가 “부정행위를 해도 발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답했고, 55.2%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발각될 가능성이 적을수 록 부정행위를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 교육당국이 부정행위에 대해 계속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부정행위도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는 얘기다.
오영희 교수는 “사회에 부정행위가 만연하니까 학교에서의 부정은 부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민감 성이 떨어졌다”며 “부정행위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도 사회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아 이번 수능 부 정행위와 같은 일이 터졌다”고 지적했다. 황상철 이형섭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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