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밤도깨비 여행, 길 열렸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11-23 오전 11:31:00
[조선일보 2004-11-22 13:21]

금요일 퇴근 후 출발… 일요일 밤 한국 도착

[조선일보 김미리 기자]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직장생활. 잠시라도 일을 잊고 쉬고 싶으시다고요? 주말을 이용해 ‘반짝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요? 도쿄와 홍콩 주말 여행상품에 이어 중국 상하이가 밤도깨비 여행지
로 등장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한 뒤 10시 비행기로 상하이에 가서 이틀 동안 여행을 하고 일요일
밤 9시30분에 서울에 도착하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중국동방항공과 블루항공(www.bluetravel.co.kr, 02-
514-0585)은 지난 6일부터 상하이 2박3일 주말여행 상품인 ‘상하이 몽’(공항세 포함 34만8000원)을 만
들었는데요, 자유여행이므로 취향 따라 자기만의 실속 여행도 가능해요. 주말매거진이 13일부터 15일까
지 폭우 속의 상하이를 밤도깨비처럼 둘러봤습니다. 함께 따라가 보실까요?


◆ 첫째날 금요일 밤 졸린 눈 비비며 상하이 도착

12일 금요일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자마자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벼르고 별렀던 상하이 밤도깨비 여행 떠
나는 날. 산더미처럼 쌓인 일이 자꾸만 바짓가랑이를 붙잡지만 두 눈 딱 감고 돌아섰다. 부리나케 집으
로 가 조그만 배낭을 꺼내 짐을 꾸려 공항으로 향했다.


저녁 8시 인천국제공항 동방항공 카운터 앞은 상하이 밤도깨비 여행길에 오르는 일행들로 장사진.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어떻게 오게 됐느냐고 넌지시 물으니 대답이 걸작.


“저, 신문에 이름 나오면 안 돼요. 오늘 병원서 ‘탈출’했거든요. 며칠 전에 교통사고 나서 입원했는
데 여행을 취소하기 싫어서 도망 나왔어요.” 하하, 상하이가 뭐길래 병원문마저 박차게 만드는지….


밤 10시가 되자 족쇄 같은 휴대폰을 끄고 상하이행 비행기에 오른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스튜어디스
의 목소리가 기내 방송을 타고 흐른다. “지금 저희 비행기는 상하이 푸둥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현
지시간은 밤 11시입니다.”

◆ 둘째날 폭우 뚫고 위포쓰에서 신톈디까지

숙소인 동방호텔에 도착하니 시곗바늘이 자정에 걸려 있다. 체크인을 한 뒤 후다닥 짐을 풀어놓고 주저
없이 침대로 직행. 한숨이라도 더 자는 게 남는 거다.


다음날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하늘부터 쳐다봤다. ‘천둥 번개 치고 폭우.’ 떠나기 전 인터넷 사이트
에서 확인한 일기 예보가 못내 맘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은 찌르면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
뜨릴 것처럼 잔뜩 흐려 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9시부터 본격적인 상하이 탐험에 들어갔다. 첫 코스는 미얀마 옥으로 만들었다는
옥불상이 있는 사찰 위포쓰(玉佛寺). 샛노란 외벽과 빨간 대문, 겉으로 봐선 과연 여기가 절인지 의심마
저 들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짙은 향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윽한 웃음과 부드러운 자태의 우리네 불상
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미소년(?) 얼굴에 왜소한 체구를 한 옥부처를 보니 그저 신기하다.


드디어 상하이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가 어느새 장대처럼 굵어졌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가져간 우산으로는 역부족. 어떻게 온 여행인데 초장부터 포기할 수는 없지. 비옷까지 사
서 중무장하고 위위안(豫園)으로 향했다. 명대 고위관료였던 반윤단(潘允端)이 부모님을 위해 18년 동
안 지었다는 대정원에 발을 내디디니 수분을 머금은 고목과 기와지붕이 마음까지 촉촉히 적신다.


위위안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거리 위위안상창(豫園商場)으로 나오니 처마끝이 뾰족히 솟은 명·청시대
건물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호수 위에 한송이 연꽃처럼 둥둥 떠 있는 찻집 ‘후신팅(湖心亭)’에 들어
가 보리차 한 잔(50위안)을 시키니 두부와 메추리알이 딸려나온다.


차를 마시고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보고 나니 꼬르륵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어댄다. 위위안상창 중앙에 있
는 유명한 만두가게 난샹샤오룽(南翔小龍)에 갔더니 손님들이 죽 늘어서 있다. 만두 18개에 8위안. 값
도 부담스럽지 않아 찾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차례를 기다리려면 1시간은 족히 줄을 서 있어야 할
것 같아 과감히 돌아섰다.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 보니 잘 생긴 청년이 야채죽을 끓이는 모습이 보인다.
‘상하이노가반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음식점이다. 4개 3위안짜리 군만두와 계란볶음밥(12위안), 시래
기를 듬성듬성 썰어넣은 상하이 야채탕(15위안)이 우리 입맛에 딱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 향한 곳은 황푸강변. 상하이 보통사람들이 애용하는 0.5위안짜리 황푸 페리에 올
라타 푸둥으로 향했다.


비 때문에 누렇게 변한 황푸강을 건너자 동그란 우주선 모양의 건물 둥팡밍주(東方明珠)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88층 진마오다샤빌딩 등 신흥경제대국 중국의 상징인 푸둥의 마천루들이 눈앞에 펼쳐진
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머리 부분이 모조리 비구름에 가려졌다.


진마오다샤(金茂大廈) 전망대에 올라갔지만 ‘역시나’ 소독약차에서 뿜어낸 소독약마냥 뿌연 구름들에
눈앞이 깜깜하다. 그냥 내려오기가 아쉬워 전망대에 덩그러니 있는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을 사서 우체
통에 넣어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우체국에서 보내는 엽서라…. 나름대로 의미 있다. 받는
이 난에는 친구도, 가족도 아닌 내 이름 석 자를 적어본다. 일상으로 돌아간 뒤 여행길의 감흥이 담긴
엽서를 받아보는 기분이란 또 남다르다.


지하철을 타고 난징루(南京路)로 갔다. 빗물에 젖은 거리에 네온사인이 비쳐 어디가 건물이고, 어디가
땅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온 천지가 알록달록 번쩍인다. 난징루 주변에는 음식천국이란 명성답게 온갖
식재료상들이 즐비하다. ‘타이캉푸드’라는 식재료상점에 들어갔더니 엽기천국이 펼쳐진다. 눈알까지
박힌 돼지머리포와 돼지코 모듬, 생닭을 그대로 둘러놓은 닭포. 징그럽다는 생각을 넘어 코믹한 느낌까
지.

난징루의 밤이 깊어갈 즈음 영국 조차시절 세워진 유럽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와이탄(外灘)으로 발길
을 돌렸다. 조명에 번쩍이는 고풍스런 건물 야경을 보고 있자니 오래된 유럽 도시 한가운데 있는 착각마
저 든다. 건너편 푸둥지역의 둥팡밍주에서 쏘아올린 분홍 불빛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저녁은 인민광장 주변의 유명한 해산물 전문점 ‘대부호해선주루’에 들러 제철을 만난 상하이 크랩을
맛봤다. 한 마리에 200위안이나 하는 상하이 크랩은 속이 꽉 들어차있고 맛도 고소해서 ‘거금’이 아깝
지 않았다.


첫날 마지막 일정은 상하이에 사는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다는 신톈디(新天地)에서 칵테일 한 잔으로 마
무리. 마침 토요일 저녁이라 재즈 클럽마다 젊음의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온 동네를
주름잡았다는 ‘상하이 트위스트’는 볼 수 없었고, 중국 신세대 여성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현란한’
나이트 댄스만이 이방인의 시선을 잡아 끈다.

호텔에 돌아와 보니 자정이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누우니 침대가 온몸을 빨아들인다.


◆ 셋째날 우국충정 되새기고 알뜰쇼핑까지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아침 9시 짐을 둘러메고 향한 곳은 훙커우(虹
口) 공원. ‘루쉰(魯迅)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한국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매
헌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일본고위 관료들을 향해 도시락 폭탄을 던진 공원이어서다. 훙커우
공원을 돌아나와 걸어서 10분 정도 가니 루쉰, 마오둔 등 유명한 중국 문인들이 살았던 ‘둬룬루’가 나
온다.


다음 코스는 상하이임시정부. ‘상하이’라는 지명이 뇌리 깊숙히 박히게 된 계기가 역사책 한 편에 박
혀 있던 ‘상해임정’이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허름한 뒷골목에 구겨넣은 듯한 옹색한 건물과 초라
하기 짝이 없는 집무실을 보니 나라 잃은 비통함이 지금도 묻어나오는 것 같아 가슴 뭉클해진다. 관람
을 끝내고 나오는 길 헌금대 앞에 서니 절로 지갑이 열린다. 20위안짜리 지폐를 함에 넣으면서 조용히
기도해본다. 다시는 나라 잃은 슬픔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어느새 정오다. 좀 걸어나와 번화가인 화이하이루(淮海路)의 한 푸드코트에서 탕수육으로 점심을 때우
고 골동품 노점들이 소복히 몰려 있는 둥타이루(東台路)의 구완(古玩)시장으로 출발. 몇 십 년 묵은 먼
지가 뽀얗게 쌓인 골동품들이 가게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주렁주렁 걸려있는 홍등과 빨간 북들도
이색 볼거리다. 그 사이로 오렌지색 등이 눈에 띄어 물어봤더니 30위안이란다. “저 20위안 안 돼요?”
막내동생뻘 돼 보이는 앳된 가게 주인에게 졸랐더니 싱겁게 바로 오케이. 좀더 싸게 부를 걸 그랬나?


몇 집 건너 보니 군청색 찻주전자가 맘에 쏙 든다. 가게 아저씨, 160위안을 부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드니 계산기를 들이대며 ‘라스트 프라이스(last price)’를 쳐보란다. 눈 딱 감고 80위안을 눌렀더니,
아저씨 절대 안 된단다. ‘하는 수 없지’ 하며 뒤돌아서려는 순간 주인장이 팔을 붙잡네. 80위안에 주
겠단다. 그러면 그렇지. 중국에서 흥정은 필수! 바가지 안 쓰려면 부르는 값의 절반부터 시작하라는
‘교훈’을 다시 되씹어본다.


지갑이 열린 김에 쇼핑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화이하이루 동쪽 끝에 위치한 샹양(襄陽) 시장에 갔
다. 입구에 들어서자 “루이비통 백, 로렉스 와치!!” 하면서 호객꾼들이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는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짝퉁천국’이란 명성에 걸맞게 따닥따닥 붙은 가게들마다 푸마 운동화와 루이비
통 가방, 해적판 게임용 CD 등 각종 ‘짜가’들이 잔뜩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4시. 슬슬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 샹양 시장에서 지하철로 룽양루(龍陽路)역까
지 가서 공항행 자기부상열차를 탔다. 잊지 말 것! 당일 비행기표를 보여주면 40위안만 내면 된다. 지난
해 12월 개통됐다는 자기부상열차는 첨단도시 상하이의 자존심. 반짝반짝 윤이 나는 열차에 오른 시각
은 4시40분. 출발하자마자 속도계 속의 숫자가 죽 올라가더니 430㎞까지 치솟았다. 7분30초, 눈 깜짝할
새 푸둥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탑승대 쪽으로 가니 금요일 밤 함께 왔던 ‘밤도깨비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보인다. 다들 몸
은 천근만근 무거워졌지만 얼굴 표정만은 밝다. 오후 6시45분.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참았던 피
곤이 한꺼번에 몰려 눈꺼풀이 축축 처진다. 입안에는 혓바늘이 ‘밤도깨비 훈장’처럼 돋아나 있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어떻게 일하지….’ 벌써부터 일 걱정이 채 익지도 않은 상하이의 추억을 밀어낸
다.

(상하이=글·사진 김미리기자 [ mi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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