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건강에 위험신호 빨간불이 켜졌다. 조선일보 의료팀의 설문조사 결과 여성 10명 중 7명은 지난 1 년간 한 번도 건강 검진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급증하는 자궁암·유방암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바 쁜 사람들이란 이유로 주부들을 비켜가 줄까. 아이 먼저, 남편 먼저 하다가 세월이 흘러 본인들의 건강 을 챙길 만한 나이가 되면 손쓸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나빠진 경우가 허다하다. 늦어도 40대가 되기 전 에 여성 자신만의 건강을 위해 뭔가를 시작하라고 권한다면 사치스런 주문일까.
여성의 건강이 가정 행복을 떠받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늘 밤, 남편들은 아내의 건강에 대 해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보자.
일요일인 8월 31일 오후 경기도 평촌의 찜질방 ‘사우나 파크’에 30~40대 여성 4명이 모여 앉았다. 오늘만은 가족을 잠시 잊고 자신들만의 건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방치되다시피 한 여성의 건강을 집 중 조명한다. /편집자
-중년 여성의 건강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오공비리’죠. 감춰도 감춰도 숨길 수 없다고 해서 뱃살 을 아줌마들은 오공비리라고 해요.(웃음)
-맞아요. 아픈 걸 빼면 중년 여성들의 건강 고민 1위는 뱃살과 피부일 텐데, 피부는 어쨌든 돈을 들이 면 좋아질 수 있잖아요. 돈이 너무 많이 들긴 하지만…. 하지만 중년의 뱃살은 도리가 없는 것 같아요.
-눈가 주름도 고민은 고민이에요. 보톡스를 맞으면 주름이 좀 펴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효과가 석 달 밖에 안 간다고 하고, 너무 비싸다고 그러기도 하고.
-참, 보톡스 맞으면 코도 높일 수 있다는 말도 있던데…. 아닌가?
-주변에서 라식도 했다고 하고, 주근깨도 없앴다고 그러고…. 하지만 40대 이후에는 효과가 별로라는 데 지금 해야 되나 고민 중이죠.
-저는 남편 회사에서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해요. 자궁에 염증이 있다고 해서 아는 여의사가 원장 인 산부인과에 갔어요. 막내 출산 이후에 산부인과는 4년 만인가. 근데 산부인과 입구에 걸려 있는 자 궁암 말기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잠자리에 누워도 그 사진이 눈앞에 뱅뱅 돌았죠. 만일 내 가 저렇게 된다면…. 정말 끔직하더라구요. 다행히 검사결과 큰 병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6개월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산부인과는 정말 안 가게 돼요. 임신 출산이란 산과(産科)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정작 부인 과 질환이 있어도 안 가요. 약국의 여약사와 얘기하는 경우가 더 많죠. 사춘기를 맞은 딸도 생리양이 좀 많은 것 같아 병원에 데려 가고 싶은데, 산부인과 검사대에 애를 어떻게 올려놓을까 싶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제가 아는 한 엄마는 10대 딸을 산부인과에 데려 갔는데, 검사대에 올려놓는 순간 기 절해버렸대요. 중년 아줌마들이 뻔뻔하다고들 하지만, 산부인과 검사대에 올라가기는 싫어요.
-아내들의 이런 고민을 좀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남편들이 갖고 있잖아요.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겠다 고 약속한 게 언젠데, 아직도 종무소식이에요. 남편이 정관수술 받은 분 혹시 있어요? 그럼 그렇지 아 무도 없네.
-우리 남편은 거의 수술 받으러 갈 뻔했는데, 친구 얘기 듣고 그만 발길을 돌려버렸죠. 마흔 살 넘었는 데 임신하면 어떡해요? 불안해서 제가 자궁내 피임장치를 했다가 출혈 때문에 그마저도 제거했어요. 왜 이 나이가 돼도 피임 책임을 여자들이 떠안아야 돼요? 남편은 콘돔 쓰라고 하면 느낌이 안 좋다는 등 불평만 해대면서 정관수술은 받을 생각도 않고…, 정말 짜증나요.
-가장 좋은 방법은 안하는 거죠.(웃음) 요즘 섹스리스 부부들도 많다고 그러잖아요. 서로 직장생활 하 느라 피곤하니까 별로 원치도 않아요. 피임도 저절로 해결되고 일거양득이죠.
-저희 부부의 표어도 ‘소 닭 보듯 하자’예요. 제가 소띠, 남편이 닭띠거든요.(웃음)
-자신의 건강을 위해 뭘 챙겨먹는 사람 있어요?
-삐콤씨 하루에 한 알 씩 먹어요.
-보약을 몇 번 먹은 적이 있어요.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몸이 아프면 일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한의원에 가서 지어 먹었죠. 남편이 한의원에 데리고 가서 보약 지어줬냐구요? 그런 복많은 아줌마가 있을까요?
-저는 40대에 접어들면서 건강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부터 내 건강에 투자하지 않으면 5~10년 뒤 대책 없이 펑퍼짐한 아줌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건 단순히 몸매의 문제 가 아니라고 봐요. 자신의 삶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4 개월 전부터 헬스클럽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 챙겨서 재운 다음, 저녁 9시부 터 10시30분까지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해요. 요즘은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도 많아요.
-부럽네요. 저도 헬스클럽에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가려면 뭐가 그렇게 할 일이 많은 지 잘 안 돼요.
-마인드의 차이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저는 운동 마치고 샤워도 제대로 못 마치고 서둘러서 집에 돌아 오는데, 전업 주부로 보이는 분들은 샤워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하죠. 그리고는 ‘운동으로 땀 뺐으 니 시원한 음료수 마시러 가자’면서 몰려들 가시더라구요.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가 40 대 이후의 건강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고 봐요.
-저는 애들 챙겨 먹이다 보면 다이어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큰 애들에게 간식 먹이면서 저도 한 입 먹게 되고, 늦둥이 애기가 먹다 남긴 우유나 이유식도 버리기 아까워서 제가 다 먹죠. 그러니 몸매 관리를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한국 여성들은 건강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아요. 영국에 살 때 그곳 여성들이 40대, 50대 늙 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감정 표현이 무척 솔직하고. 그래서인지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는 것 같았어요. 영국 남자들은 한국 여성들은 참 예쁘지만, 다 똑같 아서 매력이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날씬한 몸매나 주름 없는 피부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트레 스 너무 많이 받지 말자구요.
<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