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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그래도 여전히 낯선 사나이 얼굴. 축 늘어진 뺨, 생기 잃은 눈, 꺼부정한 어깨. 그리고 탄력을 잃은 지 오랜 피부, 도저히 갓서른의 사나이 모습이 아니다.
‘이것은 꿈이다. 현실이 아닐 것이다’ 중얼거리며 거울을 주먹으로 쳐본다. 깨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디룩디룩 살이 찐 암소 바로 그것이었지요. 아무런 생각 없이 우리안을 어슬렁거 리는 고기덩어리, 심지어 정육점 냉장고에 걸려있는 고기 덩어리와 다를 게 있냐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런 모습을 보이자고 지방에 내려온 것은 아니었는데….”
김 사장이 안동 광주 천안 온양 등 지방을 떠돌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추석 대목을 노리고 들여온 LA갈비 판매부진 때문이었다.
단 한번의 실수는 김 사장을 빈사상태로 몰아갔다. 빚만 3억원 이상 걸머졌다.
“수입 실패의 원인은 한마디로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젊은이의 오만이었습니다.”
특히 스무살 때부터 시작한 사업에 한번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은 점이 이런 오만을 키웠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이런 커다란 실패 뒤에 따른 정직한 반성은 후에 김 사장이 보다 큰 사업을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무작정 서울을 떠났다. 전국을 돌아다녔다. 우시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다녔다. 그가 아는 것은 고기 였고, 그만큼 고기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지방 우시장 고기를 서울에 파는 장사는 나름대로 벌이가 괜찮았다. 1년 여가 지나자 그 많던 빚도 어지간 히 다 갚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김사장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태해진 것이다. 낮술을 걸치는 것은 당연한 일과 중 하 나. 시장 사람들하고 욕지거리하는 것도 예사고, 사는 일이 무질서해졌다. 한마디로 시장잡배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거울 앞에서 마주친 자신의 본모습. 그는 그만 좌절을 느끼고 만 것이다.
1999년 겨울의 어느날의 일이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2000년 초 그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뚜렷하게 잡히는 일이 있어 올라 온 것은 아니 었다.
그의 첫 번째 변신이었다. 그는 그러나 서울에서 예전처럼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본이 부족했 다.
서울 변두리 난곡에 소재한 할인점 ‘월드마트’에 조그만 가게를 가까스레 임차해 정육점을 차렸다. 가게 는 항상 손님으로 가득 찼다. 성실한 태도와 정성스런 자세, 그리고 전문가의 안목은 곧바로 매출실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장사에 뛰어든 지 반년이 지나면서 그는 내부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문득 이 장사가 자신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평범을 거부하는 고 질병이 도진 것이다.
그는 애써 자신의 그런 욕구를 무시했다. 꾹꾹 참으면서 다시 반년을 보냈다. 그러나 장사시작 1년이 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 길로 가게를 주인에게 되돌려주었다.
두 번째 변신이었다. 돈버는 재미가 솔솔치 않은데도 불구, 과감히 장사 일을 던진 것이다.
주위의 도움을 얻어 2001년 3월 서울시 구로구 독산동에 고기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차렸다. 회사명 은 썬미트.
“비록 조그만 회사였지만 오래지 않아 큰 회사로 만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고기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꿰뚫는 김 사장의 영업전략은 평범한 한마디로 요약된다. ‘질 좋은 고기를 싸 게.’
유통회사의 승부처는 바로 거래처. 김 사장은 밤낮으로 거래처를 뚫었다. 빠르게 거래처가 늘어났다.
그러던 중 김 사장에게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업체에게서 연락이 왔다. 감자탕 프랜차이즈 본사였다. 김사장 은 이 업체가 나중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을지 당시로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건을 납품하는데 몰두했지요. 그러다 점차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더 군요.”
그는 이것을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능률협회 ‘프랜차이즈 CEO과정’‘고려대학교 유통전문가 과정’ 등 을 기웃거렸다.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실패를 한 지난 1997년 가을의 일이 못내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도 프랜차 이즈공부에 열중한 주요한 이유였다.
알면 알수록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접목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섣불리 자신의 사업 을 내팽겨치고 프랜차이즈회사를 만들 수는 없었다. 하고 싶다는 욕망과 현실적 고려 사이에서 김 사장은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프랜차이즈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기회는 뜻밖에 빨리 찾아왔다.
“거래처인 프랜차이즈 본사가 내부 경영권문제로 매각의사를 보이더군요.”
그는 본사 매수금액이 높다는 지적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즉각 2002년 6월 감자탕 프랜차이즈 본사를 인수 했다. ‘썬미트청기와 명가감자탕’이 탄생한 것이다.
그의 세 번째 변신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금고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고기 납품 일. 그는 그것을 마다하고 다시 한번 새 사업에 도전한 것이다.
확실한 원료공급원, 소스, 가맹점관리기법 등 체계적인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3개월여 준비한 끝에 그 해 9 월부터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사업 시작 8개월이 지난 2003년 4월 현재 가맹점수는 28개. 대기자수도 10여명이 넘는다. 청기와 가맹점의 최소평형이 50평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가맹점 확장속도가 빠른 것임을 파악할 수 있다.
월간 창업&프랜차이즈의 나명석 사장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업종의 매출이 격감하는 요즘 아무 때나 청기와 가맹점을 가보세요. 70여 평 대형 매장이 손님들로 꽉꽉 찹니다.감자탕은 불황에 내성이 강한 아이템입니다.”
청기와의 장점은 무엇보다 가맹점 수입이 높다는 것이다. 3억원 정도의 투자에 가맹점주 인건비를 제외하고 도 매달 최소 수입이 2000만∼3000만원을 넘어선다.
98년 장돌뱅이시절 거울을 깰 때나, 2001년 호황이던 난곡의 정육점을 때려치웠을 때나, 2002년 중반 잘 나 가는 고기납품대신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 때나 그는 항상 편안함 또는 평범을 거부했다.
그는 앞으로도 보다 여러 번 변신을 시도할 것이다. 변신에는 결코 안전을 택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그의 나이가 35살의 젊다는 점보다는 그의 과거 사업이력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또한 그런 그에게 무 엇을 위해 변신을 하는가를 묻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02)333-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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