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산이 보듬은 어린 섬마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3-09-03 오전 11:49:00
◇임실 옥정호


소슬바람을 앞세워 가을이 오고 있다. 열기와 습기가 밴 여름의 바람과 달리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이 소매깃을 파고든다. 이 바람은 곧 푸르렀던 여름을 울긋불긋한 가을로 바꿔놓을 것이다.


가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산도 아니고 강도 아니다. 바로 호수다. 부쩍 커진 일교차 때문에 호수에
서는 새벽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물안개는 가을을 알리는 신호인 셈. 가을바람은 새벽 물안개를 이
리저리 몰고다니다 새털같은 구름으로 만들어 푸른 하늘에 띄워 보낸다.

가을을 마중하러 전북 임실 옥정호로 떠난다. 8월 한달 동안 20일이나 비가 내려 호수의 물이 가득했
다. 새벽 호수에 밀려드는 안개. 산줄기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안개 틈새로 때로는 호수 속의 푸
른 섬이 나타나고, 다시 호수를 감싸고 있는 먹빛 암벽도 보인다.


옥정호는 참 예쁜 호수다. 소양호처럼 광활하지 않고 첩첩산골에 들어앉은 호수. 작은 섬들이 조각배처
럼 떠있고, 섬마을 끝에는 뾰족바위가 솟아 있다. 최근 내린 잦은 비로 수초들이 떠올라 물빛은 초록빛
을 띠고 있다.


호수가 생긴 것은 1926년. 호남평야에 물을 대기 위해 섬진강 물줄기를 가로막고 댐을 세웠다. 부안
계화도까지 농업용수를 보내기 위한 공사. 당시엔 호수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65년 전력생산, 용수
확보 등의 다목적댐을 다시 건설하면서 호수가 제법 커졌다.


옥정호를 돌아보려면 두어시간은 잡아야 한다. 만수면적 25.5㎢. 운암면의 이름을 따서 운암호, 또는
섬진강 댐의 이름을 따서 섬진호라고도 불린다. 옥정호란 이름은 댐이 위치한 강진면 옥정리에서 따온
것이다. 일제때에는 물이 맑고 수온이 차서 국내 최초로 빙어를 방류하기도 했다.


옥정호에 여행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2~3년 전부터. 예전에는 낚시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붕어
와 배스의 입질이 시원해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었다. 호수 주변이 모두 비포장길로 진입이 불편해 낚
시꾼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3년새 호수 주변 호반도로가 깔끔하게 포장됐다. 입석리에
는 2년 전 전망대격인 팔각정이 들어섰다. 호수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낚시를 할 수 없다. 옥
정호의 물이 순창, 임실, 전주 등지의 식수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호수의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입석리와 용운리 일대. 전망대가 있는 입석리는 20여가구가 사는 마
을. 이곳에서 보면 호수에 아름다운 섬이 떠있다. 3가구가 사는 ‘외안날’ 마을. 팔순 노인 1명과 부
부 2쌍 등 주민은 모두 5명이다. 이곳에서 제철회사의 CF를 찍기도 했다.


“날이 가물고 물이 빠지면 섬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호숫가 마을사람들의 농토도 섬에 많이
있어요. 배를 타고 오가며 농사를 짓지요. 가을이면 안개낀 호수 모습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아옵니다”


전망 좋은 길가에 재작년부터 찻집을 연 토박이 김형구씨(43)의 말이다. 호반에서 만난 전주의 사진작
가 안용석씨도 93년부터 매년 이곳을 찾는 단골. 옥정호를 찍은 풍경사진으로 달력을 내기도 했다. 그
가 가장 좋은 촬영 포인트로 꼽는 곳은 국사봉. 특히 가을철에는 고기압 때문에 안개가 낮게 깔려 호수
와 잘 어우러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호반도로 옆 계단을 따라 오르는 국사봉은 해발 475m의 나지막한 봉우리. 30분 정도 걸어오르면 드넓
은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호수 속의 섬마을은 물론 멀리 운암대교까지 보인다. 동으로는 마이
산, 서쪽으로는 오봉산, 남쪽으로는 나래산, 북쪽으로는 모악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호수를 에워싸
고 있다. 전망 좋은 국사봉은 옛날 군사요충지로 주변에 깃대봉,북통날, 나팔봉 등 군사와 관련된 지명
들이 많다. 주민들은 이곳이 명당터여서 자그마한 마을에서 진사가 12명이나 나왔다고 자랑한다.


옥정호 주변에 있는 마암분교가 유명하다. 운암대교에서 3분 거리.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가 교사
로 근무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김시인은 2년 전 다른 학교로 옮겼다. 학교에서는 전교생 20명이 한창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문득 김시인이 3년 전 이 아이들과 함께 냈던 ‘촌
아 울지마’란 책이 떠올랐다.


‘아침에도 강은 잠을 자네//강아 일어나 하고 말을 해도/강은 잠을 자네//강은 밤새 달의 빛을 받기
위해/노력하네//강이 쉬는 날은 비 오는 날’(당시 6학년 귀봉이의 시)


맑은 강줄기와 푸른 호수를 보며 살다보면 아이들도 시인이 되는 모양이다.


여행길잡이


▷호남고속도로 태인IC에서 빠진다. 국도 30호선을 타고 임실·순창 방면으로 가다가 칠보읍을 지나 국
도 49호선으로 갈아탄다. 염재를 넘으면 27번 국도와 이어진다. 임실·순창 방면으로 내려오면 옥정호
와 만나게 된다. 입석리 전망대는 운암 표지판을 보고 운암3거리에서 749번 도로를 타면 된다. 마암분
교는 운암대교에서 운암면 반대방향으로 가면 된다. 전주IC에서 빠져나와 국도 27호선을 타고 내려갈
수도 있다.


▷운암대교 옆에 하얀집모텔(063-221-2590), 리베라(222-6866), 리버사이드(221-7968) 등 3~4개
가 몰려 있다. 운암호 주변에는 붕어찜과 매운탕집들이 들어서 있다. 3만~5만원 사이.

▷회문산 휴양림이 1시간 거리 내에 있다. 회문산은 6·25때 빨치산 도당본부가 있던 곳으로 치열한 격
전지 중 하나. 숲에 거목은 없고 고만고만한 활엽수와 침엽수가 잘 섞여 있다. 매주 화요일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 (063)653-4779. 인터넷(www.huyang.go.kr)으로도 예약을 할 수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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