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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상품 미끼 단위농협의 건강식품 가두판매 '물의'
지난 수요일(6일) 저녁 6시 40분, 아파트 안을 울리는 낭랑한 방송이 있었다.
"XX아파트 주민 여러분,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그동안 애용해주신 것에 감사하고자 충남 XX군에서 생산 한 버섯을 무료로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6시 50분에 XXX동 앞에 농협 차량으로 오셔서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10분간만 나눠드리고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오니 서둘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농협에서 나왔다기에 기대를 갖고 이웃들과 함께 나갔다. 근처에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어, 거기서 나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XXX동 앞에 선명한 농협마크를 달고 있는 차량이 서 있었다. 무료로 나눠준다고 했을 때 들었던 의심 이 사라졌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에게 거래가 없더라도 농협이라고 하면 광고 처럼 '고향'을 떠올린다. 때문에 농협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일단 신뢰하기 마련이다. 홍보차 무료로 나 눠준다는 데 의심할 사람은 없다.
농협 마크가 그려진 차량 앞에서는 3~4명의 젊은 남자들이 서 있었는데 홍보직원이라면서 농협 마크가 찍힌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이들은 국산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을 구별하는 법을 설명하는 전단지 를 나눠주며 줄을 서달라고 했다.
잠시 후 줄을 서던 주민들은 농협 마크를 달고 있는 차량에 드리운 발 안쪽으로 들어섰다. 바짝 붙으라 는 말에 20~30명 남짓한 주민들은 서로 바짝 붙어 홍보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의 말을 들었다. 그는 말 린 버섯을 상자에서 꺼내 놓으며 다시 한번 농협에서 나왔음을 강조했다.
홍보직원이 "오늘 어디서 나왔다구요?"하면 주민들은 "농협요"하며 농협임을 각인하게 되는 식이었다. 농협에서 나왔다는 검게 그을린 홍보직원은 총 다섯 가지의 무료 상품을 줄 것이라며 빠짐없이 받아가라 고 당부했다.
그리고 소금, 쌀비누 등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두 가지 정도가 돌아간 후 그는 말을 멈추고 XX지역의 특산품인 장뇌산삼에 대해 홍보하기 시작했다.
"오늘 저희가 나온 것은 저희 농협의 장뇌산삼을 홍보하기 위해서입니다. MBC 뉴스에 나온 장뇌산삼에 대한 보도가 약 2분인데 비디오 보시고 계속 나눠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방송은 2002년 11월 25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영된 장뇌삼 연구자를 다룬 기사였다. 기사는 중간에 장뇌산삼을 가공한 엑기스를 만드는 과정과 효과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부 분부터는 잡음이 많이 들어가는 등 녹음상태가 달라 편집되었다는 의심을 품게 했다. 나중에 MBC 홈페 이지에서 해당 기사를 확인해본 결과 엑기스 가공장면 등은 본래 기사에 들어 있지 않았다.
비디오 상영 후 그는 종이를 들고 써가면서 장뇌산삼의 가치와 효과에 대해 약 5분간 열변을 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 신경통 등 어른들이 앓고 계신 모든 병에 만병통치약이었다. 점점 쇠약해져가는 부모님을 둔 자식으로서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약이었다. 마침내 그는 천으로 가려져 있던 선반에서 장뇌산삼 엑기스를 꺼내보였다.
"저희가 오늘 홍보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 농협에서 10월에 판매하는 신제품 장뇌산삼입니다. 케이블TV 에서 10월부터 판매하는 데 오늘 이 자리에서 무료로 드리려고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뉴스가 편집되었다고 의심되고, 준다던 버섯은 아직 손에 안 들어왔고, 10분 후에 이동한다던 이들이 벌써 30분이나 머물고 있는 등 모든 것이 비정상인 상황인데도 그 자리에 있는 주민들은 진지하기 이 를 데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공짜 버섯을 얻으러 왔다 공짜 장뇌산삼엑기스를 얻을 것 같 았기 때문이다.
주민들 뒤로는 약 10명 정도의 젊은 청년들이 밖에서 안보이게 주민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다시 무료상 품이 하나 더 돌아가고, 홍보직원은 장뇌산삼 엑기스를 다시 손에 들었다.
"편찮으신 분들이 장뇌산삼의 효과를 보려면 두 냥은 있어야 합니다. 두 상자, 오늘 이 자리에서 무료 로 드립니다"라고 한층 더 놀라운 제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그런데 여러분, 농민들이 이거 길러내는 데 10년 걸렸습니다. 이거 두 개 무료로 받아가겠다는 거 너 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 고생하는 농민들 생각하셔서 한 개 값은 주시고 가져 가십시오. 한 개값 29만6 천원에 두 개를 드립니다."
그의 흥정은 무료 버섯에서 시작해서 어느새 29만6천원까지 구렁이 담넘어가듯 술렁술렁 넘어왔다. 게 다가 무료라는 말에 혹해서 나온 주민들의 마음을 염치없다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민망해지기 시작한 주민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고 대여섯 명만이 남게 되었다. 소수가 남게 되자 뒤쪽의 젊은 직원들 이 일대일로 주민들에게 붙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건강식품에 관심이 많아 끝까지 남아 있던 앞동 아저씨는 직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돌아오며 "처 음엔 무료로 준다더니 하나값에 두 개를 준다고 하네요. 이야기가 달라져서 확인하고 사려고 합니다"라 고 말했다.
장뇌산삼 엑기스를 다른 주민에게 판매하고 돌아가는 홍보직원에게 명함을 달라고 하자 "명함이 있으 면 영업부 직원이 되기 때문에 안됩니다"라며 도통 알 수 없는 대답을 하고는 농협마크가 찍힌 명패만 을 당당히 보여 주었다.
그는 하루 약 8곳 정도를 돌았고 한 아파트 당 5개 정도를 돌린다고 했다. 결코 판매한다고 하지 않 고 '홍보'용으로 나눠준다고 했다. 모두 열 명이 함께 다닌다고 한 그는 '농협'에서 나왔다고 했다. 명패를 자세히 보니 농협마크에 'XXXX 농협'이라고 써 있었다. 두 대의 농협마크를 단 차량과 두 대 의 봉고차량을 끌고 나타났던 그들은 어둑해지는 길을 따라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XXXX 농협을 찾아보니 10월에 판매한다던 장뇌산삼을 이미 홈페이지에서 판매하 고 있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www.nonnhyup.com) 홈페이지에는 해당 상품이 없었다.
농협중앙회 인삼 담당자는 "인삼농협에는 장뇌산삼엑기스는 없다. 그러나 일반 단위 농협에서 인삼을 취급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지역 농민들이 결성한 단위 농협에서 상품을 개발, 판매할 수 있다 는 말이다.
농협법에 따르면 지역이나 품목별로 일정한 기준을 맞추면 누구나 농협을 설립해 농협중앙회의 회원조합 이 될 수 있다. 지난 주 홍보를 나왔다는 XXXX 농협은 회원조합으로, 농협 마크를 사용하고 농협이름 으로 유통을 할 수 있다.
XXXX 농협의 가두판매에 대해 농협중앙회에 문의하니, "XXXX 농협의 판매방식에 대해 알고 있다. 농 협상표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다만 판매 방식에 문제가 있어 주의를 주고 있지만 쉽지 않다. 발생할 때마다 차량번호 등 구체적인 물증을 가지고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제재가 어렵다"고 한다.
농협의 정식직원이 아니거나, 해당 농협으로부터 유통을 위임받은 총판일 경우 농협마크 등을 사용할 수 없다. XXXX 농협에 전화를 걸어 홍보 나왔던 직원의 이름을 확인하자 해당 농협의 직원이라고 밝혔 다. 이들의 농협마크 사용이 합법적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도 농협의 이름을 대고 공짜로 유혹해 물건을 떠안기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얼떨결에 구입한 고객들은 속았다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XXXX 농협은 고객 부담으로 반품을 받아주고 있지만 홈페이지를 보면 농협이름을 믿고 샀다가 반품하겠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빗발치 고 있었다.
한 이용자는 "뭐 이런 게 어딨습니까?! 홍보할 때는 병 뿌리째 뽑으라며 '한 냥 더 드리겠습니다' 이러 더니 한 냥은 돈을 내라니... 이러니 농협이 욕을 먹고 농협을 신뢰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절대로, 아니 다음부터는 농협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할 행동을 하지도 마십쇼"라고 한다.
농협 이름으로 방문판매를 하는 사업자들이 소비자의 충고를 진지하게 들었으면 한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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